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명제로 시작하자. ‘기억은 개인의 것이고 역사는 집단의 것이다. 달리 말해 사적 기억과 공적 역사는 차이가 있으며, 역사는 기억을 상위한다.’ 이 말은 참인가? 우리는 때때로 기억과 역사를 동일시하곤 했다. 기억을 개인적이고 국지적이면서 사소한 일상의 편린이라고 여겼다면, 역사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집단에서 발생한 숭고한 행위의 총합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여기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 있다. 기억은 너무 개별적이어서 자의적이고 산만하며, 변덕스럽고 신뢰성이 없다는 식의 단정이다. 때문에 보잘 것 없는 개인의 기억은, 역사에 편입되어 통치를 받아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즉 개인의 사적 기억은 역사의 강고한 질서에 편입된 채 일차 원료의 공급처로 착취당해왔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기억은 역사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전쟁영화는 언제나 집단과 개인의 기억이 충돌하는 격전장이곤 했다. 전자가 우위에 있을 때 전쟁은, 인류평화를 위한 강대국의 헌신적 희생과 우정의 장으로 묘사되었고, 후자가 앞서면 반영구적 자원획득을 위한 폭력행위가 강조됨으로 해서 반전의 기치를 드높이는데 일조하였다. 한편 1950~70년대 사이 이 땅에서 만들어진 전쟁영화들, 그러니까 반공영화라는 이름의 국책영화들은 개인의 기억이 스며들 여지를 봉쇄해버림으로써 그 소임을 완수할 수 있었다. 이들 영화가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않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아 우후죽순 격으로 기획, 제작되는 (현란한 비주얼과 물량공세를 앞세운) 영화들이, 보수이데올로기 고양에 복무할지도 모른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할리우드의 무수한 전쟁영화들, 즉 웨스턴으로 시작하여 양차대전과 월남전을 거쳐 걸프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 역시, 평화와 인류애를 빙자한 팍스아메리카나의 탐욕스런 얼굴을 띄고 있다. 이처럼 전쟁영화는 당대 정권과 국가이익에 따라 사적 기억을 훼손하거나 소멸시키면서 역사를 앞장세우는데 유용한 장르로 사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장대한 스펙터클과 남성연대가 피워내는 비탄의 드라마는 관객의 가슴에 국가지상주의를 심어놓기에 더 없이 적합해 보인다.
그러나 기억은 기록을 남기는 법이다. 사적 기억이 역사에 밀려 보잘 것 없는 사건으로 전락하기 직전, 이를 극적으로 건져 올린 적도 있었는데, 이는 국가보다 개인을 주목하거나 거대집단에 대항하여 사람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보편적 인류애를 획득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 고귀한 죽음을 승리의 자양분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 숭고한 눈물과 고귀한 희생을 값싸게 전시하지 않는 것, 영화가 전쟁을 다룰 때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들이다.
한국전쟁 당시 포항여중에서 산화한 71명의 학도병 이야기를 그린 <포화 속으로>는 영화의 완성도는 차치하고라도 그 자체로서 뜻밖의 의미를 가진다. 비슷한 시기에 기획 제작된 영화들 중 가장 먼저 개봉함으로써 대체적인 경향을 파악하는 데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예상했던 대로 영화의 개봉과 동시에 평자들 사이에서는 ‘반공영화’다 ‘아니다’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진 바 있고, 일견 적절한 듯해 보이나 소모적인 논쟁이란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일련의 논쟁과는 별개로, <포화 속으로>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이 영화가 ‘집단의 기억’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떤 방식의 변용·차용을 통해 ‘집단(개인)의 기억’을 제 것처럼 가장하게 될까.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간략하게 요약하면, <포화 속으로>는 반공영화와 반전영화 사이에서 어느 한쪽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스펙터클을 과다 소비하는 데 그친 평범한 오락영화이다. 거칠게 말해서 히트 앤드 런을 시도하고도 병살을 당한 드문 케이스이다. 강 대위가 폭발 화염을 뒤로 한 채 다리를 건너오는 장면으로, 이 영화의 거취는 분명해졌다. 이를테면 사적기억을 재구성하여 공적역사로 치환시키려 했으나, 이마저도 강박적 반공이데올로기와 비주얼에의 유혹에 발목이 잡혀 어정쩡한 영화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실재했던 사건을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사적 기억을 집단의 기억으로 탈바꿈시켜놓으며 거창한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일이야 비일비재하지만, <포화 속으로>의 경우처럼 온갖 장르적 컨벤션을 차용하면서 오로지 ‘국가 안위’를 기치로 내세우다가,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모든 것을 다 잃고 마는 영화도 보기 힘들 것이다. 때문인지 기획 제작자들은 하나 같이, “전쟁의 이념을 떠나 인간애를 강조한 작품”이라면서 섣부른 정치적 해석을 차단하고 있으나, 진실로 인간애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학생을 사지로 내몬 전쟁의 폐해와 무능하고 무책임한 기성세대와 국가에 대한 질타가 선행되었어야 맞다(<작은 연못>이 그려내는 지옥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준엄한 경고, 곧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양민의 몫으로 남겨진다.’던 메시지를 기억해보라).
