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으로 한국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하며 현재 한국 영화의 세계 진출 물꼬를 튼 하명중 감독. 70년대 최고의 인기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하여 국내외적으로 그 재능을 인정을 받았다. 그는 배우로 있을 때부터 연출을 하듯 연기를 했다. 정일성 촬영 감독과 전국 각지를 쏘다니며 헌팅과 촬영을 하고, 직접 콘티를 만들어서 감독에게 보여주며 영화를 깊이 연구했다. 의상 디자인도 직접 할 정도로 재능이 있었던 그를 눈 여겨 본 김기영 감독은 <느미>라는 영화를 찍을 당시 현장에서 막히는 것이 있으면 촬영을 스톱하고, 배우였던 하명중 감독을 불러 의논했다고 한다. 잠자던 한국 영화에 혁명적인 자유의 바람을 일으킨 형 하길종 감독은 항상 동생이 감독이 되기를 바랬다. 하길종 감독은 동생과 한 마지막 통화에서 ‘너 감독해, 왜 영화가 그 지경으로 가게 만들었어!’라며 화를 내었다고. 형의 바람대로 하명중 감독은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하였다.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한 획을 그었던 하명중 감독이 그가 본업인 감독으로 근 16년 만에 충무로에 돌아왔다. 소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2년 동안 했을 만큼 철저하게 준비하고 모든 정성을 쏟았다. 투자자를 구하고 캐스팅을 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만은 누구도 멈출 수 없었다. 하명중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연출 뿐 아니라 어머니를 찾아가는 노년의 최인호 역할을 직접 맡아 열연했다. 하명중 감독은 1967년 한국배우로는 최초로 홍콩으로 진출한 한류배우이다. 1973년 아시아영화제 주연상, 1977년 아시아영화제 조연상, 1975,1978. 대종상 주연상등 <최후의 증인><족보><사람의 아들>등 1970년대의 한국영화의 대표작의 주연배우로 활동하였다. 그의 연기자로의 모습은 1984<땡볕>의 주연감독 이후 23년 만이다. 시나리오, 연출, 연기까지 모두 소화해내며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 온 힘을 바친 이 노장 감독은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관객들의 반응을 조용히 기다리는 영원한 청년이다.
Filmography [제작] 유리 (1996), 혼자도는 바람개비(1990), 태(1986), 엑스(1983), 화분(1972) 外 다수
[감독] 혼자도는 바람개비(1990), 태(1986), 땡볕(1984), 엑스(198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