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사상에 심취한 발렌틴 불가코프(제임스 맥어보이)는 우연한 기회에 톨스토이(크리스토퍼 플러머)의 개인비서로 고용된다. 그의 수제자이자 동지인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폴 지아매티)는 발렌틴에게 고용조건으로 톨스토이의 부인인 소피아(헬렌 미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기록하라고 말한다. 발렌틴은 톨스토이를 만나자 마자 그의 따뜻한 인품과 배려에 감동한다. 그리고 연일 신문보도에 악처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소피아도 진정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톨스토이가 자신의 작품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유언장을 쓰자 소피아는 이를 강력하게 반대한다. 이후 사랑하는 아내와 점점 멀어진 톨스토이는 집을 떠난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은 톨스토이의 마지막 비서였던 발렌틴의 일기장에서 출발한다. 그의 마지막 1년을 함께 생활한 발렌틴은 톨스토이에 관련된 일화를 일기장에 적었고, 이후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연출을 맡은 마이클 호프만은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은 최대한 원작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발렌틴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의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톨스토이는 거장의 느낌보다는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부인 소피아와 심하게 언쟁을 벌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사랑의 입맞춤을 나누는 등 영화는 대문호, 인류에게 가르침을 남긴 사상가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사랑’이다. 톨스토이는 중년 이후 종교에 심취해 자유와 평등, 박애를 강조하고 청빈한 삶과 금욕을 내세운 ‘톨스토이즘’을 내놓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상의 본질을 잊고 청빈함과 금욕적인 삶만을 중시하는 시대 상황에 톨스토이는 갈등을 하게 된다. 금욕을 중시한 사상 때문에 몰래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었던 발렌틴의 일화는 이를 잘 나타낸다. 또한 블라디미르가 톨스토이의 죽음을 앞두고 모든 재산을 환원한다는 유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소피아를 일부러 만나지 못하게 하는 안타까운 일화도 사랑의 소중함을 돋보이게 한다.
영화는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남자로서의 톨스토이를 보여주기에 극적 요소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이 부족함을 메우는 것은 다름 아닌 배우들의 연기다. 톨스토이 역을 맡은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위대한 문학가의 위엄보다는 가족과 친구들을 사랑하는 남자이자,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모습으로 나온다. 그의 인자한 표정과 너털웃음은 격동의 시기를 겪기 전 러시아의 평화로운 풍경처럼 느껴져 보는이로 하여금 인물에 다가가기 쉽게 만든다. 부인 소피아 역으로 등장하는 헬렌 미렌은 실제 악처라 평가받았던 인물의 외적인 모습을 특유의 강한 카리스마 연기로 보여줌과 동시에, 내적으로는 진정 자신의 남편을 아끼고 사랑하는 한 여인의 마음을 잘 드러낸다. 그 외에도 제임스 맥어보이와 폴 지아매티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며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은 우리가 알고 있던 예술가의 실제 삶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허나 이 장점은 단점이 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톨스토이의 문학과 사상에 관한 이야기와 그에 따른 고뇌가 나오기는 하지만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평범한 남자로 표현되는 톨스토이에 신선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그의 문학과 사상에 심취한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2010년 12월 10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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