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 '숏!숏!숏!'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황금시대>는 영화제의 10주년을 기념으로 만들어진 단편 영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영화제 측은 '돈'이라는 주제만 정해놓았고 각 감독들은 각자의 개성에 맞는 영화들을 제출했는데, 각각의 영화들이 품고 있는 색깔들이 제각각이라 흥미롭다. 아주 선이 고운 영화부터 섬뜩한 스릴러 영화까지 각자의 색을 품은 결과물들이 <황금시대>라는 제목으로 묶여져 있다. 먼저 각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녀는 예뻤다>의 최익환 감독의 '유언 Live'는 말 그대로 빚더미에 떠밀려 막 죽으려고 카메라 앞에 선 두 남자의 이야기다. 고정된 카메라 앞에서 각자의 사연을 늘어놓고 서로를 비난하며 죽음의 비탄에 빠져있다가도, 여자 친구의 투정어린 한 마디에 죽기로 한 것은 다 잊어버리는 두 남자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특히 시장의 한켠으로 보이는 가게 안에서 별 짓을 다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무심한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과의 대비가 흥미롭다. 결정적인 '한 방'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남다정 감독의 '담뱃값'은 불량소녀가 노숙자에게 돈을 주고 담배심부름을 시키려는 과정과 그 이면을 통해, 모든 것이 돈으로 맺어지는 듯 하지만 실상은 금전적인 관계로는 아무것도 해소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좀 작위적인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10분 내외의 짧은 단편으로는 함축적으로 '돈'에 대한 성찰을 적절히 꺼내드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결정적인 '한 방'이 있는 영화로는 권종관 감독의 '동전 모으는 소년'을 꼽겠다. 이 영화는 무엇인지 아직 정하지 못한 자신의 꿈을 위해 동전을 모으는 소년이 주인공이다. 성실하게 동전을 모으며 꿈을 이루어가던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고 자신의 소박한 꿈 하나를 완성해 나가지만, 그 꿈이 배반당하자 돈을 말 그대로 '무기'로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김종관 감독은 영화 내내 서정적인 톤을 유지하면서도 미세한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는 재기를 발휘한다.
<후회하지 않아>로 독립영화계의 흥행 신화를 쓰기도 했던 이송희일 감독의 '불안'은 '돈'이라는 도구가 인간 관계를 끝장내는 한 순간을 보여준다. 어느 곳으로 이동하는 부부, 산 속을 지나가면서 아내(박미현)는 점점 더 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남편(박원상)은 그러지 말라고 계속 달래지만, 아내의 불안은 폭발 직전에까지 이른다. 감독은 그 감정의 표면을 클로즈업을 통해 보여주며 넌지시 그 불안의 도화선에 '돈'이 있음을 설명한다. 10편의 영화들 중 가장 인물들의 감정이 폭발하는 영화다.
김은주 감독의 <톱>은 '돈'의 의미를 호러 장르에 실으려고 하는 시도가 돋보이는 영화다. 심야의 철물점을 지키는 청년(유연석) 앞에 귀신으로 보이는 여인(주은)이 등장한다. 젖은 머릿결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여인, 청년은 여인이 원하는 톱을 건낸다. 분위기에 치중하는 호러 장르의 규칙을 따르다보니 영화의 결말은 좀 허무한 편이다.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를 연출한 양해훈 감독의 <시트콤>은 제목처럼 시트콤 장르의 요소들 즉 세트임이 분명해 보이는 공간, 관객 환호의 효과음, 과장된 연기 등을 통해 '철거민 문제'라는 우리 시대의 비극을 희극적으로 풀어본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이 시대의 악마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되묻는 질문이 섬뜩한데, 주제 의식이 잘 정돈되어있다기 보다는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편이기도 하다.
앞에 배치된 <시트콤>과의 정반대의 스타일로 묵묵한 흑백 영화인 채기 감독의 <가장 빨리 달리는 남자>는 역설적인 제목으로, 노숙자로 보이는 한 남자(조성하)의 일상을 따라간다. 추레한 모습으로 거리를 거니는 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경쟁에서 떨어져 나가버린 남자의 고단한 삶을 반추해 보게 한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윤성호 감독의 <신자유청년>은 가장 개성 넘치고 신랄한 단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시사평론가로 유명한 진중권씨와 유운성 영화평론가, 기자 허지웅, 동료 단편 영화 감독들이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하는데, 계속 로또에 당첨되는 임경업(임원희)이라는 인물과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돈'에 의해 변화되는 타협과 의식의 문제를 재치있게 다룬다. 연속 로또 당첨이라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짧은 순간이나마 돈에 의해 의식이 급속히 변하는 우리 삶의 모습을 반추해보게 된다. 허황된 자본주의 의식과 그 의식에 기댄 정치적 선택까지 반추해 보는 감독의 능력이 돋보인다. 반복 감상하면 더 곱씹을만한 구석이 많은 영화.
