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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욕망, 억눌린 본능에 관한 이야기 존 말코비치 되기
peacenet 2006-09-23 오전 3:50:12 1688   [9]

크레이그 슈바르트는 천재적인 퍼펫티어다. 쉽게 말해, 줄로 매달린 인형들을 조종한다. 그의 아내, 라티 슈바르트는 동물가게를 운영한다. 응? 언뜻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커플이다. 하나는 목각인형에 생명의 율동을 불어넣고, 다른 하나는 말못하는 생명들과 온정의 교감을 형성한다.

크레이그는 무직이다. 모든 예술가가 대개 그렇듯이, 한번도 그럴듯한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던 불운의 창조자인가. 하기는, 그가 거리에서 벌이는 짓이라곤 행인들에게 그의 창작극을 보여주고, 때로는 동전 몇 푼을 적선받기도 하지만 태반은 그의 인형극이 너무도 마음에 안들었던 누군가로부터 주먹을 적선받는 게 고작이다. 심하다고? 하필 어린 딸과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중에, 딸애가 수녀와 수도승이 서로의 몸을 탐하는 음탕한 갈망의 몸짓을 노골적으로 형상화하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선에서 갈팡질팡하는 그의 인형극을 보게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글쎄. 주먹 하나도 양호한 편이 아닐까.

아쉽게도, 크레이그는 아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동물들, 앵무새, 침팬치, 도마뱀, 등에는 무관심하다 못해 냉담하기까지 하다. 따지고 보면, 그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라고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사랑의 형히하학 -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육체의 욕망이겠지. 그것이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남성에 의해 억제된 나머지, 인형극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표출되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크레이그가 직업을 갖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데릭 맨티니 같은 세계적인 퍼펫티어가 되는 것이 꿈이었겠지만, 우선은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겠고 무엇보다도 라티의 부담을 덜고 싶었을테니까. 직종은? 우연치 않게 레스터 사의 서류정리원이 된다. 키 작은 양손잡이, 빠른 손놀림을 소유한 직원을 원했다나 뭐라나.

잠깐. 키 작은 직원을 구한다고 그랬었나. 이 회사, 11층 건물의 7 1/2 층에 위치한 이 이상한 회사, 천장이 너무 낮아서 허리를 굽히지 않고는 돌아다닐 수 없는 이 회사. 하필이면 7 1/2 층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또다른 여직원 맥신에게 끌리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꼬이게 된다.

안그래도, 만나기만 하면 음담패설만 일삼는 레스터 사장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척 해야 하는 것도 고역인데 맥신은 크레이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골적으로 희롱을 하면서도 정작 그의 구애는 냉정하게 외면을 한다. 이쯤 되면 속이 타는 건, 크레이그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직장생활을 하던 그가 어느날, 서류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캐비넷 뒤에서 정체모를 통로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내친 김에, 호기심에 못이겨 통로를 탐험하던 그가, 그 통로의 끝에서 발견하게 된 건 자신이 누군가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경이로운 사실이었다면? 게다가 황당무계하게도, 그 누군가라는 작자란 다름아닌 존 말코비치,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 사선에서 (In The Line Of Fire, 1993) 의 그 존 말코비치, 콘 에어 (Con Air, 1997년) 의 그 존 말코비치였다면? 알고 보니 그 통로라는 건 바로 존 말코비치의 뇌로 가는 길이었고, 그 속에서라면 존 말코비치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걸 똑같이 체험할 수 있다는 건데.

잠시 샛길로 빠져 보자. 영화속에서 주인공 크레이그의 역을 맡았던 배우는? 존 쿠삭. 콘 에어 에서 연방 보안관 빈스 라킨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그럼, 크레이그의 아내 라티는? 카메론 디아즈. 맥신 역으로는 캐서린 키너가 열연했다. 내게는, 캐서린 키너가 제일 생소한데, 고작해야 8미리 (8MM, 1999년) 에서 탐의 부인 역으로, 니콜라스 케이지와 호흡을 맞췄던 걸 본 게 전부였다. 카메론 디아즈는 갱스 오브 뉴욕 (2002년), 바닐라 스카이 (2001년), 애니 기븐 선데이 (1999년),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1998년), 등 많기도 하지만 특히 마스크 (1994년) 에서의 그 매혹적이었던 첫인상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존 말코비치 역으로는, 당연한 얘기겠지만 존 말코비치가 출연을 했다. 콘 에어에서는 악당 사이러스 역으로 , 존 쿠삭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조만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에서도 출연을 한다는 소식이다.

