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늦가을, <반두비>의 시나리오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던진 말은 이랬다. “와우, 이거 센걸. 다 좋은 데 청소년관람불가 나올 거 같아 걱정이야” 그때 신동일 감독의 답, “설마요...힘겹기도 하지만 꿋꿋하게 나아가는 한 소녀의 성장드라마인데.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은 조심스럽게 연출할겁니다” 그러나 그게 감독의 연출만으로 될 일인가.
2009년 6월, 아니나 다를까. 여고생이 마사지 숍에서 일하는데다가 그곳에서 담임선생님과 마주치기까지 하는 영화, 육두문자와 “졸라”가 스크린에 흩날리는 이 영화, 청소년에게 유해할까? 당근, 유해하지! 내 생각이 아니라, 그러니까 현직 대통령을 설치류 동물에 비유하여 묻거나 한국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이 위대한 미국원어민강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데,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불철주야 불침번을 서고 있을 영상물등급위원회 나리들이 15세 관람가 등급을 주겠느냐 말이다.
지난 6월 3일 영등위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를 통해 등급논란에 대한 영등위의 입장을 밝혔는데, 예상대로 황당한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례적이고 즉각적으로 단행된 이 인터뷰가 시사하는 점은, 재심을 통한 등급번복의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것과 현 정부에 배치되는 영상표현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영등위의 결연한 의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인터뷰에서 밝힌 등급사유에 한국인비하와 현 정권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관한 얘기가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이 양반, 성격이 소심한 거야? 아니면 현직 대통령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불경죄에 해당한다고 지레 겁먹은 거야. 게다가 정작 인터뷰 당사자는 영화도 제대로 안 본 듯하다. 영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대고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일고의 논의할 가치도 없는 영등위의 주장은 교회에다 헌금이나 해버리고 흥분을 가라앉힌 후 생각해보자. 본시 훌륭한 영화란, 관객으로 하여금 감독의 세계관에 동화되어 작품을 경험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개인의 신념 체계마저 흔들리게 만든다. 때문에 어떤 영화를 본 첫 관람자가 불편함을 느꼈고 영화에 묘사된 모든 불온한 것들이 현실로 이어지리라는 우매한 확신이 들 때, 그리하여 그 관람자가 무언가를 희생양 삼아 분노와 비판을 표출하고자 한 결과에 대한 것이라면 굳이 애석해야만할 이유는 없다. 달리 보면 그만큼 훌륭한 작품이라는 반증일 수 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반두비>의 개봉이 20일 밖에 남지 않았다. 배급홍보사의 바쁜 행보가 시작될 시점이고 감독은 노심초사 개봉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청소년관람불가가 확실시 되는 영화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홍보하고 많은 이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느냐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소규모 개봉에 등급까지 발목을 잡으니 불리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으로 볼 일만도 아니다. 영등위 관계자의 억측대로 등급논란을 마케팅 재료로 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개봉 전까지는 등급에 대한 논쟁을 극대화하고 개봉 후에는 작품에 대한 평가를 통해 관객층을 확보하자는 말이다. 또 민서 역의 백진희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주노>의 엘렌 페이지를 찜 쪄 먹고도 남을 <반두비>의 백진희” 이런 것 말이다. 사실이지 신동일의 영화 속 여배우들은 얼마나 매력적이었나.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누이의 모습으로 뭇 사내들의 애간장을 태운 홍소희의 고혹적인 자태하며, 기성세대에게 거침없는 하이 킥을 날릴 때의 씰룩거리던 백진희의 통통한 볼 살과 입술이라니. 전주국제영화제 상영당시 혈기 방자한 청년들이 백진희의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탄성을 질렀다는 소문도 있고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테다.
나 역시 누구보다 개봉에 맞춰 많은 청소년이 <반두비>를 관람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일이지만 아직 재심결과는 나오지 않았고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결과가 어떻든 신동일이 영화 만들기를 그치지 않고 개별 작품마다 품질을 인정받는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관객과 만나는 작품들 속에 <반두비>도 있을 것이고 그중에는 2009년 6월에 보지 못한 것을 애통해했던 청소년도 있을 터이니 이 정도면 행복한 상상이지 않나? 그러니 비록 청소년관람불가의 족쇄가 풀리지 못할지라도 너무 분통 터뜨리지 말자. 결국 영화와 그 속에 담긴 감독의 마음은 변함없을 테니까. 애초에 내가 그리고 우리가 '흥행'감독 신동일을 지지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2009년 6월 8일 월요일 | 글_백건영 편집위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