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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보그..>를 보는 또다른 관점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prud 2006-12-11 오전 11:38:24 4200   [5]

굳이 내러티브를 중시하지 않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 전반에 깔린 정신질환에 대한 제법 심층적인 묘사들에 초점을 맞추고 보아도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재밌는 사실은, 이 영화가 여러모로 볼 때 정신 나갔다거나 동화같다라고 말할만큼,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먼 경향이 있는 반면,
정신과적 측면에서 보자면 매우 사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면도 동시에 다분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영화가 절대 리얼리즘 영화일 수는 없다.
거의 모든 장면들이 정신병자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모습들로 이루어졌으니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하다.
유일하게 정신병자의 시각이 아닌 것 같은 장면은
영군 입원 직후 담당의사가 동료와 함께 건물 바깥에서 영군의 증상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이다.
- 그 부분은 다른 장면과 색감도 다른 것 같고, 건물도 왠지 메마르고 낯설게 느껴진다.
다른 대부분의 장면에서의, 실제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정신병원은
아마도 정신병자에게 비친 모습이기 때문에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예쁜게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서의 정신병자들의 심리상태는 그렇게 다 '예쁘게' 표현되는 것 같다.
정신병자들을 혐오스럽거나 위험한 존재로 생각하는 일반적 인식을 깨고 싶어서였을까.
어쨌든 영화 전반에 걸쳐서, 그들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진하게 묻어나옴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안정실의 운영이나 전기충격치료에 대한 시각에서도 드러난다.
"안정실에 가는 걸 동의할 때까지 안정실에 있게 하잖아요"하는 위트있는 대사나,
전기치료로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기억은 그대로 두고 밥만 먹게 하면 되는데"라고 중얼거리는 영군 엄마의 대사에서,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정신병자의 입장보다는 치료자의 편의를 우선적으로 하는 것에 대한
감독의 반감이 표현되는 듯하다.

반면 이렇게 '착한' 정신병자 설정과 대비되는 일반인들은 칠거지악을 통해 역설적으로 풍자된다.
영군의 엄마와 이모, 이모부가 할머니를 대하는 장면을 보면
그들에게는 일말의 동정심도, 슬퍼하는 마음도, 망설임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도,  죽음에 대한 죄책감도 전혀 느끼지 않는 그들을 보며
그로 인해 깊이 상처입은 영군은 역설적으로 이를 자신도 가져야 하는 덕목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심리학이론의 방어기제 중 내사(introjection: 타인의 가치나 기준을 받아들여 불안에 대처함)의 예와 비슷하다.다만 이 경우는 '동정심'을 버릴 수 없어 완전한 내사가 이루어지지 못하므로 결국 일순의 도움을 받는다는 코믹한 설정이 가미된다)

 


여기서 눈에 띄는 건 영군의 엄마이다.
정신분열증은 유전성이 강한 질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영군의 엄마 역시 정상이 아님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키우던 쥐였나요?"라는 의사의 물음에 "잘 모르는 쥐들이었어요"라는 심상치 않은 대답에서부터,
돼지고기를 주문하는 동안의 광적인 태도나 "선생님도 가끔 주변 사물들이 유난히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으시죠?"
등의 대사가 나오는 첫장면에서는 약간 의심이 가는 정도이지만,
자신이 싸이보그인 것 같다고 고백하는 딸에게 반응하는 장면들에서는 그녀의 비정상적인 심리상태가 분명히 나타난다.
'다른 사람이 모르기만 하면 괜찮다'든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등의 태도는

영군에게 자신의 비정상적인 심리상태를 스스로 억압하도록 강요하는 것인 동시에,
엄마 스스로가 그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강력히 발휘하여 자신의 증세를 숨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영군 엄마는 유난히 말실수가 많은데,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말실수는 무의식적 태도를 상징하는 중요한 행위로 취급된다.
그 말실수 하나하나를 대입시켜 보면 영군 엄마라는 캐릭터를 더욱 다채롭게 즐길수 있다.
이런 대사들에서, 이 영화가 얼마나 세세한 부분까지 심리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려 했는지가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알고보면 사실적인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묘사들 중,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순이 남의 능력을 훔칠 수 있다는 점이다.
언뜻보면 이 영화를 비현실적인 동화로 결론짓게 만드는 이 설정도,
박감독의 전작 올드보이에서도 소개되었던 '최면술'을 대입하면, 충분히 현실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영군의 경우가 정신과적 텍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전형적인 정신분열증의 상태를 보여 주는 데 반해,일순의 경우는 그런 전형적인 정신질환자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일단 설정된 질환 자체가 정신분열증에 비하면 가벼운 질환이라고 할 수 있는 '안티소셜'이라서 그렇겠지만,일순은 정상인과 정신병자 사이의 경계를 수시로 오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얘기가 조금 나오긴 하지만 일순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차피 일순의 진짜 능력은 베일에 싸여 있으니, 언제 어딘가에서 최면술을 배웠을 수도 있다고 생가해도 무방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능력을 뺏을 수 있도록 '전달'하는 의식이 가능하도록 그 대상자를 유인하는 과정이나,
능력을 뺏긴 전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과정이 전부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능력있는 최면술사라면 간단한 암시로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단, 실제로는 최면감수성이 강한 사람만이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최면에 걸린다고 한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실제로 그 능력이 전달되는 것이다.
대상자에게 특정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암시는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일순 자신이 그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로 보인다.
하지만 '자율 훈련'이라는 최면 기법을 통하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자율 훈련 최면'을 통하면 기억력이나 학습능력등 잠재된 여러가지 능력을 단기간 내에 끌어올릴 수는 있다고 한다.
일순이 이러한 자율훈련최면에 매우 뛰어난 인물이라고 보면 '능력뺏기'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 실제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신질환자들이 가끔 특정 분야에서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예는 어느 정도 있는 일이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물들이 모두 '순진하기 짝이 없는' 정신병자들이라는 것도 감안한다면
그럭저럭 무리한 설정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일순이 '동정심'을 훔치는 부분이다.
그 전에도 영군에게 관심을 갖기는 했지만, '동정심'을 훔친 후에는
명확하게 그 단순한 관심이 애정으로 바뀐다.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시작할 때, 아마 대부분 이러한 감정의 도약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쩌면 강한 자기 최면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혼자 있는 게 너무 싫어서든, 힘든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든, 연애의 짜릿함을 간절히 원해서든
그 상대방 자체가 아닌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해 시작된 약간의 암시가
그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애정을 갖게 하는 자기 최면에 빠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순이 동정심을 훔친 결과로 영군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동정심'이란 결국 사랑의 다른 모습이기에 스스로 사랑에 빠지는 최면을 걸어버린 셈인 것이다.
사랑이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의도하지 않은 일로 인해 실수처럼 시작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위트가 느껴지는 부분인 것 같다.

 


감독의 의도와는 전혀 다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정신과적으로 분석하면서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영화 전반에 걸친 사랑스러운 분위기, 감각적인 음악과 영상,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
모두가 이 영화의 큰 장점이지만,
볼 때마다 무궁무진한 얘깃거리를 찾을 수 있게 하는 숨겨진 아이디어와, 깊이 있는 고찰이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보고 싶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총 0명 참여)
ddosunaru
정말 상당히 색다른 시선이군요. 정신의학계열에 종사하시는지;;ㅎㅎ
전 순전히 감정적으로 보았거든요. 신기할 따름.   
2007-05-0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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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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