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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레이서>를 위한 변명!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응원
2008년 5월 19일 월요일 | 하성태 기자 이메일


“이미지와 상징들이 현실을 지배한다는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감독들은 영화를 통해 ‘진실이 때론 끔찍하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매트릭스>의 네오, 키아누 리브스의 말이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촬영 전 워쇼스키 형제가 그에게 장 보드리야르의 대표작 <시뮬라시옹>을 읽게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맞다. 워쇼스키 형제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팬이다. 오죽했으면 이 책을 영화 속 네오가 불법 소프트웨어를 숨겨뒀던 책으로 등장시켰을까.

워쇼스키 형제는 분명 괴짜거나 천재들임에 틀림없다. 그들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영화적 세계를 부정하는데 공을 들인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세계에 저항하는 이야기 구조들이 그러하다. <매트릭스> 시리즈의 기계들이 인간의 기억을 지배하는 가상현실, 제작과 각본을 맡은 <브이 포 벤데타>의 제3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 하의 2040년 영국이 그렇다. 심지어 느와르의 공간에서 장르성을 교묘히 비트는 데뷔작 <바운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워쇼스키 형제가 돌아왔다. <매트릭스> 2편, 3편이 6개월의 시차를 두고 개봉했던 2003년으로부터는 5년. 마침내 회심의 역작 <스피드 레이서>가 당도했다. 외양만 보면 어둡고 음침했던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은 듯 하다. 일탈과 전복, 혁명이란 메시지도 온데간데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기존 것을 고수하며 테크놀로지에 대한 실험을 가열 차게 진행 중인 야심가들일 뿐이다.

레이싱과 애니메이션, 저항 정신이란 키워드

자그만치 3억 달러를 쏟아 부운 <스피드 레이서>는 시․ 청각적 황홀경이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최전선이다. 무엇보다 짜릿하고 눈부시다. 속도감에 있어 역대 최강이며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칼라풀한 화면이 지속된다. 10대 취향이라고? 분명 고전적인 이야기 위주의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이라면 당황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지에 도취되어 숲만 보고 나무를 놓치면 대략 낭패다.

일단 <스피드 레이서>로 진입하기 위한 단서 세 가지. 누가 뭐래도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하면 불릿 타임(Bullet-Time Effect)을 떠올릴 관객이 다반사일 것이다. 건물 옥상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한껏 허리를 굽혀 총알을 피하던 바로 그 명장면. 카메라 120대를 놓고 1초에 100프레임을 찍어 냈다는 플로 모션(flow motion) 기법은 99년 개봉 당시 영상 혁명으로 받아들여졌었다. 그들의 행보에 대중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그러나 <매트릭스> 시리즈의 개인적인 명장면 중 하나는 바로 2편 <리로디드>의 카 체이스 신이다. 실제 고속도로를 재현한 2마일짜리 세트에서의 역주행 카 체이스 신은 분량과 물량을 넘어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한 이 분야 최고봉이었다.

두 번째로 워쇼스키 형제가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열혈 팬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것. ‘네트는 광대하다’는 세계관이나 사이보그 여형사 쿠사나기나 바트의 이미지를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와 모피어스(로랜스 피쉬번)에게 이식시켰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사람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부터 상상력을 공수 받아 왔음을 자랑으로 여겨왔다. 그리고 이번엔 TV 에니메이션과 망가로 알려진 <마하 고고고>다.

마지막으로 세계관. <매트릭스>의 시리즈의 근간은 어쨌건 저항 정신이다. 성서에 기초한 해석이랄지 이러저러한 철학적 담론들로 의견이 분분했던 <매트릭스>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지적 유희라고 치부해버리는 건 개인의 취향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매트릭스> 시리즈는 기존 수퍼히어로 시리즈물과 차별성을 분명히 할 정도로 우울한 세계관을 견지하면서도 철학적 담론을 공격적으로 수용했다.

그것이 포스트더니즘 시대, 다양한 담론을 흡수한 젊은 관객들이 <매트릭스> 시리즈를 단순한 SF 액션 영화로 폄훼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스피드 레이서>는 형식적으로 이를 한 차이를 한 차원 뛰어넘은 시도이며, 좀 더 폭넓은 관객들을 아우르려는 야심이 만난 결과다.

