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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을 통해 본 현대 공포영화!
2006년 5월 20일 토요일 | 이지선 이메일


밤 늦은 시각 도심의 지하철 역. 막차를 기다리다가 깜박 존 죄로, 한 여자가 텅 빈 승강장에 홀로 남겨진다. 밖으로 나가는 문은 이미 잠긴 상태.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텅 빈 공간에 적막감이 돌고,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할 때쯤, 지하철 한 대가 들어온다. 여자는 서둘러 열차에 오르지만, 이내 멈춰서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습격이 시작된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볼 수 없는 한 밤의 지하철역에서 필사의 도망을 치는 여자. 딱히 원한을 산 일도 없는데, 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그녀를 쫓고 있는 걸까?

지하철, 그리고 영문 모를 추격전.

오는 6월 개봉할 영화 <크립>은 이렇게 시작한다. 대단히 지명도 있는 배우가 출연한다거나, 전무후무한 호러영화의 명장이 연출한 작품은 아니지만, 영화 <크립>은 흥미롭다. 이 별 것 아닌 듯 보이는 영화 안에 현대 공포영화를 꿰뚫는 두 가지 키워드가 보이기 때문이다.

본래 사람은 익숙한 것의 질서가 파괴될 때, 평온한 일상에 균열이 생길 때 불안을 느끼기 마련이고, 그렇게 누적된 불안이 궁극적으로 공포를 유발하는 법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 그리고 또 퇴근길에 인파에 둘러싸여 타는 지하철. 지극히 일상적인 그 공간이 공포의 장으로 변한다는 설정은 얼마나 친숙하면서도 설득력 있는가. 심야의 텅 빈 지하철 역이라는 설정으로 멀쩡한 일상에 균열을 유발한 뒤, 잔인한 살인마의 손길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을 묘사함으로써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대체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살인을 반복하고 있는가를 (결정적인 부분이 되기 전까지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공포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크립>은 꽤 흥미롭고 현대적인 공포영화다.

변화하는 공포

흔히 공포영화라고 하면 귀신, 괴물과의 사투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프랑켄슈타인>, <드라큐라>로 대변되는 초기 공포영화의 양태나, <엑소시스트> <샤이닝> <죠스> <오멘> 같은 공포영화사에 이름을 올린 작품들만 봐도 그렇다.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어떤 존재가 감지되고, 그 힘이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순간, 공포는 시작된다. 불가항력에 의해 난자당하는 인간의 일상(나아가 생명)을 통해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이러한 공포영화의 흐름은, <나이트메어> 시리즈, <링> <폰>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로즈> 등의 작품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호러에 초자연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호러의 소재가 다변화되고, 내적장르가 세분화되면서, 공포를 자아내는 존재들은 초자연적인 것에서 가까이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변화했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동네의 꼬마 아이들, 외딴 집의 살인마. 공포를 유발하는 존재는 초월적이던 지위를 벗어 던지고 관객 가까이로 점점 내려오기 시작했다. <택사스 전기톱 살인마>에서 외딴 집에 살던 살인마는 <13일의 금요일>에서 캠프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할로윈>에 와서 동네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 ‘내추럴한’ 공포의 향연은 <스크림> <데드 캠프> <뎀> 등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초자연계열의 오컬트와 자연계열의 슬래셔로 양대산맥을 이루며 발전해 온 호러는 현대에 들어서면서 좀더 친숙한 코드를 구사하기 시작한다.

일상의 균열을 파고들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거미줄처럼 세계를 얽어매고 있는 시대에 들어서자 공포영화는 더욱 급속하게 시대에 적응해야 했다. 산 속에서, 캠핑장에서 떠나 동네 안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단순히 옆집 살던 친구가 살인마였네, 알고 보니 우리엄마가 아니었네 식의 설정만으로는, 더 이상 관객들이 놀라주지도, 무서워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단련된 관객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 좀더 잔혹한 장면, 좀더 나은 ‘서프라이즈’ 테크닉이 요구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비디오테이프가 죽음을 부르는 매개물이 되고(링), 거울 속에서 도플갱어가 튀어나온다(거울속으로). 업무와 연애 양면에서 고루 쓰이던 휴대전화는 귀신을 부르고(폰, 주온), 아침저녁으로 타고 내리던 엘리베이터에 상주하는 귀신도 등장한다(디아이). 급기야 네트워크를 통해 돌아다니는 유령이 등장하기(피어닷컴)에 이르렀으니, 생활의 가까운 곳에 있는 것들을 공포의 매개로 활용, 멀쩡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고 친숙함으로 인한 잔향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이제 현대 공포영화가 구사하는 일반적 기법이 되었다.