반전영화는 고사하고 최소한 전쟁 속의 인간을 그릴 요량이었다면,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ㅡ날로 전쟁에 익숙해져 가는ㅡ애국청년의 형상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영화는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을 맞아 최후의 일전을 벌이고 장렬히 산화한 71명의 학도병의 원혼을 달래는 진혼곡이 되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을 뿐이다(애초부터 그럴 의도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힘들게 꺼낸 가슴 아픈 이야기가 공산주의를 겨냥한 진군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역사가 그간 누려온 권력의 비밀은 집단적 정체성이라는 큰 자산을 보유한 데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에 따라 우리시대의 이른바 ‘세계화’ 물결은 기존의 집단정체성을 크게 침식했다. 민족, 국가, 계급 등과 같은 전통적 집단에 대한 긴밀한 유대감은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다. 설사가상으로 현 정부와 보수주의자들은 지난 10년의 진보정권을 거치면서 국가이데올로기의 유대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마침 한국전쟁 발발 60년이라는 호기를 맞아 공적 역사에서 독립하려는 개인의 기억을 묶어둘 수단, 즉 탈역사화의 억제책으로 ‘전쟁영화’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동시대 집권층의 이념에 배치되는 영화가 국가기관의 협조를 얻기 힘들다고 볼 때, <포화 속으로>는 애초부터 반전영화가 되긴 힘든 운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화 속으로>의 치명적 오류는, 세상의 변화에 역행하는 세계관을 드러낸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까 여전히 국가라는 이름하에 자행되고 용인해온 폭력과 폐해를 ‘역사’ 속에 가뿐히 편입시켜 버림으로써, 학도병의 장렬한 죽음을 선택적으로 이용한다. 슬픔과 비탄의 역사를 그럴싸한 스펙터클로 소비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군인 대 군인의 전투가 아닌 누가 봐도 결과가 빤한 학생과 군인의 전투적 상황이 이를 뒷받침한다. 대체로 민간인의 죽음은 군인의 전사보다 감정적 동요를 한층 더 불러오기 마련이다. 하물며 때 묻지 않은 학도병임에랴. (대게의 전쟁영화가 그렇듯이) 인물을 원경으로 잡아 식별불가능하게 만들어놓은 후에 대량살상을 벌이는 초반 전투 신과는 달리, 학도병이 등장하면서 카메라는 인물 하나하나를 열거하고 그들의 특징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마치 ‘조국을 위해 장엄한 희생을 치룰 각오가 되어있는 너의 친구와 당신들의 삼촌 얼굴을’ 보라고 하는 듯하다. 이렇게 가까이서 인물을 소개함으로써 이들의 죽음은 전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병사의 죽음과 차별화된다. 친근한 자의 죽음,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의 희생이다. 감정의 동요가 남다르고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학도병의 죽음은 그렇게 친근하고 순수한 이미지로 가공되면서 한국전쟁이라는 비탄의 기억을 길어 올린다.