<거울 속으로>를 연출했던 김성호 감독의 는 '돈'이라는 주제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영화다. 보컬리스트 조원선이 출연하는 이 영화에서 '10원'이라는 화폐 단위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과거의 그녀석(유형근)으로부터 받았던 10원짜리 동전은 물질적 가치을 초월해 '강한 추억'의 기호로 대치된다. 즉 이 영화에 '돈'은 관계를 규정짓는 도구라기보다는 '추억'이라는 관념의 물질적 기호로 사용된다. 감독은 이 '기호'와 관련된 여러 기억들을 아련하게 소환해낸다. 당연히 이 '10원'의 사용은 남다른 의미를 지니게 됨은 물론이다. 단편들 중 가장 따스한 느낌의 영화다.
<내 청춘에게 고함>과 <보트>의 김영남 감독의 <백 개의 못, 사슴의 뿔>은 여성노동자 은실(조은지)과 사장(오달수)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여성노동자는 아직 받지 못한 임금을 받으러 왔고 사장은 여성노동자를 피한다. 돈의 미지급으로 둘의 관계는 평등해지는데, 오히려 평등해진 관계로 인해 둘의 관계는 좀 더 인간적이며 친숙해진다. 개성 넘치는 배우들인 조은지와 오달수 특유의 연기톤에서 비롯된 독특한 귀여움이 돋보이는 영화다.
10명의 감독의 10편의 단편 모음이라는 옴니버스 영화라는 특성상 <황금시대>는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큰 고민에 들게 하는 ‘돈’이라는 주제를 여러 개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10분 내외의 길이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각 감독의 역량을 살펴보는 것 역시 놓칠 수 없는 옴니버스 영화의 재미다.
DVD
DVD의 영상은 평균적인 수준이다. 당초 한정된 예산이 주어진 단편 프로젝트라는 것을 감안하면 깔끔한 수준. 각 작품마다 색감의 톤은 다르지만 전체적인 화질의 질 자체의 차이는 거의 없는 편이다. 2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역시 깔끔한 수준. 조금 먹먹한 부분이 있지만 크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다. 독립 영화 계열의 작품으로는 의례적으로 서플먼트가 포함되어 있다. 10작품 중 7편의 작품에 감독의 음성 해설이 들어 있으며, 최익환 감독의 경우에는 <유언 Live 1-1>이라는 조금 다른 버전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김성호 감독이 연출한 뮤직 비디오가 포함되어 있으며 극장용 예고편도 수록되어 있다. 최근 들어 출시되는 독립 영화 계열의 DVD들에 서플먼트가 거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분량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음성 해설들은 챙겨 들어볼만하다.
황금시대 (렌탈용) Short! Short! Short! Show Me The Money
출시사 : 아트서비스
Starring : 구교환,이민웅,김은주,김예은,서민성,기파랑,김원희,박미현,박원상,유연석,주은,노형욱,윤영삼,소유진,윤동환,윤승훈,조성하,임원희,손순영,조원선,유형근,박형준,오달수,조은지
Director : 권종관,김영남,윤성호,최익환,채기,이송희일,양해훈,남다정,김은경,김성호
Running Time : 114 Min
Video Format : 1.85:1 아나몰픽 와이드스크린
Audio Track : 한국어 / 돌비디지털 2.0
지역코드 : 3
관람등급 : 15세 이용가
디스크수 : 1disc
자막 : 한국어, 영어
스페셜피쳐 : 음성해설(<유언 Live> 최익환 감독, 전려경 PD, <담뱃값> 남다정 감독, 김동영 촬영감독, <동전 모으는 소년> 권종관 감독, 손원호 촬영감독, <톱> 김은경 감독, <시트콤> 양해훈 감독, <신자유청년> 윤성호 감독, 유운성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Penny Love> 김성호 감독) / <유언 LIVE 1-1> / 예고편 / 뮤직비디오 COCORE "Move Yo 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