감독 스파이크 존즈는? 니콜라스 케이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어댑테이션 (Adaptation, 2002년) 으로 또한번 그의 기발하기만 한 상상력을 확인시켜준 바도 있지만, 쓰리 킹즈 (Three Kings, 1999년) 에서는 아예 콘레드 이병 역으로 출연을 하기까지 했다니, 혹시라도 그의 모습이 궁금하시다면 이 참에 재미난 전쟁영화 하나 빌려보는 것도 괜찮을 성 싶겠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보자. 우연치 않게 존 말코비치의 뇌로 가는 통로를 발견한 크레이그. "그 통로는 철학적, 형이상학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다" 면서, "예를 들면 영혼의 존재라든지, 나라는 존재의 본질 등" 으로 해석을 하는 그와는 달리, 라티는 "존 말코비치의 통로는 성적인 매력이 느껴진다" 고 대답을 한다. "그가 마치 여성의 질을 가지고 있는 것 처럼, 그렇게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매력에 그만, 푹 빠져버린 라티. 그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과연 내가 예전같이 살 수 있을지가 의문" 이라는 점이 아니었을까. 확실히, 불과 15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이었지만, 존 말코비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그 두 사람은 그 후로 확실히 변하게 된다. 아니,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빼먹은 게 하나 있다. 맥신은 그 통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사실 맥신은, 한번도 그 통로를 기어가 보지도, 존 말코비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지도 않는다. 그대신, "JM사 (보나마나 John Malkovish 의 머릿글자를 따서 만든 명칭이겠지)" 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15분동안 존 말코비치가 되어보게 하는 걸로 돈을 벌자는 기막힌 제안을  한다거나 - 한사람당 고작 200불이라니? 이건 좀 심하게 헐값이지 않나 - 또는 직접 존 말코비치를 만나고, 그를 꼬드기고 같이 침대에서 뒹굴면서 사실은 그의 눈 뒤에 숨어있는 관찰자 - 그것이 크레이그이거나, 라티이거나 - 에게로의 성적인 욕구를 불태우는 데 더욱 많은 관심을 할애한다. 사실은, 맥신이 없었다면 크레이그도, 라티도 그렇게까지 변하지는 않았을텐데.

결국 맥신과의 짜릿한 황홀지경을 경험하기 위해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 쟁탈전을 벌이는 두 부부. 두 남녀가 그만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버렸다? 웃기지도 않는 이 상황에서, 둘의 결혼생활은 물건너 갔다고 봐야겠지. 서로간에 철천지 원수가 안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헌데 크레이그는, 애초 문제의 그 통로를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다고 말하지 않았나? 우습게도, 그러한 가식과 자칫 이중적인 그의 철학적, 도덕적 교양은 보다도 동물적이며 원초적인 그의 욕망 앞에서는 밀물에 모래성 무너지듯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그러니까, 애초 그런 얘기들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하나마나한 얘기에 불과한 거다.

하긴, 이런 류의 복선이 영화 초반에 한번 더 있기는 했다. 그러니까, 크레이그가 맥신과 술집에서 처음으로 데이트... 를 하는 장면에서, 맥신이 "내 어디가 좋은거야? 내 가슴?" 하고 물었을 때, 크레이그가 정색을 하고 "아냐, 난 당신의 건강한 모습, 걷는 모습 그런게 좋아" 라고 대답을 하자 맥신은 그만 질색을 하면서 "맙소사, 너 호모구나? 요리법이나 교환하자구" 라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퇴짜를 놓는다. 결국 크레이그가 "그래, 당신 가슴이 좋아, 갖고싶어" 라고 말을 바꾸고서야 맥신은 금방이라도 가버릴 듯 일어섰던 몸을 다시 의자에 앉힌다. 이제야 제대로 대화가 된다는 식이다.

셋 다, 존 말코비치를 이용하기는 마찬가지지만 - 그리고 맥신을 제외한 둘이, 말코비치의 몸을 이용해 맥신을 독차지하려고 하기는 했지만 - 그 잠재적 목적, 그리고 방식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크레이그는 자신이 인형을 조종하듯이 존 말코비치의 몸을 조종하기를 원하고, 그로써 크레이그로 있을 때는 얻을 수 없는 것들 - 예컨대 맥신의 열정적인 육체라든지, 퍼펫티어로 성공을 한다든지 - 을 성취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반면에, 라티는 오직 맥신이 자기를 사랑해 주기만을 원했고 그 방법이 존 말코비치의 눈으로 맥신을 바라보는 것이라 굳게 믿을 뿐이었지 존을 조종한다든지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것도 다 "라티는 나를 매료시키지만, 그건 라티가 말코비치 안에 있을 때만이야" 라고 맥신이 이야기 해 준 덕분이지만.

아무튼. 애꿎은 말코비치만 잔뜩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 그조차도 맥신을 미행한 끝에 JM사를 찾아와서는, 스스로의 뇌로 가는 통로를 탐험하게 되는데. 존 말코비치가 존 말코비치의 뇌 속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성과 욕망, 억눌린 본능에 관한 우스꽝스러운 풍자 한 편. 결론은? 아이가 있어야 가정이 안정이 된다는 것일수도, 역시 존 말코비치는 대단한 놈이라는 것일수도 있겠지. .찰리 쉰, 숀 펜 깜짝출연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코메디라고 말하긴 좀 뭣하지만 아무튼 대단히 기발하고, 대단히 재미났던 영화 한 편.

-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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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말코비치 되기(1999, Being John Malkovich)

공식홈페이지 : http://www.beingjohnmalkovi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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