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영화들을 보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따라가기에 혈안이 돼 있다. 어떻게 규모를 키울 것인가에 치중해 다양한 재미거리와는 담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물량공세에 집중하면서 이야기가 헐거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외형을 고스란히 답습한다고 할까. 하지만, 근자의 중국영화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화려한 볼거리마저도 제공하지 못한다는데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체격은 좋아지고 체력은 저하된 현대인들의 체형을 닮았다.
이안 감독의 중국식 무협영화 '와호장룡'이 미국에서 1억 달러 이상의 흥행 성공을 거두면서 중국 감독들에겐 그들의 방식이 미국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 예술영화 감독이었던 장이모우 감독이 무협 블록버스터 '영웅'으로 그 행보를 180도 선회한 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홍콩의 중국 반환 또한 무시 못 할 요인 중 하나다. 홍콩이 반환되기 이전 중국영화는 한때 아시아를 점령하다시피 했다.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를 탄생시킬 정도로 느와르가 활개를 치기도 했지만 다양한 영화들이 공존했다.
'영웅'을 필두로 '연인', '황후화' , '연의황후', '삼국지', 최근 국내에 개봉된 영화들의 공통점을 보면 막강한 물량공세를 꼽을 수 있다. 중국의 풍부한 인적자원을 활용한 수천만의 엑스트라만 돋보일 뿐 이야기나 비장미, 감동 면에서 예전 중국 무협 영화만 못하다. 영화의 규모가 커지면서 '귀신이 온다'. '유리의 성', '신투첩영', '집으로 가는 길'처럼 재미를 선사했던 멜로와 첩보 등이 실종된 것도 아쉽다.
한마디로 다양성이 실종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국내에서 흥행이 안 된다는 판단에 수입사들이 꺼려하는 이유도 한 몫 한다. 중국 정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기에 중국의 화려했던 옛날을 조명하는 것도 한 요인이리라. 원화평 등이 할리우드에 진출하면서 합작형 블록버스터가 늘어난 것도 무시 못 할 일이다. 주윤발, 이연걸, 성룡 등 스타들이 할리우드로 빠져나간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들이 얽혀 현재 국내에서 개봉되는 중국영화들은 수많은 인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극속의 그렇고 그런 장면들만 재탕해 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영화들도 한때 이런 상황에 빠져있었다. 당시 제작비 얼마라는 홍보 문구가 최고 자랑이었다. 하지만, 그런 영화 치고 영화적으로나 흥행적으로 별 재미를 못 봤다는 것이다. 장르는 물론 제작비 규모 역시 다양해져야 그 나라의 영화 산업이 건강한 것이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곧 식상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3번 이상하면 싫증난다고 했다. 특히 겉모습이 화려한 것일수록 그 생명력이 짧다. 대규모 군중 씬이 CG가 아닌 실제 사람들이라는 것도 한 두 번은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 자꾸 반복되면 그저 한 씬일 뿐이다.
분명 중국영화에는 그들 특유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크기에 치우쳐 버려 그 매력이 뒷전이다. 중국영화도 아니고 할리우드 영화도 아닌 그런 어중간한 영화가 아니라 "참 중국인들다운 발상이다"라고 얘기하고 싶은 영화를 만나고 싶다. 이제 곧 블록버스터의 계절이 시작된다. 이는 곧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계절이란 의미다. 그래도 모두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만 보는 건 아니다. 블록버스터에 식상한 관객들을 위해 현대극이든 시대극이든 중국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이제 만나고 싶다.
2008년 5월 8일 목요일 | 글_김용필 객원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