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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의 여유가 있는 봄바람같은 모험담 하울의 움직이는 성
jimmani 2004-12-26 오전 2:13:47 1848   [15]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세대를 초월하고 누구나 매혹시키는 마력이 있다. 어린이들은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환상적인 모험에 매료되고, 어른들은 그 속에 든 의미심장한 철학에 매료된다. 애니메이션은 '애들용'이라는 인식을 사라지게 하는 데 크나큰 기여를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역시 이 사람의 애니메이션을 매우 좋아라 해왔고, 지금부터 이야기할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극도로 기대감을 품어 온 작품이기도 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당시 신작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현지 개봉 후 1년 뒤에나 국내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열광했는데, 일본에서 개봉한지 고작 5주 되었고 아직도 박스오피스 1위를 하고 있는 따끈따끈한 이 신작에는 오죽 열광했으랴.

그리하여 뜻깊은 크리스마스날에 이 영화를 본 결과, 역시나 나의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환상적인 모험, 잊을 수 없는 각종 캐릭터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이 총집결해 여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와 비슷한 점이 많은 듯 보였으나, 어딘가 다르긴 다른 구석이 있었다.

배경은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중세 유럽으로 추정된다. 주인공 소피는 한창 꿈과 희망을 가질 18세 소녀지만, 동생으로부터 '꿈이 모자가게 주인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매사에 넋을 놓고 있는 목표가 없는 소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위기 상황에서 미지의 청년(하울)으로부터 구출되고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밤, 소피의 가게에는 하울을 좋아하는 악명높은 '황야의 마녀'가 찾아와 하울과 소피의 그 모습을 봤는지 소피에게 저주를 걸어 놓고 가는데, 그 저주는 바로 소피의 나이보다 5배 많은 90세 나이의 노파로 순식간에 늙어버리는 저주였던 것이다!! 더 이상 마을에 있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 소피는 마을을 나와 무작정 먼 곳을 향하고, 가던 길에 만난 '무대가리' 허수아비의 도움으로 하울의 거처인 '움직이는 성'을 찾아 들어간다. 그곳에 소피는 하울과 얽힌 사연이 있는 불의 악마 '캘시퍼'와 계약을 맺고 하울의 가정부 생활을 하게 된다. 꽃미남 마법사 하울은 '젠킨스', '펜드래곤' 등 다중인격자마냥 이름도 여러개를 갖고 있는 범상치 않은 마법사. 그로부터 이들의 사랑과 모험으로 가득한 기묘한 동거는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 봐야 할 점 첫번째는, 시종일관 좌중을 압도하는 스펙터클한 영상이다. 대규모 전쟁 신, 비행 추격 신, 하울의 스승인 설리먼이 마법을 부리는 신 등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대단히 규모가 큰 장면들이 화면을 수놓는다. 특히나 이 영화에서 가장 창조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스펙터클의 극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카리스마(?)가 어마어마하다. 쇠가 부딪치고 증기 기관차처럼 '빼액!'하는 증기 소리가 나면서 쓰러질 듯 하면서도 그 가는 다리로 뒤뚱뒤뚱 관객들을 향해 걸어오는 성의 모습은, 그 특이상과 거대한 규모 덕에 영화 속 소피 뿐만 아니라 관객까지도 잔뜩 사로잡았다.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에 나오는 비행기들의 공습을 포함한 대규모 전쟁 신도 그 큰 규모로 인해 더욱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소피와 하울이 비행기를 타고 벌이는 공중 추격 신도 자유자재의 카메라 움직임으로 박진감을 더해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언제나 등장하는 비행 장면은 이번에도 이렇게 빠짐 없이 나와 그의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열망을 더욱 뚜렷이 보여주고, 우리의 시각적 즐거움을 더욱 충족시켜주었다.

두번째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한 캐릭터들이다. 지금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이 다들 그랬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이뻐라 해줄 만한 캐릭터들이 참 많다. 할머니로 변하는 주인공 소피부터 그렇다. 그녀가 할머니로 변하는 순간, 온 삭신의 쑤심과 뻐근함을 견뎌내는 그 리얼한 모습에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 절세미남 마법사 하울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사실 극장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에게 이렇게 열광하는 적은 처음 봤다. 목소리를 맡은 배우가 잘생긴 외모와 카리스마로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톱스타 기무라 타쿠야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의 하울의 다소 제멋대로이면서도 다정다감하고 감성적인 면은 <센과 치히로...>의 하쿠에 이어 여성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들 말고도 사랑스런 캐릭터들은 얼마든지 많다. 평상시엔 천진난만한 아이로 지내다가도 외부인 앞에선 노인으로 변신해 능청스럽게 '기다리슈'라는 멘트를 날리는 하울의 제자 마르클, 이름만 악마지 <이웃집 토토로>의 숯검댕이들 못지 않게 귀여운 매력을 연사하는 캘시퍼, 보릿자루같은 몸매로 바쁘게도 움직이는 천식 걸린 개 힌, 소피에 대한 은혜때문인지 소피만을 죽어라 쫓아다니는 무대가리 허수아비, 처음엔 사악하다가 중간엔 주책스럽게 끝에 가선 귀엽게 변하는 황야의 마녀 등 하나하나가 다 개성이 있으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다.

