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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이라는 이름의 극형 혈의 누
vinappa 2005-06-14 오전 11:30:18 1991   [11]

    역사 추리극 또는 사극 스릴러로 불리며 인간의 본성을 잔인하게 해부한 김 대승 감독의 <혈의 누>는 장르 영화의 문법들을 동원해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일관되게 구축한 보기드문 수작이다. 눈에 거슬리는 도깨비나 원귀의 깜짝 출현 없이 잠시 잠깐 원혼에 빙의된 무녀와 섬사람들의 미심쩍은 언행, 서서히 짙어지는 비린내만으로 섬찟한 귀기를 형성한 것도 좋았고,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얽힌 관계의 알고리즘을 더듬거림없이 정공법으로 치고 나간 뚝심도 좋았다. 이 영화의 귀기는 모방연쇄살인의 잔혹함과는 별개의 것이다. 더욱이 칭찬할만한 것은 스릴러와 고어가 장르 완성을 위해 도식적으로 소모되지 않고 고발과 폭로의 수단으로 응집력있게 기능한 점이다. 또한 그 고발과 폭로의 목적이 1808년이라는 시점의 과거사에 대한 안일한 난도질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존재할법한 원형적 인물들의 탐욕과 몰염치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라는 점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늦은 시간에 극장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느낀 외지고 비탈진 귀가길의 을씨년스러움보다 제멋대로 자란 수염을 자르기 위해 면도칼을 들고 거울을 본 순간 정반대의 위치에 선 나 자신을 보는 것이 더 공포스러웠던 것으로 보아 감독이 의도한 '염치없는 자들의 지옥도'도 나무랄데 없이 잘 그려진 것 같다.

    그러나, 이 점은 짚고 넘어가자. 인간은 과연 감독의 생각처럼 그렇게 끔찍한 존재인가. 인간은 과연 피비의 저주 속에서 눈알을 뒤집고 가해하고 자해할 정도로, 정말 그 정도로 혐오스러운 존재인가. 모두 양보하고 한가지만 확실히 하자. 인간의 본성은 정말 아귀, 수라 또는 야차의 것이란 말인가. 수직적 계급사회의 낡은 틀을 지키기 위해 신사고를 탄압한 당시대의 기득권, 일신의 영광에 눈이 멀어 강 객주의 혐의를 조작하고 극형의 버라이어티로 섬사람들의 양심에 결계를 두른 토포사, 개인의 사욕과 이기심때문에 은혜를 배신으로 되갚은 5인의 밀고자들, 수익성 보장된 제지소를 차지하기 위해 의도적인 모함을 묵인한 쇄락한 양반, 또 누가 있었던가. 신분제 폐지와 능력 위주의 사회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사소한 가족사에 있어서는 지독하게 보수적이었던 신흥 자본가 강 객주, 채무 탕감의 유혹에 말려들어 혐의조작을 묵인한 섬 주민 전체. 이쯤에서 정리하고 묻고자 한다. 그들의 죄질은 과연 타살, 자살, 자해의 제물이 되어야 할 정도로 악질적인 것이었단 말인가. 그도 모자라 은원의 외부자인 토포사의 아들을 섬으로 불러들여 육체는 살려두되 정신적으로 죽게 만들고, 자학에 가까운 공적 살해를 저지르게 할 정도로 인간의 몰염치는 강조되어야 할 죄악이란 말인가.

    의문으로 반박을 대신하건데 감독은 누구의 몸을 빌어 영화 속에 강림한 것일까? 도대체 누가 감독의 본심을 대변하고 있는가. 주저없이 답하건데 김 대승 감독은 김 인권의 육신을 통해, 1808년을 중심으로 한 무한대의 시간 속에, 동화도라 이름 붙혀진 가상의 연옥에 스스로를 가둔듯 하다. 때때로 무녀의 입을 통해 이 원규의 합리적인 사고를 원시적으로 훈계하고, 이 원규의 입을 통해 통치의 기본을 설파하면서도 감독의 정치관은 결국 김 인권의 파시즘에 동의하고 있지 않은가. 그게 아니었다면 김 인권은 다섯가지 형벌의 통합 버전보다 훨씬 잔인하게 단죄되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치정에 눈이 멀어 연쇄살인을 자행하고, 심약한 민중들의 죄의식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게 가해진 형벌은 수발총의 단아하고 과학적인 한방이다. 주검을 전시하고, 산채로 삶아 죽이고, 해골을 박살내서 죽이고,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제풀에 죽게 하고, 사지가 뜯겨나가는 참혹함을 실행하려한 흉악범인데 돌아선 등판에 총알 한방 먹이고 끝맺음하는 것은 너무 정중히 예우하는 것이 아닌가. 영화의 끔찍한 전개방식을 놓고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굳이 극형의 선정성까지 따지고 싶지는 않다. 살해자의 눈으로 바라본 잔혹의 생생함을 담고자 했다는데 감독으로서는 또 얼마나 끔찍한 경험이었겠나. 단지 바라건데 인간에게 최소한의 애정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인간의 염치없음이 탐욕에서 기인하기는 하나 계급사회의 부조리와 통치철학의 모순도 한몫 단단히 거들고 있지 않나. 그리고, 염치와 죄의식은 동의어가 아니다. 염치는 인간의 본성과 관계하는 단어지만 죄의식은 사회가 조장하는 관념적 단어다. 야속한 말이겠으나 죽은 자는 오히려 편하다. 그러나, 산자들에게 내려진 형벌은 너무 가혹하다. 김 인권이 죽으며 이 원규에게 내린 형벌, 두호를 집단살해하며 섬사람들이 자청한 형벌. 효수, 육형, 석형, 도모지, 거열보다 더 끔찍하고 잔혹한 형벌이 바로 죄의식이다. 염치없음보다 죄의식이 더 강조된 이 영화에는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지 못하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무조건적 용서를 설파해 달라는 말이 아니다. 휴머니즘만이 시대를 위무할 마지막 방책이라는 말도 아니다. 단지, 인간은 애정으로 대하기에 충분한 존재임을 인정해 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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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의 누(2005, Blood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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