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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안녕하십니까. 수면의 과학
kharismania 2006-12-14 오전 3:48:12 706   [1]
누구나 종종 꿈을 꾼다. 하지만 그 꿈의 세계는 잠이라는 행위로 인해 진입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세계이며 잠이 깨는 동시에 우리는 그 다른 차원의 세계로부터 퇴출당한다. 그 세계의 기억 역시 그 세계로부터 퇴출당함과 동시에 사라지곤 한다. 마치 연기처럼 흩어지는 다른 차원의 기억을 붙잡기 위해서는 모종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대가 꿈꾸던 그 기억의 달콤한 순간들은 마치 현실에서 달아나버리듯 사라져버리니까. 방금까지도 기억나던 저편의 경험담들은 이편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극 중 등장하는 대사는 이 영화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같다. '자연스러운 것을 지키는 것은 힘들어.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그곳에 질서가 끼어들어버리니까.' 자연스러움은 무질서의 상태이다. 질서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약속된 집단체간의 약속이다. 결국 질서는 인위적이다. 그리고 그 인위적 약속은 인간의 삶을 영위시키는 듯 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인간'을 말살하고 그위에 우리가 바라고자 하는 인간을 완성하고자 한다. 결국 우리가 만든 질서는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고자 하는 도구적 수단이다.

 

 어쩌면 꿈은 그런 질서에 대한 대항과도 같다. 우리가 만든 수많은 질서 안에서 달아나고자 하는 욕망. 꿈이란 프로이트에 의거하면 현실에 대한 자의식적 충동과 욕망이 왜곡과 과장을 통해 내보여진 산물로 해석될수도 있고 칼 융에 의거하면 내면적으로 가장 깊은 본성에서 비롯되는 지향적 목표로 해석될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런 이론을 떠나서라도 꿈이란 분명 우리의 두뇌가 지니는 원초적인 세계, 즉 우리가 원래 향유하고자 했던 '인간'으로써의 삶이 펼쳐지는 공간에 대한 향수와도 같다. 당신이 자신도 모르게 바라고 있던 욕망의 공간. 이루어지지 못한 소망이 실현되는 곳. 꿈은 바로 그 개인의 판타지가 잠시나마 실현되는 환각의 장과도 같다.

 

 영화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뒤죽박죽으로 넘나든다.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역)을 통해 보여지는 현실과 꿈의 무질서한 전환은 그가 지극히 현실안에서 효력이 제한되는 사람임을 입증한다. '파멸학'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끔찍한 사고의 삽화로 달력의 컨셉을 짜맞추는 그의 태도는 분명 기이하다. 지극히 평범한 이들에게 동물이나 꽃, 심지어 누드같은 이미지가 마땅해야 할 자리에 그는 자신의 '파멸학'으로 대체한다. 창의적이고 독특한 발상으로 평범하지 않은 발명을 해내는 그는 물론 비실용적이진 않다. 그의 '파멸학'을 담은 달력은 제안을 무시당했지만 베스트셀러가 되고 항상 그자리에 서있기만 하던 봉제인형을 내달리게 만든다. 그의 유아적인 발상은 창조력으로 승화되고 떄론 관념과도 같은 질서를 조롱한다.

 

 하지만 그의 상상력이 현실에서 생명력을 얻기에는 다소 버거워보인다. 그가 여섯살 이후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음은 그의 창조적 두뇌활동이 여섯살의 유아성을 유지하고 있거나 혹은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이들이 보는 꿈과는 다른 독창적인 꿈의 세계를 지닌다. 그의 창조력이 평범한 세계에 묘한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효력을 생성하지만 그의 유아적 기질은 현실안에서 살아남기에는 연약해보인다. 그것이 다소 비현실적인 효력으로 발휘되었을 때 그것은 결국 쓸모없는 재능이자 유치한 장난으로 치부되어버리는 것과 같다. 결국 달력이 팔리기 전까지는 비웃음을 당해야하는 '파멸학' 삽화처럼 그의 검증되지 못한 엉뚱한 재능은 소비되기 전까지는 인정받을 수 없는 불분명한 세계의 이질적 산물로 취급당하는 수밖에 없다.

 

 스테판의 지독한 두뇌활동은 아마 그에게 현실과 꿈의 경계에 대한 불감증을 생성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는 마치 현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이해당하곤 한다. 그는 스테파니(샬롯 갱스부르 역)를 사랑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모호한 세계를 그녀에게 차근차근 드러내보인다. 스테파니는 그의 무질서한 세계에 이질감을 느끼지만 그 세계에 비의도적으로 이끌린다. 그것은 그 이질적인 세계에 대한 경계감보다도 사랑이 진실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유모를 불법침입이 그녀를 위한 선물을 전달하기 위했음을 깨닫는 순간 스테판과 스테파니의 거리감은 좁혀진다. 스테파니의 이성이 만들어낸 경계심이 스테판의 감성적인 권유로 거두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않다. 이는 삶의 영역적 차원이 다른 사람들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평범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스테파니와 지극히 비상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스테판의 사랑은 평범한 이해심만으로 극복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이해심을 떠나 그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이들만의 자격처럼 여겨진다. 꿈 안에서 자신의 사랑을 수도 없이 완성시키는 스테판은 현실에서 차근차근 완성시키던 사랑을 완성직전에 망가뜨린다. 그것은 자신스스로도 구별해내지 못하는 꿈과 현실의 경계안에서 헤매이기 때문이다. 마치 질환과도 같은 병적인 혼란성은 스테판의 사랑을 잠식시켜버린다.