전무후무한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현란한 결합

시작부터 화면가득 펼쳐지는 알록달록 총천연색 칼라의 향연,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새겨진 로고 ‘Speed Racer’. 그런데 잠깐, 낮보다 밤이, 빛보다 어둠이, 실외보다 실내가 어울렸던 그 워쇼스키 형제 작품 맞느냐고?

이건 순전히 원작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원작 <마하 고고고>는 1967년 52부로 일본에서 방영되고 이후 미국을 강타한 저패니메이션으로 자극적인 원색이 주조를 이뤘던 시리즈다. 워쇼스키 형제를 재패니메이션의 세계로 이끈 만화와 TV시리즈로 국내에서는 <달려라 번개호>로 소개된 바 있다.

물론 만화와 가족, 성장 영화의 탈을 쓴 <스피드 레이서>는 전작들보다 부드러워 진 것이 사실이다. 어린이 관객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고, 간간이 유머도 구사한다. <매트릭스>의 다소 과격한 세계관을 지지했던 이들이라면 유치하다고 외면할 만한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나 레이싱이란 소재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형식적 관심 외에도 워쇼스키 형제의 세계관은 만큼은 분명 변치 않았다.

우선 내용을 보자. 주인공은 레이싱을 위해 태어난 스피드 레이서(에밀 허쉬). 그가 레이스 중 사망한 형에 대한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레이서 모터스’가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거대 기업 ‘로열튼’의 음모에 맞서 최고의 레이서로 거듭 난다는 단순 명료한 이야기 되겠다.

<스피드 레이서>는 ‘만화적이다’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시작부터 끝까지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의도로 가득 차 있다. 원근법을 무시한 채 한 프레임 겹겹으로 끼어드는 이미지로 인해 만화경을 들여다 볼 때의 착시 효과를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실사 아니메 영상(live-action anime look)’으로 명명된 이 기법들은 이제는 3D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우리에게 마치 추억의 셀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색감? <딕 트레이시>란 영화를 기억하는가? 미국 코믹 북의 색감을 그대로 실사 화면에 옮겨 놓았던 워렌 비티의 획기적인 프로젝트의 개봉년도가 무려 1990년. 그로부터 18년 뒤, 비슷한 색감일지언정 워쇼스키 형제는 한 차원 높은 전혀 다른 질감의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냈다. 왠지 팝아트와 키치 문화를 언급하는 것도 머쓱할 정도다. 그러니까 <폴라익스프레스>나 <베오울프>는 물론 기존 실사와 CG를 결합하려는 할리우드의 시도와는 다른 길을 모색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가공할 만한 컷의 분할로 인한 속도감 또한 역대 최고다. <매트릭스 리로디드> 오토바이 경주 장면이 실제를 염두에 둔 아슬아슬함으로 오감을 자극한다면, 영화 전반을 잇는 4회의 경주 대회는 가상현실의 안락함으로 포장된 상태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짜릿함을 온몸으로 체험케 한다. 솜씨 없는 문장과 스틸 컷 몇 장으로 레이싱 장면의 화려한 비주얼과 스피디한 쾌감을 따라잡기란 역부족인 지경이다.

또한 게임 화면과도 같은 액션 장면들은 원화평 무술 감독의 지도아래 정교한 합을 이뤄냈던 <매트릭스>시리즈와 결별하는 지점이다. 셀 애니메이션과 같은 아날로그적 화면 아래서 ‘스트리트 파이터’와 같은 동적인 향연은 분명 낯설지만 새로운 종류의 시각적 훈련이 되어줄 터다.

진실이 때론 끔찍할수 있다구!

하지만 이러한 시각적 쾌감과 혁신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워쇼스키 형제가 매달리는 것은 ‘진실이 때론 끔찍할 수 있다’는 명제다. <매트릭스>가 인간들을 지배하는 ‘기계’들과의 싸움이었다면, <브이 포 벤데타>가 역사적인 맥락에 가깝지만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었던 파시즘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스피드 레이서>의 적은 좀 더 즉물적이고 현재적 관점에 가깝다.

