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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인권에 관한 대중적 접근을 시도한 <다섯 개의 시선>은 사실 또 하나의 편견 아닌 편견을 낳은 작품이다. <여섯 개의 시선>도 그랬지만 <다섯 개의 시선>에 참가한 감독 5명은 한국에서 소위 ‘잘 나가는’ 감독들이다. 다시 말해, 편견과 인권을 말하는 영화가 어느 정도 대중과의 소통에서 성공한 이들을 불러 모아 작업을 한 것이다. 장진, 류승완, 김동원, 정지우, 박경희 감독들이 만든 길게는 20분짜리의 단편을 묶어 논, <다섯 개의 시선>은 아이러니하게도 태생적으로 ‘편견’을 안고 시작한다.
이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남자니까 아시잖아요?’에서 류승완 감독은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는 보통의 남성이 갖고 있는 차별과 남과 다름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포착한다. 게이, 학벌 그리고 여성과 남성을 구별한다고 그들이 믿고 있는, 외모에 대한 편견은 한국 남성들의 일상에서 전혀 벗어나질 않는다. 류승완의 영화가 말하듯 편견과 차별은, 사람에 치여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굴레와도 같다. 결국, <다섯 개의 시선>도 류승완의 남자들처럼 그 길 안에서 다른 것을 자각하자는 의도가 강하다.
잘 나가는 감독들을 모아 옴니버스 영화를 만든 것도 그 문화를 소비하는 관객에게 최대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을 게다. 박경희 감독은 여기서 좀 더 세세하게 편견과 차별에 접근한다.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는 다운증후군 ‘은혜’의 생활에 최소한의 드라마틱한 카메라 설정을 배제했다. 은혜는 학교에서도, 엄마 친구들의 수다 속에서도 자신이 남과 다름을 또렷하게 인지한다. 특별한 개연성 없이 은혜의 생활을 따라가는 비장애인 감독은 그도 모르는 편견을 장애인 은혜가 느끼고 있음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송환>의 김동원 감독은 역사와 시대를 아우르는 칼날 같은 카메라를 잠시 접고, 조금만 땅덩어리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민족의 얼굴을 도끼 같은 카메라로 내리 ‘찍어버렸다’
이 두개의 단어를 발음하는 입술 모양이 어쩌면 이렇게 착착 떨어질까나. 그들을 지칭하는 저 단어들 속에 끈끈한 동포애가 묻어난다. 그런데 ‘재.중.동.포’는 입안에서 발음하기가 껄끄럽다. 잘 안 쓰는 단어여서 그런다고 변명하기에 앞서, 재중동포라며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가난’, ‘불법입국’ 아니면 북한말 같은 촌스러운 ‘말투’? 그들은 뼈 저리는 가난보다 또는 힘든 막노동보다 한국인의 차별과 편견이 무섭다고 말한다. 김동원 감독의 ‘종로, 겨울’은 소주 한 병, 막걸리 한 사발을 앞에 두고 우리에게 못내 서운한 맘을 감추지 못하는 재중동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때의 카메라는 흡사 우리를 향해 날을 세운 도끼와도 같다.
장진 감독의 ‘고마운 사람’은 다섯 작품 중, <여섯 개의 시선>도 포함해서, 가장 특이한 작품일 것이다. 학생운동을 하다 잡힌 경신과 그를 고문하는 고문관 사이에서 벌어진 이상한 우정은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는 데서 비롯됐다. ‘인권’의 문제를 얘기하는 듯 보여도 사실 그 기저에는 ‘화해’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누구는 차별과 편견이 부당하다고 하소연하고 누군가는 나와 다르니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그 사이에서 차별을 지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인권을 우선하기에 앞서 차이를 인정하고 ‘화해’를 해보자는 장진식의 제스처는 일순 도발로까지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만들 영화까지 포함해서 이 옴니버스 영화의 편견 릴레이는, 장진식의 제스처를 제스처에서 끝내지 않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고마운 사람’은 그 피할 수 없는 딱 한 개뿐인 결론이다.
정지우는 <사랑니>에서 보여준 작법과는 다르게 ‘배낭을 맨 소년’에서 무미건조하게 북한에서 온 소녀와 소년의 만남과 헤어짐을 담아낸다. ‘북’이라는 말만 듣고 그들을 간첩으로 오해하는 택시기사의 행동은 정치적 통일은 가능하지만 정신적 통일은 ‘불가능’하거나 혹은 힘든 길임을 짐작케 해준다.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을 하찮게 보는 우리의 시선은 사실,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당연시 된지 오래다. 뿌리 깊은 우월감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편견과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이 영화를 현재 보고 있는, 이 문화의 향유가 그 우월감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옴니버스 영화 <다섯 개의 시선>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이 직접 쓴 악행의 자서전이다. 특히, 김동원 감독의 ‘종로, 겨울’은 그 악행의 절정을 참으로 또박또박 쓴 작품일 게다.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밑도 끝도 없는 우월감에 휩싸여 편견을 일삼고 타인의 인권을 짓밟는지 말이다. 영화가 말하는 바가 뼈에 사무치지 않아 다행이다...............
스크린이 꺼지고 극장 불이 켜지면 우린 까맣게 우리의 본 모습을 잊을 것이다. 우린 바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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