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를 보면 국가 간 전쟁보다 봉토(封土)를 놓고 벌이는 제후들의 싸움이 더 격렬했음을 알게 된다. 전자의 패배가 영토의 일부를 잃거나 명예 손상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후자는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 재기불능 상태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당연히 처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추석시즌용 대형영화들이 각축을 벌이는 현재의 극장가로 옮겨놔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즉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기 위해 단기간 총력을 쏟아 부어야 하는 ‘단거리 경기’ 배급구조가 반드시 멀티플렉스 영화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소자본·독립영화도 이 프레임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현재 상업영화들의 엎치락뒤치락 우열다툼이 한창인 다른 한 쪽에서는 <계몽영화> <땅의 여자> <엉클 분미> <옥희의 영화> <탱큐 마스터 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등 작은 영화들 역시 작은 파이를 놓고 혼전양상 중이다. 메이저급 영화들과는 비교도 안 될 작은 규모의 홍보비지만 ‘심리적 손익분기점’인 ‘1만 명’ 돌파를 위해 안간힘 쓰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참으로 민망한 것이, 말이 쉬워 1만 명이지 작은 영화가 만 명 관객과 만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직접 영화를 만들고 개봉을 시켜봐야 알 수 있을 터. 가까이서 몇몇 영화의 배급을 지켜본 바로는 상업영화 1,000만 넘기는 것보다 힘들다는 얘기다. 손발이 부르트도록 트위터에 매달려야 하고 관객 리뷰 하나에도 일희일비를 거듭해야 하는 것이, ‘더러워서 못 해먹는’게 일상다반사로 널린 나 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연출이나 배급, 홍보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이렇게 (하나 같이 잘 만들어진)작은 영화들이 한꺼번에 걸린 적이 또 있었나 싶은 올해 추석극장가만 놓고 보면, 관객 입장에서야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겠지만, 감독과 피디와 홍보담당자는 그야말로 애간장이 다 녹을 지경일 터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장편데뷔작을 선보인 감독의 입장, 즉 이번 영화의 결과가 다음 작품의 성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강박관념 혹은 초조감이 극에 달했을 테니 말이다.
작년 장편을 개봉한 어느 감독은 단 두 명의 관객을 상대로 GV를 진행하면서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했다. 또 한 독립영화 피디는 상영관에 앉은 극소수의 관객을 보고는 마음이 털썩 내려앉았다고 고백했다. 심지어 <계몽영화>의 박동훈 감독은 자기 영화 스코어에 대해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찍힌 숫자가 나를 놀리는 거 같다”라며 자조 섞인 말을 토해내기까지 했다. 듣는 마음이 아리긴 했지만 누구 탓을 할 것인가. 아무리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상영관을 잡지 못하면 관객의 선택권 밖에 영화가 놓이게 되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도 이것이 오늘날 극장인프라의 실상이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냐고 물어도 내겐 대답할 거리가 없다. 사실이 그렇다. 흔히들 기형적 배급 상영시스템 책임의 대부분을 멀티플렉스에게 묻고 있지만 그다지 정교한 비판은 아니다. 지방에는 여전히 단관개봉관이 많이 있고 오직 돈 되는 영화를 상영한다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그곳의 원칙은 멀티플렉스의 방침보다 훨씬 더 견고하기 때문이다.
관객숫자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상영관 안을 힐끔 쳐다보면서 환하게 웃을 날이 올 것”이라고 덕담을 해주고 싶어도, 몇 명 안 되는 관객 앞에서 마음이 털썩 주저앉던 날의 상처가 그 정도로는 도저히 치유되지 않을 거란 생각에 접기로 하였다. 역시 황제의 싸움보다 제후의 싸움이 상처가 더 깊고 큰가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놈의 영화가 사람 여럿 잡는다.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