그러니까 워쇼스키 형제는 스승 장 보드리야르의 가르침에 따라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지만 그건 단지 허상일 뿐이라고 경고하는 중이다. 영화의 초반부터 일찌감치 등장하는 로열튼 회사는 근대적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다.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난장이들 마냥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졌지만, 대기업 로열튼 그룹은 오직 주가 상승을 노리고 레이서(노동자)들을 사육하고 조련하는 현실의 초국적 기업과 다를 것이 없다.

이들에 맞서기 위해 앞장 선 건 탁월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 스피드지만 뒤에서 이를 조력하는 건 가내수공업의 가치관을 상징하는 레이서 가족의 구성원들이다. "대기업 스폰서는 악마와도 같다"거나 "스폰서가 언론을 지배하고" 또 "큰 회사들은 다 위협적이다"라는 대사들은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정서다.

레이싱으로 세상을 바꾸리란 희망에 차 있던 주인공은 결국 레이싱 대회가 거대 기업들의 자본 논리와 조작으로 돌아간다는 '끔찍한 진실' 앞에 절망하며 '허상'의 실체를 깨닫는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의 충고는 심금을 울린다. "우리의 의지가 중요한 거야. 넌 세상을 바꾸려 했잖아."

사실 '속도=스피드'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발과 진보를 등가로 받아들이는 근대적, 단선적 시간간과 맞닿아 있지 않은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일 수 있다고 폄훼할 수 있지만 <스피드 레이서>의 가족주의는 거대 자본에 대항하는, 장인의 자리를 이어받는 소규모 가족 기업과 닮아 있다.

이 순수한 열정을 찬양하는 가족 개개인은 시스템의 '허상'을 뒤늦게, 스스로 깨달은 <매트릭스>의 구성원들일 뿐이다. <스피드 레이서>가 식상한 가족주의에 대한 찬양으로 함몰되지 않는 건 그들이 견고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저항하는 개개인들이기 때문이리라. 이 순진한 가족들과 스피드 또한 시스템의 ‘허상’을 뒤늦게, 스스로 깨달은 것뿐이다.

그리하여 과도한 시각적 현란함은 워쇼스키 형제가 의도적으로 <매트릭스>의 암울한 현실과의 대비시키려는 의도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관객 또한 <스피드 레이스>의 세계를 주인공의 눈높이에 맞춰 보라는 주문인 셈이다. 그러니까 가상과도 같은 이미지에 포획된 레이스 패밀리의 현재를 스크린에 재현하고, 그 눈앞에서 재현된 '허상'에서 관객도 함께 깨어나길 촉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순정파 형제, 낙제점을 받아도 괜찮은 걸까?

