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원빈에게 <아저씨>는 훗날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 불려도 무방한, 아니 그렇게 불릴 작품이다. 특히 꽃미남 스타로서의 가치는 훼손하지 않으면서, 연기 보폭을 넓혔다는 것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선보인 변화라는 점에서 앞선 사례들과 차별화 된다는 말이다. <아저씨>는 원빈으로 시작해 원빈을 거쳐 원빈으로 끝나는, 게다가 감독이 원빈의 장점을 너무나 절묘하게 뽑아낸 ‘원빈표’ 영화다. 대사처리상의 어색함이 없지는 않지만,(“너는 내 티오피야”의 오글거림보다 약하니 참을만하고) 그보다 많은 장점들이 새롭게 발견된다.
사고로 아내를 잃은 전직 특수 요원 태식(원빈)은 홀로 전당포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세상과의 벽을 쌓은 그의 유일한 말동무이자 친구는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옆집 꼬마 소미(김새론)뿐이다. 소미와의 우정을 쌓아가던 어느 날, 소미의 엄마와 소미가 마약밀매 조직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소미 엄마가 전당포에 맡긴 마약으로 인해 사건에 휘말린 태식은 소미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내러티브만 놓고 보면, <아저씨>는 결코 매력적인 영화가 아니다. 냉철한 살인병기와 소녀의 우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레옹>이 어른거리고, 납치된 소녀를 찾아 나서는 부분에서는 <테이큰>의 기시감도 느껴진다. <달콤한 인생> 등의 그늘도 서려있는 영화는 홍콩 느와르의 컨벤션(장르 영화의 관습적 요소)들도 다량 함유하고 있다. ‘한 남자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소녀를 구하러 길을 떠난다’는 기본 뼈대를 위해 뒷받침 돼야 할 공감도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투성과 단점들이 원빈이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흥미로운 변형들을 일으킨다. 도시의 건물을 맨몸으로 뛰어 오르는 파쿠르(야마카시)와 동남아 무술 브루나이 실라트, 필리피노 칼리, 아르니스 등의 액션이 원빈의 육체를 통해 체화되는 순간, 이질적이면서도 오묘한, 그래서 인상적인 기이한 분위기가 자라난다. 지독스럽게 냉혈한처럼 굴다가, 자기 사람에게는 지고지순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태식이라는 캐릭터는 관객이 원빈에게 기대하는 판타지의 최고치를 뽑아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양하게 시도된 숏과 숏들의 움직임, (어설프게 상대를 용서하다가 뒷통수 당하는 일 따윈 없는)앞만 보고 내달리는 거침성도 통쾌한 쾌감을 안긴다.
아닌 게 아니라, <아저씨>는 한국 영화들에서 보기 힘든 씨퀀스들을 여럿 보여준다. 창문에서 뛰어내린 원빈이 땅에 착지하는 순간을 잡아낸 장면이 그 중 하나. 마치 하나의 테이크로 찍은 듯 보이는 이 씬은, 사실 여러 번의 테이크로 완성된 장면으로 영화가 미장센과 액션의 완성도에 얼마나 신경 썼는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비록 <본 얼티메이텀> 의 탕헤르 씬(촬영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맷 데이먼의 뒤를 따라 뛰어내리며 촬영)에서 보여준 카메라 워크와 유사한 아쉬움이 있지만,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는 장면을 뚝심 있게 구현한 건 높이 살만하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간과하기 쉬운, 사운드가 또렷하게 들린다는 것도 인상 깊다. 칼날과 칼날이 부딪힐 때 내는 미세한 소리부터, 상대방의 가슴에 칼이 움푹 꽂히고, 뼈가 아스러지고, 팔 다리가 잘려나가는 소리 등이 굉장히 리얼하다.(사운드에 민감한 관객이라면,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다.)
<아저씨>를 올 여름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신 올 여름 가장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준 작품을 꼽으라면, 크게 망설여지지 않을 작품이다. 원빈의 필모에서 가장 반짝이는 영화를 선택하라면? 이 부분에서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 대답은 분명 <아저씨>다.
2010년 8월 2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