 

 스테판의 소망이 완성되는 꿈의 공간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보고자하는 비쥬얼적 욕망에 충분히 부응한다. 핸드메이드(hand-made)의 수작업으로 완성된 것으로 유추되는 종이재질의 특수효과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이다. 지독하게 실물과 흡사한 CG가 난무하는 요즘의 시대를 거스르는 것만 같은 이같은 방식의 사용은 오히려 감성을 자극하고 평범하지 않은 독보적인 방식으로 이해된다. 또한 공드리는 자신이 제작한 뮤직비디오 등의 영상물에서 보여왔던 상상력을 결집시켜놓은 듯하다. 마치 초현실주의적인 영상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내면에 의도된 상징성을 부각시켰던 그의 짧막한 상상력을 긴 시간동안 유감없이 나열한다.

 

 미셸 공드리 감독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그의 심리적 이질감을 호소하는 것만 같다. 사실 영상적 감각으로 인정받은 그의 재능은 아직 영화적 사실안에서는 미숙아와도 같아보인다. 물론 그의 전작인 '휴먼 네이쳐'나 '이터널 선샤인'이 그에게 명성을 준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거의 영광이 지닌 이야기적 완성도는 찰리 카우프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의 뼈대에 살을 붙인 것은 공드리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영상적 신묘함에서 비롯된 것임은 틀림없다. 이 작품은 사실 찰리 카우프만의 공백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자 미셸 공드리의 색채가 뚜렷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섬세하고 근원조차 불분명한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진 이 영화는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자체부터 하나하나가 경탄스럽다. 다만 이야기가 친절하지 않은 것은 그 난해한 세계를 간단하게 풀어헤쳐놓기에는 매끄러운 이야기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방점을 속시원하게 쏟아내지 않는 이야기는 그 상상력의 이국적 어휘를 해석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는 분명 이 영화가 미셸 공드리라는 이름에 대한 애정을 요구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고백과도 같은 이야기에 초대받을만한 자격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영상물들을 통해 보여지는 그 독특한 세계가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 비웃음을 샀을지도 모른다. 그 평범하지 않은 산물이 인정받기 전까지 그가 거쳤을 고초가 이영화를 통해 예측된다. 그리고 지금도 그 혼란스러운 세계를 유영하고 있을 그만의 고독한 이질감은 계속되고 있지 않을까.

 

 이상한 나라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만 같은 이야기의 말미에서 건져지는 것은 그 이상한 세계를 헤매는 스테판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이다. 그는 저주받은 재능이 낳은 현실의 비인지적 방황안에서 매일매일 완성과 파괴의 순간을 반복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사랑이 현실이 아닌 꿈안에서만 완성되고 완성되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씁쓸하다. 이는 마치 부자와 빈자의 사랑처럼 그 감정만으로 지속시키기 어려운 환경의 차이로 인한 격차의 좁힘은 뛰어넘기에 버거운 산과 같아보인다. 물론 스테파니가 그 영역안으로 한발 내딛는 것은 하나의 희망과도 같다. 당장 골든포니보이를 타고 함께 꿈속을 내달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녀가 그의 환상에 동참하여 창밖으로 물을 끼얹어버린 것처럼 스테판의 영역은 손님을 맞이해야 할 채비를 차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 쓸쓸한 세계의 공허한 꿈이 아름다운 예감으로 눈을 감게 하는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꿈을 두가지 중의적 의미로 사용한다. 수면중의 무의식적 세계와 우리가 소망하는 그 어떤 것의 의미. 어쩌면 그것은 비슷한 것을 갈취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꾸는 꿈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그것들은 우리가 소망하는 그 어떤 것들에 대한 실현일지도 모른다. 그 무의식의 세계에서 우리는 우리가 갈망하던 것들을 완성시키지만 그 세계로부터 튕겨져나온 현실에서는 까마득히 잃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수면의 과학이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그 신비한 세계로의 진입. 우리 스스로가 망각하고 있던 어젯밤 꿈속의 황홀했던 기억들의 삭제. 그망각이 현실로 넘치지 않도록 제어하는 두뇌의 반사적 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가 현실을 통해 실제적으로 이뤄야 하는 것에 대한 착각을 막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스테판의 비현실적 세계를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이야 즐겁겠지만 그 세계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분명 슬픈 현실일테니까. 우리는 우리의 두뇌가 이행하는 수면의 과학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꿈과 현실은 그 경계를 넘어서지 않을 때 서로의 가치를 빛내는 법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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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과학(2006, The Science of Sleep / La Science des reves)
제작사 : Canal+ / 배급사 : (주)엣나인필름
수입사 : (주)엣나인필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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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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