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8월, 포항에서 벌어진 71명의 학도병과 북한군의 전투를 소재로 한 <포화속으로>의 전말은 이렇다. 포항을 지키던 남한 강석대(김승우) 부대는 낙동강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어쩔 수 없이 포항을 비우게 된 강석대는 71명의 학도병 중 전투 경험이 있는 장범(최승현)을 중대장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소년원 대신 전쟁터를 선택한 갑조(권상우)가 장범을 무시하면서 학도병들 사이에는 분열이 일어난다. 마침 박무랑(차승원)이 이끄는 인민군이 포항을 공격하면서, 어린 학도병들은 포항을 사수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
볼거리는 차고 넘친다. 영화 3분의 1가량을 채우는 전쟁 씬이 슬로우모션과 익스트림 클로즈업,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만나 세련되게 중무장했다. 한편의 CF 같고, 뮤직비디오 같다. 소위 말하는 때깔 면에서는 어떤 영화를 붙여놔도 떨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결코 사이즈나 하드웨어가 아니다. 오작동이 난 소프트웨어가 문제다. 스타일에 지나치게 경도된 영화는 스토리를 지나치게 비약하며 빈틈을 노출한다. 이재한 감독은 학도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 말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학도병들이 자신을 투사해가면서까지 애국심에 복무한 타당한 드라마가 소환됐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는 학도병들의 그을린 얼굴만 있을 뿐, 그네들의 애타는 심정은 없다. 충돌하던 두 인물이 적의 출현으로 화합하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와 문제 많은 청춘들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하다는 낯 뜨거운 클리셰도 넘쳐난다. 한 번쯤은 웃겨줘야 한다, 는 한국영화 특유의 코믹을 향한 강박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어머니를 향한 장범의 감동 없는 편지 또한 아쉬움이 크다. 영화는 중간 중간 사건의 중심에 있는 장범이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을 내레이션과 함께 집중 포화한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였다면, 나쁜 카드는 아니다. 하지만 그 카드마저도 살리지 못하는 바람에, 정말 나쁜 카드가 돼 버렸다. 장범의 편지를 잠시 훔쳐보면 이렇다. “어머니, 아무리 적이지만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초딩’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교훈적이고도 밋밋한 편지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식의 노골적인 감정적 호소는 또 어떤가. 세련된 영상미와 부딪혀 불협화음을 낸다.
이 영화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정체성을 잃은 라스트 옥상 씬이다. 한껏 멋을 부리던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과시적이면서도 과장된 액션을 화면 가득 채운다. 북한군과 맞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장범과 갑조는 트렌치코트만 안 둘렸을 뿐이지 주윤발의 영혼이고, 람보의 화신이다. 이 옥상 씬을 못 만들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튄다는 거다. 작품 분위기에 안 어울린다는 거다. 그로 인해 멋 부린 느낌이 (심하게)든다는 거다. 홍콩 느와르 <첩혈쌍웅>의 리메이크 작인 <더 킬러>를 차기작으로 준비 중인 이재한 감독은 혹시 촬영장을 혼동한 것일까? <더 킬러>에 대한 예고편 같은 생각마저 든다.
결국 고(故) 이우근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띄운 ‘편지 한통’에서 시작된 <포화속으로>는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버지의 깃발>이 얼마나 잘 만든 영화였는가를 절감하게 한다. 최근에 나온, <허트 로커>가 얼마나 신선한 전쟁 영화였는가를 새삼 느끼게도 한다. 그리고 하드웨어가 아무리 좋아도 소프트웨어가 따르지 못하면 비실거릴 수밖에 없음을 알려준다. 국방부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고 했던가. <포화속으로>는 한국 전쟁영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고 말았다.
2010년 6월 15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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