부모 없는 하늘 아래, 휴고(아사 버터필드)는 외롭다. 파리역 시계탑에 숨어 사는 휴고의 유일한 친구는 아버지가 남기고 간 고장 난 로봇인형이다. 인형을 살려내고 싶다. 그러면 왠지 희망이 찾아올 것 같다. 인형을 고칠 부품이 필요하다. 휴고는 결국 조르주(벤 킹슬리) 할아버지의 장난감 가게에서 부품을 훔친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했다. 조르주에게 들켜 인형 설계도가 그려진 수첩을 빼앗기고 만다. 마침 은인이 나타난다. 조르주의 양손녀 이자벨(클로이 모레츠)이다. 그녀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휴고는 조르주의 비밀에 다가서게 된다.
원작은 브라이언 셀즈닉의 그림책 ‘위고 카브레의 발명품’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그림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를 찾고 싶다면, 휴고보다는 조르주 할아버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정확한 이름은 조르주 멜리에스. 그는 영화사에서 SF영화의 개척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오늘날 특수효과라 불리는 기교들을 처음 도입한 사람이 바로 그다. 영화는 ‘휴고의 모험’이란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영화가 진정으로 소개하고 있는 건 조르주 멜리에스와 초창기 영화들이다. 실제로 휴고에게서 시작한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조르주 멜리에스에게 집중한다. 휴고와 휴고의 아버지를 이어주는 비밀의 로봇인형도 결과적으로 멜리에스의 영화 인생을 드러내기 위한 맥거핀에 가깝다. 정리하자면 <휴고>는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총동원해 과거 영화를 추억하는 가장 화려하고 값비싼 오마주인 셈이다.
약점이라면, 영화가 오마주하고 있는 대상이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어필할 만큼 파급력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조르주 멜리에스가 누구인지. 그가 만든 <달나라 여행>이 영화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무성영화 태동기의 상황이 어땠는지. 이런 것들이 낯설고 흥미 없는 관객들에게 <휴고>의 감흥은 반쪽 자리일 공산이 크다. 무성영화 제작과정 간접체험에 대한 즐거움도, 영화학도나 영화인들에게 유리한 지점들이다. 그러나 어떤 영화평론가가 <휴고>를 통해 지적 허영을 과시한다 해도 그리 기죽을 필요는 없다. ‘영화에 대한 헌사’, ‘기술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영화 전체가 그리는 이야기는 지극히 전형적인 축에 속하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전반 휴고의 이야기와 후반 조르주 멜리에스 이야기 사이의 급격한 분위기 전환도 맥이 조금 빠지는 부분이다. 모든 게, 무조건적으로 추앙받아야 할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휴고>에는 마법과도 같은 순간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아카데미 기술상 5관왕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는 최고 수준이다. <휴고>는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영화다. 3D의 완성도도 뛰어나지만, 3D를 시각적 향락 도구가 아닌 스토리를 위한 생산적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게, 최초의 영화 <기차의 도착>이 상영되는 장면이다.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기차에게서 관객이 느꼈을 3D적 충격을 영화는 3D로 고스란히 살려낸다. 3D적 체험을 실제 3D로 구현해내는 발상이 이보다 절묘할 수 없다.
일흔에 접어든 마틴 스콜세지는 변화하는 영화 환경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영화적 영토를 확장해가며 자신의 영화적 샘물이 여전히 넘쳐나고 있음을 과시한다. 경력에 안주하지 않는 그의 도전에 존경을 보낸다. 마틴 스콜세지의 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2012년 3월 1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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