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히트작 〈쿵후허슬〉의 속편 기획에 들어간 주성치의 (좀 묵은) 신작 〈장강7호〉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영화제작자로 개성이 원숙의 경지에 들어간 주성치가 내놓은 신작 〈장강7호〉는 특이하게도 외계인을 소재로 한 가족 드라마. 그 간의 주성치 영화와 비교해 볼 때 무척이나 색다른 소재를 선택한 것 역시, 한편으로는 주성치답다고 하겠다. 장난감으로 오인할 만큼 귀여운 외모를 가진 외계인 〈장강7호〉의 특별한 능력, 주성치는 또 다시 헐리웃의 오랜 소재를 가지고 자기 식으로 다듬어 영화로 내놓았다.
우주에서 떨어진, 독고다이 생명체
인간보다 훨씬 크고 거대하며 흉폭한 힘을 지닌 생명체마저 〈킹콩〉이나 〈쥬라기 공원〉처럼 돈이 된다 하면 구경거리로 삼는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가득한 지구에 홀홀단신으로 떨어진 이방인이 아무런 능력도 없을 리 없다. 아예 〈포가튼〉처럼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있던가 〈엑스파일〉처럼 거대 정부와 손을 잡던가, 그도 아니라면 〈프레데터〉처럼 단신으로 한 부대를 절단낼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갖추고 있어야 이 험한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따뜻한 이야기를 표방한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대개 홀로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은 허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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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지친 천재 스티븐 스필버그가 어깨에 힘 빼고 찍은 1982년 영화 〈E.T.〉에서 찾을 수 있다. 야심작 〈미지와의 조우〉 최종편집권을 놓고 제작자들과 싸움을 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젊은 스티븐 스필버그는 가볍게 찍을 수 있는 SF영화를 기획했고 곧 〈E.T.〉를 내놓는다. 외계 지성과의 첫 만남을 〈미지와의 조우〉처럼 진지하게 접근했던 하드코어 SF 마니아는 좀 쉬고 싶었고, 외계 지성과의 첫 만남이라는 기조는 유지한 체 가벼운 가족영화를 만들었다. 역대 흥행 기록에서 많이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대형 흥행은 관림 나이 대를 가리지 않는 가족영화에서 터지는 법, 아이가 원한다면 온 가족이 출동해야하는 현실이 한 번에 판매되는 티켓의 수를 확 불려주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선지자가 부활 후에 하늘로 돌아가는 플롯으로 예수 이야기의 메타포로 종종 회자되기도 하는 〈E.T.〉는 쭈글쭈글하고 목이 길며 배까지 볼록 나온 괴상한 체형에 나체로 돌아다니는 변태적인 취향에도 불구하고 호소력 있는 이야기와 친근감 넘치는 캐릭터로 80년대 아동 문화를 선도했다. 기록적인 흥행을 거둔 영화보다도 완구류, 팬시 상품 등 부가 상품이 거둬들인 성과가 더욱 대단한 수준. 외계인의 초능력은 병을 고치고 온갖 물건을 날아다니게 하는 데보다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데 있던 모양이다.
홀로 남아 생명을 얻은, 독고다이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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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혹은 일부 순수한 어른과 교류하는 홀로 지성에 대한 이야기는 〈E.T.〉의 성공 이후 여러가지 방법으로 변주된다. 대개의 플롯은 겉모습과는 상관없이 귀엽고 선한 행동을 하는 생명체와 (일반적으로 인간 측 주인공인) 순수한 조력자, 이를 오해하거나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른들의 대립구도다. 로봇이 이상한 이유로 감정과 생명을 얻게 되었을 때 결론 역시 비슷하다. 성공적으로 〈E.T.〉를 변주했다고 평가 받는 (지금은 픽사의 흥행작 〈인크레더블〉〈라따뚜이〉의 감독으로 유명한) 브래드 버드의 초기 작품 〈아이언 자이언트〉가 가장 성공적인 결과가 되겠지만, 귀엽되(?) 사람보다는 훨씬 커다란 존재인 〈아이언 자이언트〉보다는 외모적으로 사람보다 작으며 잘 보면 〈E.T.〉와 비슷하게 생긴 로봇 5호가 등장하는 1986년 영화 〈조니5 파괴작전 Short Circuit〉이 더 비슷한 예가 되겠다. 군사용 로봇으로 만들어진 모델 중 하나인 5호가 시범 중에 번개를 맞아 생명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의 영화는 대단히 잘 만든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화 중 5호와 사람 사이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가 인기를 끌어 속편 〈조니 5 파괴작전 2〉까지 만들어졌다.
지금 관객이라면 영화 속 로봇 ‘5호’와 최근 개봉작 〈Wall E〉의 주인공 로봇이 흡사한 외모를 가진 것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다. 둘 모두 지능, 혹은 생명을 가진 로봇이자 성실하고 선한 영화 주인공이다. 더불어 〈E.T.〉의 플롯을 잇는 영화로 선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나쁜 의도를 가진 어른들과 대립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괴력을 숨겨둔 미지의 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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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생명체가 나쁜 의도를 가진 어른과 대립하는 이야기가 꼭 그대로 변주된 것은 아니다. 악동 조 단테는 스필버그 사단에서 만든 영화 〈그렘린〉을 가지고, 이 주제를 보기 좋게 뒤집는다. 영화에서 차이나타운에서 살 수 있는 신비의 생명체로 등장하는 ‘기즈모’는 작고 귀여우며 착하지만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금기를 가지고 있다. 물에 닿으면 안되며 12시 이후에 먹을 것을 줘서는 안된다는 것. 당연히 금기가 깨지며 영화가 진행되고, 그 결과는 물에 닿아 수많이 증식하는 기즈모 클론과 먹을 것을 먹어 사악하게 변해 나타난 〈그렘린〉이다.
착하고 귀여운 생명체 내부에 쉽게 증식하는 사악함이 공존한다는 설정은, 악당의 역할을 탐욕스러운 어른에게 몰아버린 설정보다 의미심장하다. 결국은 〈E.T.〉에서 시작한 이종 생명체에 대한 메타포가 인간 내부에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탐욕과 다르지 않다는 놀라운 깨달음!
이제 공은 〈장강 7호〉라는 작은 생명체를 영화로 끌고 와 순수한 아이와 대면시킨 주성치에게 넘어갔다. 주성치 특유의 방식으로 그동안 헐리웃에서 인간 내면의 탐욕과 대립하거나 대변하는 역할을 했던 소재를 어떻게 변주할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일이다.
2008년 8월 26일 화요일 |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