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아버지를 모시며 농사를 짓던 춘삼은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젊다는 이유로 이장으로 선출되지만 자신의 밑에서 늘 부반장만 해온 대규가 지역 군수로 뽑힌 사실을 알고 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37살이 되도록 시골 노총각으로 지내는 자기와 달리 정치계의 젊은 피로 불리며 산촌 2리 얼짱 향순(이현경)을 아내로 삼아 토끼 같은 딸아이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도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 일. 이들의 묘한 경쟁심은 뒤바뀐 신분(?)만큼이나 격렬한 의견충돌로 이어지고 관료주의에 속한 이들의 우정은 애증의 단계로 넘어간다. 젊은 관료의 패기로 청렴한 공무원 생활을 하려는 대규와 사사건건 그의 행동에 딴 지 거는 춘삼의 갈등은 지역 유지인 백사장(변희봉)의 야심에 이용되고, 영화는 결말이 예상되는 뻔한 구조로 흘러간다.
뉴스에서 봤던 정경유착과 뇌물수수, 선거비리를 고스란히 압축한 <이장과 군수>는 흡사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이 ‘(김)영삼’과 ‘(노)태우’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게감 있게 그려진다. 하지만 차승원 특유의 오버스러움과 유해진의 절제된 연기가 코믹하게 섞이면서 영화는 장르적 임무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파김치를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나 시위 중 화장실에서 만난 두 사람의 대화는 관객들에게 폭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은 그때 그 시절의 경쟁상태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이들의 행동은 지나치게 유치하고 유아적이지만 한없이 정겹다. 세월이 지났어도 둘 사이에 존재하는 기억의 편린들은 이들을 싸우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자 뜨겁게 뭉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4년 전 <선생 김봉두>를 통해 차승원과 호흡을 맞춘 장규성감독은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세상 비꼬기를 그대로 답습한 듯 보이지만 배우가 지닌 고정 이미지를 크로스 오버함으로써 한층 성숙된 연출력을 선보인다. 사심 없는 코미디로 완성된 <이장과 군수>는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제 몫을 다했다. 영화 속 배우들이 보여주는 유쾌한 호흡이야말로 애교수준의 PPL과 다소 슬랩스틱스러운 상황을 충분히 보상한다.
2007년 3월 20일 화요일 | 글_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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