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 <욥기> 41장엔 리바이어던이란 지상 최강의 괴물이 나온다. “땅 위에는 그것 같은 것이 없나니 두려움 없게 지음을 받았음이라.”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인 토마스 홉스는 국가를 리바이어던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홉스는 개개인한텐 천부적인 자연권이 있지만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려면 그 권리를 양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권리를 양도 받는 대상이 곧 국가다. 홉스는 인간을 이기적인 이리떼에 비유했다. 이리떼를 통솔할 리바이어던 같은 절대 권력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홉스는 말한다. “국가란 인간이 신의 창조를 모방하여 만들어낸 인조 인간이다.”
홉스가 인간은 무조건 자신의 자연권을 국가한테 양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건 아니다. 홉스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권리를 지녔다고 여겼다. 국가는 그 권리를 위임 받는 존재였다. 설사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제약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국가가 개인 위에 군림한단 의미가 아니었다. 개인과 국가는 평등했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국가의 개념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뿌리를 대고 있다.
하지만 300년 뒤 케네디는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해 줄지 묻기 전에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지 물어라.” 어느새 개인과 국가의 관계가 역전된 거였다. 이제 국민은 군대 갔다 왔는데 예비군에도 가야 했다. 산업 역군이 돼서 수출 전쟁터에도 나가야 했다. 출산율이 낮으면 열심히 애도 낳아야 하게 됐다. 홉스가 서거한지 정확하게 430년이 지난 지금 국가는 정말 지상 최강의 괴물 리바이어던이 됐다.
슬픈 일은, 리바이어던이 지배하는 게 우리의 신체적 사회적 자유만이 아니란 사실이다. 우린 어린 시절부터 국가가 최우선이란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국가를 침략했던 주변 나라들에 대한 증오도 배운다. 어느새 개인이 개인보다 국가를 더 우선시하는 국가주의적 인간으로 자라난다. 국가는 자기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을 정교하게 진화 시켜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영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보면 2차 대전에서 마주친 두 적성 국가가 얼마나 소름 끼치도록 닮았었는지를 알 수 있다.
2PM의 박재범 씨가 자기 공간에 한국을 비하하는 저급한 글들을 써놓았던 바람에 이 땅에서 추방당했다. 박재범 씨나 대한민국이란 말에 분루를 삼키는 네티즌들이나 모두 국가주의의 피해자다. 박재범 씨는 미국인이다. 미국인만큼 자기 나라가 최고라고 착각하는 국민도 없다. 국민의 절반이 의료 보험이 없는데도 의료 보험을 개혁하겠다는 대통령한테 미국엔 아무 문제 없다며 삿대질을 해대는 나라다. 박재범 씨도 이유 없이 다른 나라를 깔보도록 육성된 미국 청소년일 뿐이다. 한국의 네티즌들도 나을 게 없다. 모두가 대한민국과 맹목적인 짝사랑에 빠졌다. 국가의 틀에 갇혀서 사고한다.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못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자꾸만 인터넷에서 반복되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리바이어던 탓이다. 우리가 괴물을 만들었고 스스로 괴물의 노예가 됐다.
2009년 9월 11일 금요일 | 글_신기주(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