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방향>은 ‘우리가 모르는 삶의 실체를 느끼게 만드는 영화’
저기 한 남자가 한적한 북촌의 골목길을 걸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12번째 장편영화 <북촌 방향>의 주인공 성준(유준상)입니다. 그의 직업은 영화감독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성준은 영호(김상중)라는 친한 형이자 영화평론가만 만난 뒤 돌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성준은 영호를 통해 영화과 교수 보람(송선미), 자신의 첫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중원(김의성)을 만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옛 애인 경진(김보경)과 그녀를 꼭 닮은 술집 주인 예전(김보경)도 만납니다. 얼핏 단조로울 것 같지만 성준이 사람들을 만나는 이런 자리가 반복될 때 <북촌 방향>은 점점 놀라워 집니다. <북촌방향>에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의 가능성이 숨어 있습니다. 성준이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때, 여기서 만난 사람과 저기서 만난 사람이 꼭 닮았는데 그걸 한 배우가 연기할 때, <북촌방향>의 이야기는 매번 더없이 흥미진진한 골목길로 굽이굽이 새로 접어듭니다.
<북촌 방향>은 ‘배우를 발견하게 만드는 영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는 재능 넘치는 배우들이 그것도 여러 명씩 늘 출연합니다. <북촌방향>이라고 예외일 리가 없겠지요. <하하하>에 이어 <북촌 방향>에서 유준상은 홍상수 영화의 분명하고도 의젓한 영화적 얼굴로 우뚝 섰습니다. 그의 말과 동작 하나 하나가 이 영화를 살아 있는 무언가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와 반가운 이들도 있습니다. <해변의 여인>에서 활달하고 시원한 아름다움을 보여준 송선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날 선 연기를 보여준 김의성이 빛나는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반면 김상중과 김보경은 늘 함께 해온 배우들인 것처럼 각자의 배역에 더없이 어울리고 멋져 보입니다. 이 명단이 과연 여기에서 끝일까요? 아닙니다. <북촌 방향>에서 음악인 백현진, 기주봉, 백종학 그리고 고현정은 단역으로 출연합니다. 그러니까 궁금합니다. 고현정은 어디에서 불현듯 등장하여 우릴 또 놀라게 할런지요?
<북촌 방향>은 ‘어떠한 곳이라도 가고 싶게 만드는 영화’
<북촌 방향>을 보고 나서 당신은 가령 이렇게 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교회당과 한옥집 사이에 나 있는 소박한 길을 걷고 싶어질 것이고 그러다 좀 지치면 허름한 막걸리집에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싶어질 것이며 이내 마음이 맞는 친구를 불러내 저녁을 먹거나 술을 먹고 싶어질 것이고 그렇게 함께 앉은 사람에게서 인생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질 것이고 그날 당신을 감싼 하루의 날씨와 풍경들을 새롭게 기억하고 느껴보고 싶어질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북촌 방향>을 보고 난 다음 문득 북촌에 가고 싶어진다면, 아니 그 어떤 곳이라도 가고 싶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이 영화가 표현해낸 영화적 감정과 사색에 깊이 물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실 거라고 장담합니다. <북촌 방향>은 그 흔한 상투적 풍경의 우편엽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감정과 사색으로 가득한 기이한 여행기이기 때문입니다. <북촌방향>은 <오! 수정> 이후 홍상수 감독의 두 번째 흑백영화입니다. 그 무채색의 화면 위에 다시 어떤 감정과 사색의 색을 입힐지는 이 영화가 비워둔 당신을 위한 선물입니다.
<북촌 방향>은 ‘신비한 시간적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
겪을 때 마다 새롭고 즐거운 홍상수 감독 영화의 재미 중 하나는 신비한 시간적 경험입니다. 홍상수 감독 영화는 시간의 미로입니다. 우리는 종종 그가 만들어 놓은 시간의 미로 안에서 그의 주인공과 함께 돌고 또 돕니다. 출구는 쉽게 찾아지지 않지만 길 찾기가 멀어진다고 해서 흥미가 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린 잃었던 어떤 삶의 감각을 되찾거나 생생하게 경험합니다. <북촌방향>이 정말 그렇습니다. 뭐랄까요, <북촌방향>은 우리의 삶의 감각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북촌방향>은 삶을 알게 해주는 영화가 아니라 삶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인생에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을 겁니다. 그걸 한 편의 영화가 가능하게 한다는 말이 쉽게 믿기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믿으셔도 좋습니다. <북촌방향>이 기적같이 그런 경험을 선사합니다. 9월8일 북촌방향 쪽으로 서서, 오시는 당신의 발걸음을 기다리겠습니다.
