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네트워크>는 바로 그 전세계적인 현상의 중심에 있는 페이스북의 성장과 이를 개발한 주커버그가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에 이르기까지의 전기적 서사를 담아낸 작품이다. 하지만 단순히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의 성공 신화라는 단순한 주제로 요약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일단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에서 비롯된 용어가 아니다. 페이스북은 ‘소셜 네트워크’를 대변하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무형의 사이버스페이스 속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개인간의 접속과 이를 통해 형성되는 거대한 장의 마련은 이미 페이스북 이전부터 웹이라는 공간의 형성과 함께 존재하던 것이었다. 페이스북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의 제목이 <소셜 네트워크>라 명명된 것에는 뚜렷한 의미가 있는 셈이다.
페이스북은 유기체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유저 스스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관계를 발전시키고 네트워크의 확장을 구축해나가던 기존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다른 차원의 진화적 체계를 갖춘 새로운 양식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다. 페이스북은 스스로 다른 유저에게 접근을 도모하고 접속을 시도해야 하는 기존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달리 시스템의 알고리즘을 통해 유저와 유저의 연결을 유도하고 접근성의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마이스페이스’와 같은 기존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메일 주소를 통해 유저와 교류가 있었던 주변인들을 검색해서 리스트를 제공함으로써 관계망 구축을 위해 유저 스스로가 주변인들을 검색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이런 접근의 편의성은 페이스북이 구축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차별화된 전략이었으며 이를 토대로 페이스북은 자가증식을 유도하는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분열해 나가는 유저들의 선택을 통해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망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소셜 네트워크>는 다층적으로 구성된 서사 구조를 저마다의 시점으로 나열하고 있는 작품이나 퍼즐을 맞춰나가듯 머리를 싸매고 볼 작품은 아니다. 동시에 엄청난 대사량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방대한 정보량을 쏟아내지만 이 모든 것을 이해해낼 정도의 지적 능력을 준비한 채 상영관에 들어설 필요도 없다. <소셜 네트워크>는 방대한 서사를 심플하게 정리하고 긴밀하게 구성해내는 스토리의 운용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약간의 변주가 가미된 곡조에 강렬한 리프와 스트레이트한 훅을 담아 능수능란하게 연주해 나가듯 흥미를 자아내고 몰입을 발생시키고 감상을 점층시키는 드라마다. <조디악>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통해 관조적이고 유려한 연출력을 선보이며 대가로서의 경력에 들어선 데이빗 핀처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이런 능력을 보다 극대화시킨다. 캐릭터의 내면을 깊숙하게 살피는 동시에 인물의 주변부를 세심하게 조망하고 이를 둘러싼 시대의 공기를 긴밀하게 포착해낸다. 동시에 <소셜 네트워크>는 플래쉬백을 동원한 서사의 재구성을 통해 방대한 이야기를 압축해내면서도 그 안에 담긴 정보량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각색과 편집의 요소에서도 탁월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할 만한 작품이다.
한 가지 궁금해지는 대목은 <소셜 네트워크>가 실제 인물을 묘사하는 전기적 드라마라는 방식에서 얼마만큼이나 사실성을 중시한 작품인가라는 지점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벤 메즈리치의 미발간소설에서 착안된 작품이다. ‘카드 카운팅’이라는 방식을 통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거액을 벌여 들인 MIT의 수학천재들에 관한 실화를 소설로 옮긴 <MIT 수학천재들의 라스베이거스 무너뜨리기>를 집필하며 화제가 된바 있는 벤 메즈리치는 20대의 나이에 페이스북을 창립하며 벼락부자가 된 마크 주커버그에 관한 논픽션 소설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사실에 깊은 관심을 보인 할리우드 제작자에게 직접 건넨 14페이지 분량의 트리트먼트가 <소셜 네트워크>의 출발점이 됐(다고 알려졌)으며 이를 각색한 아론 소킨의 시나리오가 현재의 결과물로 발전된 것이다. –최근 벤 메즈리치는 <소셜 네트워크>와 동명의 소설을 발표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소셜 네트워크>의 제작에 관여한 이들은 이 작품의 초고가 된 벤 메즈리치의 트리트먼트가 다양한 채널을 통한 취재와 조사로서 완성된 이야기인가라는 물음보다도 다른 측면에 대해서 흥미를 느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주커버그는 <소셜 네트워크>가 자신과 무관한 영화라고 스스로 어필한 바 있다. 그가 자신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입힐 수도 있는 영화적 내용에 대한 부정의 의미에서 이와 같은 주장을 펼치는 것일지 몰라도 어쨌든 <소셜 네트워크>가 페이스북이라는 논픽션 현상에 입각해서 완성해낸 허구적 사연이라 이해해도 무방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자신들의 합리를 내건 언어를 통해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던 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주커버그를 비추는 결말부는 <소셜 네트워크>의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결정적 순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온라인이라는 방대한 우주에 거대한 네트워크 세계를 창조해낸 주커버그가 오프라인의 현실에서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 같은 인물임을 드러내는 역설적인 광경, 이는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웹에 접속하여 자신의 아이디로 로그인함으로서 전세계의 모든 이들과 활발하게 소식을 주고받지만 가상의 네트워크에서 로그아웃한 뒤, 두 발을 딛고 선 현실 위에서는 정작 깊은 고독을 체감하게 된다는 고독한 현대인의 실풍경을 응시하며 이에 대한 사려 깊은 동정이 체감된다.
<소셜 네트워크>는 어느 개인의 아이러니한 현실을 비추는 드라마 자체로서도 훌륭한 의미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알고리즘을 통해 획기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창조한 이가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고립된 존재라는 역설 그 자체가 <소셜 네트워크>의 진심인 셈이다. 지금도 전세계의 많은 이들이 모니터 앞에 앉아 몇 번의 클릭을 통해 자신에게 허락된 가상의 공간에서 소셜 네트워크에 몰두하고 있다. 그 수많은 관계의 알고리즘 속을 떠도는 이들의 풍요로운 인간관계는 과연 얼마나 유효한가. 본질이 사라진 피상의 세계에서 거대한 허상의 네트워크 속을 떠도는 유저로서의 일상을 즐기는 현대인들은 고독한 현실로 회귀해야 한다. 당신은 그를 친구로 받아들이겠습니까? 예, 아니요. 당신의 클릭에, 혹은 상대의 클릭에, 관계의 유무가 결정되는 지금, 당신도 소셜 네트워크하고 있습니까? 아니, 하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의 고독은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소셜 네트워크다. 당신에게 그 관계는 진짜가 아니다.
2010년 11월 17일 수요일 | 글_민용준 beyond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