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를 떠다니는 슬픔이 한데 모여 생긴 작은 섬… 소외 받은 이들의 아픔과 상처가 머무르는 곳 ‘핑크’
비 오는 이른 아침, 항구 언저리에 자리잡은 선술집 ‘핑크’를 찾아 온 수진은 주인 옥련을 만나 같이 일하기로 한다. 옥련과 그녀의 아들 상국이 10년 넘게 살아온 ‘핑크’는 그들뿐 아니라 동네 사람 모두의 안식처다. 하지만 동네 철거 위기로 옥련은 반대 시위에 참석하느라 여념이 없고,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상국은 학교 생활에 적응 못하고 방황한다.
옥련은 경찰간부인 경수로부터 그동안 ‘핑크’의 영업을 돌보아준다는 핑계로 연인 같은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며 ‘핑크’ 주위를 맴돈다. 수진은 옥련과 상국처럼 힘없이 좌절되는 사람들의 삶을 대하며 자신이 겪은 아픈 가족사를 떠올린다. 어린시절 수진은 홀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받아왔고 그 과거의 아픈 기억은 그녀의 무의식 속에 나타나는 아버지로 인해 늘 괴롭다.
‘핑크’에는 우산을 자주 빌리러 오는 40대 남자가 있다. 이 우산남자는 기타를 메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세상사에 관심없는 듯 노래만 부른다. 수진은 노래하는 그 남자를 대하며 자신도 그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길 꿈꾼다.
옥련은 경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철거반대운동을 벌이다 농성자들과 함께 경찰차에 끌려가고 유치장에 갇힌다. 옥련에게 면회를 다녀온 수진과 상국은 서로 연민의 정을 느끼며 친가족처럼 돈독한 정을 쌓아간다.
‘핑크’를 지키던 수진에게 무의식 속의 아버지가 또 나타나자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극심한 심리적 혼란 속에 빠지고 결국 아버지가 입원해있는 병원 중환자실로 찾아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아버지의 목숨을 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