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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어 보이 어바웃 어 보이
hongwar 2007-10-23 오후 11:08:24 1673   [5]

예전에 만났던 남자들이 이 영화 속 휴그랜트 같기만 했어도 내 인생은 달라졌을 거다. 내 인생이 이 모양이 된 게 꼭 남자들 때문은 아니지만, 순전히 내 성격 탓이지만, 그래도 순하디순한 휴그랜트 스타일을 만나고 다녔더라면 지금처럼 거칠거칠하진 않았을 텐데. 뒤늦은 후회. 

 

이 영화에서 휴그랜트는 이현우+유재석+오동구(천하장사 마돈나의 그 오동구)를 합체한 캐릭터다. 처음엔 우유부단하고 늘 당하기만 하고 어정쩡허게 구는 유약한 남자였다가 포스터에 보이는 외로운 소년 "마커스"를 만나고 난 뒤 불쑥 성장하여 오동구가 되는 남자다.

 

아버지 유산으로 놀고먹는 노총각 윌(휴그랜트)은 필요한 게 다 갖춰진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산다. 얼굴 예쁜 여자들 꼬드기는 일 외엔 타인에게 일절 관심 없는 이기적인 성격에다 결혼도 아이도 회피하는 전형적인 피터팬이다. 처음엔 자유로운 고립을 즐기는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로 보이지만 알고보면 스스로를 "섬"에 가둔 채 살아가는 소심한 귀차니스트에 은둔자다.

 

남의 일에 끼어들기도 싫고 남에게 간섭 당하는 것도 싫은 윌에게 어느 날 소년 마커스가 나타난다. 마커스는 이혼 후 우울증에 걸려버린 엄마와 단 둘이 살면서 자신의 고민보다는 엄마를 먼저 돌봐줘야 하는 불우한 처지의 남자 아이다. 설상가상으로,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어른스럽게 구는 마커스를 학교 친구들은 이상한 애라고 놀리며 왕따를 시킨다.

 

윌과 마커스는 둘다 외로운 존재다. 하지만 윌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믿으며 살고 마커스는 누군가의 애정어린 보살핌을 통해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한다. 자기가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어른 윌은 소년 마커스보다 훨씬 미숙한 존재인 셈이다.

 

외로운 마커스는 혼자 사는 윌에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청하지만 사적인 영역이 침해당하는 게 싫은 윌은 마커스가 귀찮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을 같이 보내주긴 하지만 윌은 건성이다. 윌의 마음은 즐기고 나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쿨한 여자 찾기에만 쏠려 있다.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우울증이 덜할까 싶어 윌 아저씨와 엄마를 만나게 해주는 마커스의 이타적인 태도와 비교해보면 자기 감정밖에 챙길 줄 모르는 윌은 정말이지 몸만 큰 "boy"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안다. 내 주변에도 몸만 어른이지 실은 "boy"인 남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헤어진 여자친구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남자들이나 어릴 적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애먼 여자들을 죽이면서 푸는 남자들, 바깥일 한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소통할 기회를 놓치곤 나중에 늙어 가족에게 소외당하는 남자들, 혼자선 자기 먹을 것도 해결하지 못해 늘 여자들에게 의존하는 남자들, 사랑이나 고마움의 표현은 인색하면서 감정이라고는 화밖에 낼 줄 모르는 남자들, 대화가 안통하면 꼭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드는 남자들, 여자란 창녀와 아내(혹은 엄마) 두가지만 존재한다고 믿는 단순한 남자들......

 

겉만 멀쩡한 어른인 이런 boy남들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상처받아 쩔쩔매는 여자들이 많을 거다. 여자들은 관계와 소통을 통해서 행복과 불행을 맛보는 존재들이라 관계에 미성숙한 남자들의 애꿎은 말 한마디, 의미 없는 행동 하나 때문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다. boy들이 여자들의 마음의 상처까지 헤아려 줄리는 없지 않나. 

 

다행히 이 영화의 윌처럼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이기심을 깨닫고 상처를 감수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삶을 받아들이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따뜻해진다. 엄마 때문에 억지로 어른 역할을 해야했던 소년 마커스도 윌과 만남으로 제 나이에 맞는 즐거움을 얻게 된다. 애어른은 소년시절을 되찾고 boy남은 진짜 어른이 되는 윈-윈 게임으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은 정말 훈훈하다.      

 

예전에 봤던 [천하장사 마돈나] 영화 속 남학생 오동구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없이 자학하며 자식에게 분풀이를 일삼는 아버지보다 훨씬 어른스럽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려고 있는 힘을 다하는 오동구에 비해 아버지는 영화 끝까지 동구가 가진 삶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들보다 더 boy같은 어른. 그 모습은 스스로 어른될 기회를 갖지 못한 우리 사회 남자어른들과 아버지들의 자화상 아닐까.   

 

내가 만났던 남자들을 곰곰 헤아려보면 실제 나이와 정신 연령이 비슷한 남자가 없었던 거 같다. 관계가 깊어지면 꽁무니를 빼려고 준비하거나 감정이 부딪치는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회피하거나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고 허세를 떠는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늘 boy들과 만나면서 상처 타령이나 하고 피해의식만 키워왔던 건 남자들 탓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제대로 된 남자를 골라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내 안목이 문제지 딴 이유는 없다. 

 

남자 어른들 태반이 boy라면 여자 어른들 태반은 사실 "girl"이다. 소녀라서 상처받고 소녀라서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소녀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안목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마커스의 엄마는 우울증에 걸려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자기 연민과 자기 감정에 사로잡힌 소녀들은 다른 이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씻기 어려운 상처까지 주게 되는 것이다.

 

남자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믿고 슬퍼하고 또 슬퍼하며 인생을 낭비할 때 나는 내가 소녀였음을  인정한다. 다른 이들의 슬픔보단 내 아픔이 먼저였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나였다. 상처 받은 것만 생각했지 상처 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기적인 태도 역시 순수한 소녀에 머무르려는 고집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순수하게 살고 싶은데 속물적인 세상과 남자들 때문에 순수가 깨어지는 아픔을 겪는 걸 견딜 수 없다고 믿었던 어린 소녀. 그 소녀 때문에 상처받았던 남자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득한데....어떻게 전달하나, 쩝.   

 

소녀인 여자가 소년인 남자를 만나면 그 결과가 윈-윈과는 정반대가 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내 스스로 진짜 여자가 되고나면 진짜 남자가 누군지 가만 앉아 있어도 골라낼 수 있게 될 터. 이 영화의 철없는 윌처럼 자기 즐거우라고 여자들 감정 이용하고 낼름 내빼버리는 소년같은 짓은 그만할 일이다. 스스로 어른이 되기 위해 거듭거듭 노력해서 철딱서니 없는 소년소녀들에게 상처주는 대신 그들을 어른으로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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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쿤요   
2010-03-1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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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어 보이(2002, About a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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