2000년 1편 발표 이후 올해까지 2편의 속편을 연달아 낳으며 승승장구한 공포영화 시리즈 <데스티네이션>의 경우에도 잔인한 죽음 장면이 갈수록 강화된 것은 물론, 회를 거듭할수록 일상화된 죽음장면을 선보임으로써 관객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순서 맞춰 찾아오는 죽음과의 두뇌싸움이라는 설정도 이 영화의 장점이기는 했지만, 진짜 볼거리는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죽음의 형태였다. 전자레인지가 폭발하고, 간판이 떨어지고, 고속도로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하는가 하면, 공사장 밑을 지나다 유리구조물에 깔리기도 한다. 화재가 난 집에서 가까스로 탈출하면 고장난 사다리가 덮치고, 신나게 즐기자고 간 놀이공원에선 롤러코스터가 탈선을 일으키는 식이다. 일상의 모든 것이 죽음을 매개함으로써 공포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살풍경한 도시생활, 더욱 가까워진 공포

이제 도시 안으로 들어온 공포영화는 인터넷과 핸드폰을 넘어 각종 교통수단, 기차(레드아이)와 택시(디아이 2), 그리고 지하철(크립)까지 공포의 매개로 활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그 현장에 원혼과 지박령, 사이코패스와 연쇄살인마를 심어 놓음으로써 안심할 수 없는 일상이라는 잔향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과감히 무시해주는 센스를 갖춘 도시생활자들을 놀라게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었지만, 이런 식의 기대는 의외로 쉽게 충족될 수 있었다. 사이코패스와 묻지마 범죄가 넘쳐나는 시대, 날짜가 바뀔 때마다 쏟아져 나오느니 강력범죄 사건이고,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누군들 공포영화를 보고 후폭풍에 시달리지 않을 것인가.

실제로 현대 도시생활자에게 안전한 곳이란 어디에도 없다. 옆 집에 연쇄강간살인범이 살고 있어도 알 수 없고, 언제 하늘에서 뭐가 떨어질지 모르는 것이 도시생활 이다. 위층의 소음이 시끄러울 때 쇠파이프를 동워하는 센스 정도는 갖춰야 이 험난한 생활을 견뎌낼 수 있으니, 귀신과 악마, 유령과 괴물, 그리고 연쇄살인범과 정신병자가 공존하는 시대, 건조한 도시의 삶을 견디는 괸객으로서는 공포가 생활이고 불안이 삶인 게다. 공포는 도처에 산재해 있고, 불안은 영혼 뿐 아니라 육체마저 잠식한지 오래다. 그리하여 오늘도 핸드폰 액정에 어린 그림자와 영문을 알 수 없는 컴퓨터의 파업에 조차 긴장하는 현대의 관객은 지하철 안에 갖히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오싹하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의 지하철 역엔 막차 놓치고 조는 사람을 깨워줄 공익요원들께서 계시다는 것이니, 오늘도 마음 놓고 막차를 기다리시라. 잠깐 존다 한들, 덩 빈 역에 홀로 남을 위험은 없을 테니까.

7 )
qsay11tem
난해한 영화에여   
2007-11-24 15:16
kpop20
공포영화군요   
2007-05-16 22:12
js7keien
크립 - 골룸, 지하철로 출근(?)한다   
2006-09-29 22:35
enuom
공포영화는 보기전에는 잘모르겠어요
그래서 두번째 표정입니다   
2006-05-30 00:49
yunitell
만약...공익요원이 살인마라면.ㄷㄷㄷ   
2006-05-28 00:56
mjciucu
이 영화 볼 만합니다. 살인마의 모습은...ㅎㅎ 보시면 알고요.   
2006-05-23 12:26
ggadc0
링 다시생각해도 무서운 영화 맞는 거 같습니다. 근데 크립이라는 공포영화가 개봉하는 줄은 지금 처음 알았네요.   
2006-05-2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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