서울의 소소한 북촌 풍경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 중 서울이 주 배경이 되는 영화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오!수정>,<극장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옥희의 영화> 그리고 <북촌 방향>이다. 그간 그의 작품에는 간간히 북촌의 풍경이 등장해왔으나 <북촌 방향>만큼 본격적으로 공간적 배경이 된 영화는 없었다. 영화 속에는 북촌 일대를 거닐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낯에 익을법한 재동초등학교, 정독도서관 등 대표적인 장소가 등장해 보는 이를 반갑게 한다. 특히 <오!수정>에 등장하는 종로의 ‘고갈비집’에서 성준(유준상)이 영화과 학생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장소로 다시 등장하는데 예전의 홍상수 감독을 기억하고 있던 주인 할머니의 도움으로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북촌 방향>의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되는 ‘소설’이라는 술집은 실제로 북촌 골목 어딘가에 위치한 장소이다. 촬영이 있는 날이면 작은 가게 안이 배우와 스탭들로 꽉 들어차, 연말을 맞아 술 한잔 기울이려 찾아온 단골 손님들은 가게 안에 진을 치고 있는 스탭들과 촬영장비를 보며 안타깝게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멋진 여사장님은 단골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만약 여사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북촌 방향>은 지금과는 아주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김의성, <강원도의 힘> 백종학 등 다시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북촌 방향>에는 관객들이 반가워할 만한 다양한 이들이 등장한다.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날선 연기로 많은 호평을 받았던 김의성은 <북촌 방향>으로 17년 만에 홍상수 감독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1998년 <강원도의 힘>을 찍을 당시만 하더라도 연기경험이 전무했던 백종학은 15년의 세월을 둘러와 북촌의 거리에서 성준(유준상)과 안면이 있는 배우로 등장한다. 2006년 <해변의 여인>에서 능청과 내숭을 오가며 우리가 몰랐던 매력을 보였던 송선미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안고 돌아왔다. 이 외에도 <북촌 방향>의 기묘한 엔딩을 장식하기 위해 많은 배우들이 한달음에 달려와줬다. <하하하>에 출연했던 기주봉, 전방위 예술가 백현진, 그리고 홍상수 감독 영화 최다 출연 여배우 고현정까지! 이들은 작은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며 <북촌 방향>의 엔딩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들었다.
7회차, 10명, 17일 동안 만들어낸 북촌에서 벌어진 이야기
홍상수 감독 가장 최근의 전작 <옥희의 영화>는 4명의 스탭이 모여 촬영한 것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북촌 방향>은 이에 비하면 블록버스터급(?)에 가깝다. <북촌 방향>은 총 17일 동안 10명의 스탭이 모여 7회 차에 완성했지만 ‘홍상수 감독은 영화를 쉽게 찍을 것’이라는 일각의 편견과 달리 밀도 높은 촬영 스케줄로 진행됐다. 또한 촬영기간이었던 연말은 크리스마스 연휴까지 낀 기간이라 항상 인파로 붐비는 인사동과 삼청동 일대에서의 촬영은 그야말로 고난주간이었다고한다. 이처럼 통제가 어려웠던 현장과는 달리 매일 오전에 출력되는 쪽대본과 롱테이크로 완성되는 한 씬, 한 씬을 완성하기 위해 스탭과 배우들에게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됐다. 홍상수 감독의 현장은 조금만 대사가 틀리거나 연기의 합이 어긋나면 가차없이 NG, 다른 부분이 훌륭하더라도 조금만 틀리면 다시 촬영에 들어간다. 그렇게 완벽한 한 씬을 얻기 위해 계속된 촬영은 20테이크, 30테이크를 넘어가고 결국 영화 속 장면 중 50테이크를 넘어간 장면도 있다고 하니, 7회차에 촬영됐다고 해서 쉽게 촬영했을 거라는 편견이 무너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어진 밤샘 촬영 덕에 의외의 선물 같은 장면도 얻을 수 있었다. 그날도 역시 [소설]에서 아침 무렵까지 촬영을 하고 난 뒤, 눈이 펑펑 내리는 북촌 거리를 본 홍상수 감독이 <북촌 방향>의 예고편에 삽입된 장면을 촬영했다. 동 트기 전 펄펄 내리는 눈발과 새벽냄새가 느껴지는 마술 같은 순간을 놓칠세라, 대본에도 없던 내용을 분주히 촬영한 배우와 스탭들 덕에 우리는 겨울 북촌의 새벽을 스크린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게 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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