혹자들은 밝은 얼핏 가족 영화를 답습하는 듯한, 터무니없이 밝아진 워쇼스키 형제에게 변절이란 딱지를 붙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빤한 수순으로 진행되는 큰 얼개를 두고도 뻔한 아동용 성장 스토리라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우려는 일정정도 현실로 나타났다. 북미 박스오피스 첫 주 주말 스코어 1,850만 달러. 망했다, 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해외 성적도 <아이언맨>의 절반도 못미친 우리를 포함해 기대에 못 미치긴 마찬가지다. 미국 내 평가를 보자. IMDB나 야후 관객 평점은 6.5, B를 받았으니 중간 정도다. 혹평은 엄숙주의에 빠진 일반 매체나 평론가들에게서 나왔다. 로튼토마토는 35%로 썩은 토마토라고 낙인 찍혔고 야후 비평가 평점도 C다. 미국에서 ‘아니메’는 마니아들의 장르다. 키치적 비주얼이 전세계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먹히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무언가 있어 보였던 <매트릭스>에 비해 아동 취향으로 비춰질 만한 소지가 다분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SF 액션이란 장르를 변주했던 <매트릭스>와 비교해 복잡다단한 실험을 선보인 <스피드 레이서>의 가치는 쉽사리 폄하될 만한 성질은 아닌 듯 싶다. 4번의 큰 레이싱 대회를 플롯의 중심으로 삼고, 그 중간 중간 개개인의 복잡한 플래시백과 주변 인물사를 배치하는 전개는 더욱 견고하면서 스피디하다. 네오 개인의 갈등과 성장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매트릭스>와 비교해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또한 철학적인 담론의 나열로 액션신의 빈 공간을 채워 넣었던 <매트릭스> 시리즈 중 2, 3편이 비대해진 덩치에 비해 작품에 대한 호응도가 떨어졌다는 점을 상기시켜 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워쇼스키 형제는 파격적인 형식 실험 안에 전세대를 아우를 코드로 무장한 채 자신들의 세계관을 지켜냈다. 설사 지금까지의 세상이 자본주의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세계일지라도, 그걸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은 여전히 전통적인 가치라는 깨달음. <매트릭스>에서의 네오와 트리니티의 키스신을 떠올려 보라. 워쇼스키 형제는 예상보다 순정파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트랜스포머>와 <아이언 맨> 그리고 복고 취향의 <인디아나 존스4>의 좀 더 단순명료하고 고전적인 블록버스터와 비교해 좀 덜 대중적이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스피드 레이서>는 점점 더 자본주의에 포획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진심어린 응원은 분명 의미가 있다. 워쇼스키 형제여, 의기소침하지 말고 힘내시라! <매트릭스> 또한 열광적 지지자들과 철학적 담론의 형성은 꽤나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났음을 잊지 마시길.

P.S 그리고 ‘RAIN’ 정지훈의 할리우드 워밍업

LA와 홍콩 등 전세계 프리미어에 참가하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비는 <스피드 레이서>로 전혀 잃을 게 없어 보인다. 주연이 아니라고 투덜댈 팬들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예상보다 훨씬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토고칸 모터스’의 후계자이자 스피드와 경쟁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태조 토고칸을 연기한 비의 첫 영어 연기는 별다른 어색함 없이 무난해 보이며, 안정된 발차기 연기와 초콜릿 복근은 보너스다.

극중에서 다소 신경질 적인 면모를 보이고, 약간의 배신을 감행하지만 비열한 인물로 전락할 만큼 전형적인 악당은 절대 아니니 안심하시길. 전형적인 아시아 캐릭터일 뿐이라는 혹평에 대한 답은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을 들려주고 싶다. 비의 팬이라면 드라마 <이 죽일 놈의 사랑>의 득구 캐릭터를 떠올릴 법 하다.

전세계 개봉을 일정을 기다리는 비의 “할리우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대한다”는 바람은 좌절됐지만 그 공과는 자신의 것이 아니니 패스. 이미 차기작으로 워쇼스키 형제의 조력자 조엘 실버가 제작하는 동양적 액션 영화 <닌자 어쎄신>이 4월 말 첫 촬영에 들어갔다고 하니 첫 주연작을 다시금 기대해 보자. <스피드 레이서>는 비의 할리우드 입성을 위한 남부럽지 않은 워밍업으로 평가될 것이다. 참, 엔드 크레딧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RAIN’이란 네 글자가 낯설면서 반갑다.

2008년 5월 19일 월요일 | 글_하성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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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lby8318
홍보가 과하다고 느낄 정도로 재미없나봐요?
무비스트 점수 도로 원래대로 돌아가니까 참여도가 떨어진 거같다는   
2008-05-20 01:24
joynwe
레이싱 에니메이션...
홍보가 좀 과했었던 듯...   
2008-05-19 21:58
theone777
보면서 실망, 큭 ㅜ   
2008-05-19 16:57
kyikyiyi
한국서 큰 인기를 받고 있진 못한듯   
2008-05-19 15:40
callyoungsin
괜찮은 작품이지만 크게 흥행할 만한 작품은 아닌듯   
2008-05-19 15:27
ldk209
워쇼스키 형제의 작품이 사실 그렇게 흥행성을 인정받는 영화들은 아니잖아요.. <매트릭스>가 워낙 뜨는 바람에...   
2008-05-1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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