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레드 카페에서의 친절함으로 언론의 야유를 반전시킨 키아누 리브스 팬들에게는 킹왕짱 미안하지만, <스트리트 킹>의 주요 키워드는 ‘LA’란 도시와 소설가 ‘제임스 엘로이’다. LA 4부작으로 유명한 제임스 엘로이가 각본에 참여했으니 불을 보듯 뻔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단연 장르도 하드보일드 범죄물이다.
그리하여 신문도, 잡지도, 영화도, 소설도 보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밝힌 제임스 엘로이의 머릿속 현재의 LA는 그가 자라왔던 50~60년대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LA폭동이 일어 난지 벌써 15년. 버럭 오바마가 대선에서 열풍을 일으키는 시대라고 하지만 인종적으로 한층 더 다분화된 LA는 이방인에겐 여전히 무법천지로 보인다. 그걸 <스트리트 킹>은 장르 공식에 충실하면서 꽤나 섬세하게 재현해 낸다. 도시와 인물, 그리고 폭력의 묘사로 말이다.
부패한 형사가 구조적인 악과 맞닥뜨린다는 이야기.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커티스 핸슨의 <LA 컨피덴셜>, 브라이언 드 팔마의 <블랙 달리아> 등으로 충분히 예습을 한 상태다. 시간적으로 40~50년대라는 걸 빼면 할리우드가 배경이 아닐 뿐이지 <스트리트 킹>의 세계관과 얼개는 난형난제다. 어떻게 다르지 않느냐고? 원래 작가의 세계관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형사다. 3년 전 부정을 저지른 아내를 잃고 알콜 중독에 빠진 톰(키아누 리브스)은 용의자들에게 전화번호부를 휘두를 정도로 막무가내인 형사. 문제는 그와 짝패를 이뤘던 파트너 워싱턴이 배를 갈아타며 내사과에 톰을 밀고하면서부터다. 한국계 아동범죄 조직을 혈혈단신으로 처리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톰은 워싱턴을 가볍게 손 봐주려하지만 하필 그때 슈퍼마켓 노상강도가 워싱턴을 살해하고 도주하고 총기 오발사고까지 겹쳐버린다. 용의자로 지목된 톰은 후배 디스칸트(크리스 에반스)와 함께 살인자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천사들의 도시라는 이름의 로스엔젤레스는 <스트리트 킹>에서는 적어도 아직 아비규환의 무법천지다. <하쉬 타임즈>로 데뷔한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이를 위해 LA을 내려다본 부감 숏을 원 없이 사용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빈번하게 등장하며 천사가 내려다보는 듯 한 효과를 주는 이 익스트림 롱 숏들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LA를 봐달라는 읍소와도 같다. 이건 관습적인 표현으로 보일 수 있지만 꽤나 효과적이다. 느와르에서 친숙한 밤 장면 못지않게 백주대낮의 LA에서의 살해 장면이 더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LA의 조정자는 제임스 엘로이에 의하면 바로 부패한 경찰 권력이다. 폭압적인 무력을 상관 완더(포레스트 휘태커)에게 용인 받고, 팀 전체가 이를 뒷받침하는 무소불위의 시스템. 톰은 거친 남성성으로 무장하고, 수면 아래에는 아내를 잃은 공허함이 자리한 상처받은 늑대 캐릭터다. 제임스 엘로이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성적이기 보다 터프하고 감성적인 주인공이 시스템의 개처럼 충실하다 어떠한 계기로 ‘개안’해 거대한 악을 뿌리 뽑는 전형적인 구조. 친구였던 워싱턴의 살인범을 쫒는 톰은 그러한 역할에 충실한 캐리터다. 이를 키아누 리브스는 <스피드>와 <매트릭스>, <콘스탄틴> 등에서 보여 온 충직하면서 약간은 회의적인 기존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무난하게 요리해낸다.
또 하나,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R등급 영화답게 폭력 묘사에도 나름 공을 들였다. 피가 난무하는 건 기본이요, 대부분의 영화에서 지나치는 ‘총기가 육체에 구멍을 뚫었을 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렇다고 물론 호러 영화 수준은 아니니 안심하시길. 이는 <공공의 적>의 강철중 못지않은 ‘무식함’으로 용의자, 잠재적 범죄자들을 단죄하는 톰의 폭력성, 그리고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린 경찰의 부패상과 맞물려 만연한 폭력의 사슬고리를 시각적으로 전시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그럼에도 <스트리트 킹>이 던져주는 아쉬움은 역시나 호흡에 있다. 할리우드의 고전적 스타일에 충실한 만큼 별 무리 없이 관람 가능하지만, 어떠한 여백이나 성찰의 시간 없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에 차별적인 영화적 재미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특히 익숙한 주제와 예상 가능한 결말로 달려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스타일상의 인장이나 연출 상의 욕심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1급 배우와 각본가를 이끌기에 아직 2번째 작품을 연출한 감독의 내공이 2% 부족했던 걸까. 오히려 기본은 하는 일관적이고 뚝심 있는 연출력에 만족하면 그만일까.
2008년 4월 18일 금요일 | 글_하성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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