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많습니다)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의 <플래닛 테러>는 <데쓰 프루프>(2007)와 함께 "그라인드하우스" 프로젝트를 이루는 다른 한짝이죠. 특별한 호재가 없는 한 국내 개봉은 어려울 것처럼 보이더니 최근 영등위로부터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고 드디어 극장 상영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뭐 그리 대단한 내용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좀비 영화를 기본으로 완전히 갈 데까지 가보는 로드리게즈 감독의 또라이 기질이 100% 발휘된 작품이라고 해두면 되겠습니다. 총에 맞거나 차에 치이면 사람이든 좀비든 물풍선 터지듯이 신나게 펑펑 터져버리고 특히 악역으로 출연한 퀀틴 타란티노의 성기가 오뉴월의 엿 덩어리처럼 녹아내리는 장면은 <플래닛 테러>가 추구하는 엽기 비주얼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 헬리콥터 날개 공격에 도망가던 좀비들이 후두두둑 잘려나가는 장면 또한 나름대로 명장면이라고 해야겠군요.
오프닝 크리딧과 인위적인 스크래치, 듬성듬성한 편집으로 70년대 뒷골목 재상영관에서 즐기던 B급 영화의 향취를 살려내고 있는 점에서는 "그라인드하우스"의 두 작품이 비슷합니다만 <플래닛 테러>는 <데쓰 프루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반 영화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거의 '테러급' 장난을 칩니다. 남녀 주인공의 질탕한 정사씬이 이어지다 말고 필름이 불타 없어졌다는 자막과 함께 중간 장면들을 뭉텅 건너 뛰어버리더군요.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이제껏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등장 인물들이 한 곳에 모여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뭐가 어찌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또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다는 얘기입니다. 남은 건 하던 피칠갑 난도질을 마무리하며 죽을 사람은 죽고 살아남을 사람은 살아 남도록 만들며 영화를 끝내는 일 뿐인 것이죠.
<플래닛 테러>의 좀비들은 바로 이라크 전쟁 참전 용사들입니다. 이상한 화학 무기 때문에 끔찍한 괴물로 변하는 증상을 얻게 된 군인들이 텍사스로 돌아와 난장을 친다는 설정입니다. 그리고 브루스 윌리스가 좀비 부대를 이끄는 인물을 맡아 영화의 처음 장면과 후반부에 등장하며 팬들을 환호하게 만듭니다. 여러모로 팬 서비스의 노력이 남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데쓰 프루프>의 중간 장면에 나왔던 병원이 <플래닛 테러>에서의 주요 장소로 활용되고 있고 <킬 빌>과 <데쓰 프루프>의 텍사스 발음 걸죽한 보안관이 조연으로 다시 등장하며, 라디오 방송 중에 <데쓰 프루프>에서 죽은 DJ의 명복을 빈다는 멘트가 흘러나오는 등 자매 영화와의 연계성에도 신경을 쓴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취향에 따라서는 눈 뜨고 못볼 장면이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스크린으로 팝콘 집어던지며 왁자지껄 한번 놀아보는 연출 의도가 역력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데쓰 프루프>가 무척 좋았습니다만 자기 스타일이나 미학적인 측면에 대한 눈꼽 만큼의 고려도 없이 쌈마이 정신 하나로 초지일관하는 <플래닛 테러>가 "그라인드하우스"의 기획 의도에는 좀 더 부합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글_신어지(영화진흥공화국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