낙동강으로 떠나기 전, 강 대위는 묻는다. “학도병은 학생인가, 군인인가”라고. 이 질문은 전쟁발발과 동시에 부산으로 도망쳤던 이승만과 그 하수인들에게 물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같은 물음은 대대적인 전투를 앞둔 학도병 중대장 오장범의 입을 통해 재확인 된다. 같은 질문에 “학도병은 군인이다!”라고 답하는 학생들, 기성세대가 차마 알려주지 못한 학도병의 운명을, 국가가 결정짓는 순간이다. 이처럼 <포화 속으로>는 경향 각지에서 모인 청춘들이 (즉각적이고도 성실한) 행동양식의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국가의 부름이 개인을 압도하는 가장 극적인 순간을 죽음의 카니발로 펼쳐 보인다. 전쟁에 대한 어떠한 반성과 성찰도 없이 그저 9,000원짜리 스펙터클로 소비해버렸다는 말이다.
이제 역사는 급기야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자본주의적 관광 상품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과거는 어렴풋한 기억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종래의 민족사적 관점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힘들어졌다. 요컨대 역사는 일종의 오락거리가 되어버렸다. 때문에 공적 역사로부터 개인의 기억이라는 탈 역사화작업은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영리하게도 <포화 속으로>는 탈역사화의 경계를 횡단한다. 즉 전장의 스펙터클을 MTV 화면처럼 나열하면서 눈요깃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학도병의 안타까운 희생으로 반공의식을 고취시키더니, 시체더미를 헤치고 마침내 나타나 학도병의 주검을 품에 안은 국군장교의 처연한 뒷모습으로 휴머니즘을 앞세운다는 것, 무엇보다 절대 절명의 국가위기 상황에서 위아래 할 것 없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려야 한다는 식의 국가지상주의가 학도병들의 눈빛으로 그려질 때, 이미 전쟁은 개인의 영역으로 들어와 안착한지 오래다. <포화 속으로>가 반전을 다루기는커녕 인간애를 그린 영화조차 될 수 없는 이유이다.
독일의 사회과학자 아스만 Assmann 부부가 제시한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 개념에 따르면 「한 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형식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상징물, 도상, 묘비, 사원, 기념비 또는 제의와 축제 등이 없으면 기억은 오래 전승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억을 놓고 벌이는 사회·정치 투쟁의 과정뿐만 아니라, 그것을 조건 짓는 문화적 가치체계, 특수한 기억을 매개로 결속된 ‘기억공동체’, 그리고 기억의 예술적 형상화 및 그 매체 등이 주요 대상으로 포함된다. 결국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분명해진 점은, 일견 기억보다 우월해 보이던 역사도 실은 포괄적인 ‘기억문화’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집단적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집단적 교훈’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집단의 기억은 상기하기가 아니라 일종의 ‘약정’이다. 전쟁을 소재로 하면서 자국의 국가이익과 집권헤게모니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진 일련의 영화들, 이를테면 <포화 속으로>를 비롯한 유사 반공영화들이 취하는 자세 또한 이와 상통한다. 즉 전쟁의 아픔을 보여줌으로써 한동안 잊고 지낸 공산주의의 잔혹성과 반공의식의 재무장을 독려하려는 것. 그리하여 ‘빨갱이’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살 것을 ‘다함께’ 약속하자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되었다. 휴전 이래로 무수한 전쟁영화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전쟁영화는 단지 전쟁의 참상을 그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과 이름 없는 무명용사로부터 학도병에 이르는 전사자들을 호명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된다. 전쟁영화는 ‘전쟁이 불러온 참혹한 피해를 고발하는 한편, 전쟁이 평범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며, 전장에 선 군인의 인간성을 말살시키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내기에 이르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기억이 공적 역사로부터 끊임없이 탈주를 모색하고 있는 시대에, 여전히 ‘집단의 기억’으로 국가이데올로기에 복무하려는 영화들이 선보인다는 점은 대단히 염려스럽다. 설사 그럴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개인의 희생을 담보삼아 공적 역사를 공고히 하는데 이용될 소지가 농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일한 소재의 작품에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붓는 일이 한국영화에 도움 되는지 자문해 볼일이다.
(추신) 빅뱅의 TOP(최승현)은 분명 ‘올해의 발견’에 견줄만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포화 속으로>에서 기억나는 건 이것뿐이다.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