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 폭력이 난무하는 음울한 도시 ‘씬시티’에서 창녀는 천사로 불리고, 사랑은 터프가이들의 절대적 ‘신앙’이 된다. 기존 질서의 가치를 전복하는 ‘씬시티’의 생명력은 원작 『씬시티』의 정신을 재현인 아닌, 충실히 ‘모방’하는데서 나온다.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원작자 ‘프랭크 밀러’를 공동감독으로 끌어들이면서까지 영화화한 <씬시티>는 영화사에서 그 계보성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영화다. 필름 누아르와 고딕문화, 그리고 절절한 로맨스를 짬뽕한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만화가 지닌 한계성마저 필름위에 고스란히 노출하는 위험수를 감행하면서까지, 원작의 센티멘털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로드리게즈 감독이 할리우드 주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자적인 제작 방식(트러블메이커스튜디오)을 구축하지 않았다면, <씬시티>는 지금까지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노블 걸작 『씬시티』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태양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도시 ‘씬씨티’는 축축하고 더럽다. 거리는 폭력과 부패로 들끓지만 남자들은 하룻밤 사랑에 모든 것을 건다. 잔혹한 육체에 자신의 인생을 기생하는 마초들이, 찰나적 만남에 인생을 배팅하는 모습은 영화를 매혹적인 멜로판타지로 둔갑하게 만든다. <씬시티>는 세 개의 에피소드를 느슨하게 묶어 놓은 다음, 각각의 이야기에 터프가이들의 피 같은 사랑을 메인디쉬로 안배해 놓는다. 스스로를 노병이라 지칭하며 어린 소녀 낸시를 구하는 하티건(브루스 윌리스)은 선과 악의 분리를 영화 안에서 가장 명확하게 그어주는 인물이다. 범죄와 폭력이 씬시티를 규정짓는 요소라면, 하티건은 그 안에서 그것을 재정의 혹은, 처단할 수 있는 당위성을 부여받은 선을 상징한다.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아직 퇴물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총을 드는 그의 모습에서 느와르의 비정함은 심금을 울리는 싸구려 로맨스로 변질된다. 하티건이 <씬시티>의 불균질성을 일정한 패턴으로 조합해주는 캐릭터라면 야수 같은 외모의 소유자 마브(미키 루크)는 하티건의 대척점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스트레이트한 방식으로 반복한다. 단 한번 자신과 몸을 섞은 후, 차디찬 시체로 변한 빨강머리 여인을 위해 거대하고 추한 불멸의 육체로 불온한 모든 것을 깔아뭉개는 마브에게, '구원'은 오직 몽롱한 의식 속에서 기억나는 골디와의 하룻밤이다. 추악한 도시의 일부분으로 존재한 그에게 악은 애초부터 야수의 형상을 한 육체에 각인되어 있다. 때문에 마브의 복수는 강렬한 악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비장한 숙명론을 타고난다.
딜레마에 빠지는 일련의 상황, 그 안에서 악으로 선을 행하는 마초들.
매춘부들이 지배하는 거리 올드타운은 그들에게 남은 씬시티의 마지막 안식처일 것이다. 드와이트(클라이브 오웬)는 분열증에 시달리지만 천박한 거리의 여성에 대한 일종의 숭배의식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하티건, 마브, 드와이트는 노골적으로 변칙을 가한 변종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선의 편에 선 반-영웅이라면 악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기준은 그들의 사랑을, 즉 그들의 여자에게 해를 가할 때 적용된다. 아동성도착증 유괴범, 여자를 먹는 식인킬러 그리고 도덕적 잣대의 기준이 되는 종교의 편협함은 여성의 육체를 통해 썩은 치부를 드러낸다.
마초의 도시 씬시티에서 여성은 유혹의 기술보다 총을 몸 깊숙이 숨기는 법을 먼저 터득한다. 필름 느와르의 백미인 팜므파탈의 원형을 따라가고 있지만, 그들은 남성을 파괴하는 존재기보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신앙의 대상이다. <씬시티>의 여성 캐릭터들은 사실, 남성주의적 시각에서 묘사되었기 때문에 불편한 면이 없지 않다. 스트립댄서인 '낸시'(제시카 알바)의 처녀성, 웨이트리스 셀리의 비천함 그리고 올드타운의 보스 게일의 총은 습기를 머금은 도시에서 유일하게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과잉의 연속 속에서 관객 스스로 '질서'를 잡기는 어렵다. 남성은 폭력과 살기로 내달리기만 하고 여자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천박하다. 천박한 도시, '씬시티'이기에 사랑은 유일하게 타락하지 않은 '신앙'으로 각인된다. 탐정서사, 호러 그리고 스플래터의 잔혹함, 그것도 모자라 현 사회에 대한 풍자성까지 온갖 대중문화에 뉘앙스 깊은 오마쥬를 보내면서도 결국은 코믹스 『씬시티』로 귀결한다. 비현실이라고 느껴지는 흑백의 화면에 포인트 칼라로 정서를 집중하게 만드는 구성방식 또한 원작의 모방일 뿐, 새로운 영화적 시도라고는 할 수 없다. 단지, 원작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영화라는 이질적인 매체 안에 녹여낸 감독의 집념과 디지털 신기술이 놀라울 뿐이다.
흑백의 전경에 빨간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여성. 그녀를 유혹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씬시티’의 야경보다 매혹적이다. 남자는 사랑을 고백하고 여성은 몸을 맡긴다. 그리고 ‘살인’
<씬시티>의 오프닝은, 거부할 수 없는 영화적 유희를 선사한다. 쾌락과도 비슷한 이 감정을 감독은 작정하고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러니, 그저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