목소리 연기도 일품이었다. 두 주요 인물인 하울과 소피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기무라 타쿠야와 바이쇼 치에코의 연기는 더욱 훌륭하다. 기무라 타쿠야는 <2046>에서 보여준 나지막하게 무게 잡는 목소리와는 반대로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보여서 하울의 캐릭터와 딱 들어맞았고, 일본의 원로 배우인 바이쇼 치에코의 목소리는 환갑을 맞은 배우의 목소리라곤 믿기 힘들만큼 맑고 천진한 구석이 다분했다.(그러나 90세 할머니 연기를 할 때는 역시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허리 펴거나 걸을 때마다 내는 '으이구'하는 소리가 참...^^;;)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거의 처음으로 시도되는 본격 로맨스도 큰 재미였다. <천공의 성 라퓨타>,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기존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중 남녀 주인공이 함께 모험을 펼치는 경우는 많았으나, 사랑을 나눈 티는 내지 않았다. 아주 미묘한 감정을 나누는 흔적은 보였지만. 이와 반면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두 주인공의 감정이 정말 '사랑'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을 만큼 그 표현이 적극적이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겼어. 바로 너야'라고 소피에게 말하는 하울의 대사나, 소피와 하울의 키스신이 두번이나 등장하는 것에서나 둘의 사랑은 전에 없이 확실히 적극적이 되었다. 단순히 모험과 메시지에만 신경을 썼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제는 남녀의 사랑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항상 봐왔던 전쟁에 대한 비판과 자연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는 이 영화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영화 내내 배경처럼 전개되는 전쟁은, 아름다운 화면 중간중간에 온 마을을 뒤덮은 불바다를 통해 그 섬뜩함을 보여준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이유로, 약점을 미끼로 삼아 마법사들마저 전쟁에 참가시키는 모습은 군국주의의 폐해를 고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와 함께,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도 대비시키며 전쟁의 잔혹함과 자연의 소중함을 극명하게 대비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마음이 평온해 본 적이 없다'는 소피의 말처럼, 은은하면서도 장대하게 펼쳐지는 산과 호수, 들판 등 거대한 자연의 모습은 다시금 미야자키 하야오가 강조하는 자연 사랑의 메시지를 실감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볼 때, 적어도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이런 메시지들이 중심이 아닌 듯 싶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전쟁이 결말에 가서 너무 쉽게 매듭지어지고, 좀 더 깊이 들어간 측면이 별로 없기도 하고. 적어도 이번 영화에서는 이러한 반전과 자연보호의 메시지가 일종의 '양념'이라고나 할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는 주인공 소피를 통해 보여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이듦'에 대한 시선이다. 아무리 상상력이 메마르지 않는 '흰머리의 소년'일지라도 이제 나이가 60대 중반을 접어든 시점에서, 가는 세월을 남일처럼 여길 수 있진 못하리라. 이러한 그의 마음이 영화 곳곳에도 묻어나는 듯하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보자면, '나이듦'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각은 상당히 긍정적인 듯하다. 소피의 캐릭터가 이를 말해준다. 어렸을 때는 아무 목표도 없이 마지못해 사는 듯 하다가 늙으면서부터 눈에 띄게 적극적으로 변한 것에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에서 비롯한 삶에 대한 애착이 묻어나고, 열받은 후에도 오히려 기분나빠 하기는 커녕 '기운이 솟아서 좋다'고 하는 것이나, '노인이 되니 놀랄 것이 없어서 좋다', '노인이 되니 잃을 것이 없어서 좋다'는 등의 말들은 나이를 어지간히 먹은 '어르신'만이 얻을 수 있는 여유가 느껴졌다. 이러한 소피의 태도는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의 태도도 되지 않나 싶다. 누구나 늙어가기 마련이다. 노화도 피할 수 없고 죽음도 피할 수 없지만, 시간을 잃어가는 만큼 우리는 삶을 한 템포 천천히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된다. 몸은 90세로 늙더라도 마음은 18세 시절이라면 젊은 마음과 여유로운 정신 모두를 갖게 될 텐데, 내일 모레 삶이 끝난다고 한들 절망적일 게 뭐가 있겠는가. 이렇게 우리에게 보다 긍정적인 삶을 권유하는 듯 하다.

그런 점에서 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아이러니하게도, 짜릿한 모험담이지만 편안한 여유가 느껴진다. 마냥 쉴새없이 설치지도 않고 마냥 생각없이 편하지도 않은, 수많은 세월을 통해 축적되어야 많은 얻을 수 있을 거 같은 '숙성된' 여유를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모험담 속에 녹여넣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볼 때는 쉴 틈 없이 계속되는 모험에 짜릿함을 느끼다가도 주제가 '세계의 약속'이 흘러나오면서 끝을 맺을 때에는, 마치 봄날의 소풍을 갖다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느긋해진다. 정신없이 요란하기만 하지 않고 봄바람처럼 싱그러운 여유를 선사하는 모험담, 이 점이 이 영화의 결정적 미덕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전작들처럼 반전, 자연보호 등의 강렬한 메시지를 작정하고 던져주진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쌓아온 인생에 대한 '노하우'를 통해 급류같은 세상 속에서도 긍정적인 여유와 의지를 갖게 하는 삶의 지혜를 선사해준다. 이제는 60대 중반에 접어들고 칠순을 향해 달려가는 한 '어르신'의 느긋함이 묻어나는 모험담인 것이다.

(총 0명 참여)
탄탄한 스토리 라인? -_-   
2005-01-0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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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Howl's Moving Castle / ハウルの動く城)
제작사 : 스튜디오 지브리 / 배급사 : (주)이수C&E
수입사 : 대원미디어(주), (주)스마일이엔티 / 공식홈페이지 : http://www.facebook.com/smil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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