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전직 CIA 요원 프랭크(브루스 윌리스)는 전화상담원인 사라(메리 루이스 파커)와의 전화통화를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다. 어느날 괴한들의 습격을 당한 그는 뭔가 문제가 일어났음을 간파하고, 사라와 함께 피신한다. 그리고 예전 자신과 함께 같이 일했던 조(모건 프리먼), 마빈(존 말코비치), 빅토리아(헬렌 미렌)와 힘을 합친다. 한편 이유 없이 이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은 현직 CIA 요원 쿠퍼(칼 어번)은 프랭크 일행을 추격한다.
<레드>는 DC 코믹스의 동명 만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전직 CIA 요원이 자신을 암살하려는 현직 CIA 요원들과 싸운다는 이야기는 만화보다는 영화가 더 어울릴 정도로 흡입력이 있다. 노인이 된 그들이 젊은 CIA 요원들과 맞짱 뜬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과연 그들이 어떻게 해서 위험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은 영화의 원동력이다. 프랭크와 친구들은 모두 가슴속에 ‘젊음’이란 뜨거움을 갖고 있다. 물론 프랭크는 연금이나 받는 처지고, 조는 요양병원에 입원중이며, 마빈은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빅토리아는 꽃꽂이에 열중하는 게 그들의 삶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 뜨거움을 발산하기로 결정하고 지금껏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역시 만화가 원작이라서 그런지, <레드>의 액션은 만화적인 색채가 강하다. 빗발치는 총알세례 속에서도 단 한 발도 맞지 않고, 총알 한 발로 바주카포를 막아내는가 하면, 수류탄을 야구공삼아 멀리 날려 보내는 모습은 만화적이다. 또한 만화 원작의 캐릭터와 장면 구성을 고스란히 가져온 영화는 원작의 재미와 감성적인 부분까지 함께 드러낸다.
역시 전체적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건 브루스 윌리스다. 그는 <다이하드>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호쾌한 액션연기로 관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총을 자식처럼 여기며 자유자재로 펼치는 총격 액션부터, 육탄전을 벌이는 타격 액션까지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다. 존 말코비치는 얼마 없는 머리카락 휘날리며 총격신을 소화해내고, 헬렌 미렌도 특유의 카리스마로 저격수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영화의 액션과 함께 노장 배우들의 입담은 재미를 더한다. 브루스 윌리스는 칼 어번과의 액션신에서 널 가르친 선배가 자신한테 배웠다는 대사로, 헬렌 미렌은 꽃꽂이를 하며 몰래 프리랜서 킬러 활동을 한다는 말로 웃음을 전한다.
하지만 <레드>는 다른 액션 영화보다 박진감이나 극적 요소는 부족하다. 액션으로 돌아온 노장 배우들의 연기는 그 나름대로의 호기심을 유발하지만, 총격 액션 이외에는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한다. 게다가 영화의 첫 시작을 효과적으로 펼쳤던 프랭크와 사라의 멜로라인은 점점 그 필요성이 상실된다. 마지막 부분에 사라가 납치되어 프랭크와 친구들이 구하러 떠난다는 설정이 있지만 그닥 신선하지 않다. 다만 배우들의 건재함을 유감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영화의 장점이다. 여기에 악역으로 나오는 리차드 드레이퍼스와 브루스 윌리스의 조력자로 나오는 어네스트 보그나인의 모습도 반갑다.
2010년 11월 1일 월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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