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사람을 홀린다고...★★★☆
우디 앨런이 유럽에서 연출한 새 영화 <로마 위드 러브>는 로마를 배경으로 4개의 다른 이야기들이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우선 Memory. 유명한 건축 설계자인 존은 젊은 시절 공부했던 로마에서 마지막 휴가를 보내다가 자신을 알아 본 건축학도 잭을 만나, 잭의 삼각관계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Fame. 너무나 평범한 직장인인 레오폴드는 어느 날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는 스타가 되어 화려하지만 피곤한 스타로서의 생활을 누리게 된다. Scandal. 로마로 신혼여행을 온 안토니오는 아내 밀리가 없는 사이에 호텔방에 나타난 콜걸 안나를 친척들에게 아내로 소개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안나와의 거짓 부부 행세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Dream. 은퇴한 오페라 감독 제리는 딸의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로마에 왔다가 약혼자의 아버지에게 엄청난 노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설득에 나선다.
평생 뉴욕을 떠나지 않던 우디 앨런이 2005년 <매치 포인트>를 시작으로 한 동안 유럽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선언하더니 런던, 바르셀로나, 파리를 거쳐 드디어 로마에 입성했다. 최근 우디 앨런 영화에서 조금 거슬리는 점이라고 하면 오락가락하긴 하지만, 점점 최근작으로 올수록 너무 노골적인 촬영지 찬가가 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소위 말하는 ‘관광엽서’ 영화. 그나마 전작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파리의 명소들을 쑥 훑으며 시작했던 것과 달리 <로마 위드 러브>는 영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대 놓고 로마로 관광 올 것을 권유하기까지 한다. 언제부터인가 촬영지의 국가 또는 도시의 관광청이 투자기관이 되고 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물론, 우디 앨런의 영화는 단순히 관광 영화로 보기에 그 내공이 만만찮다. 여전한 그의 유머감각과 철학들은 단순히 웃어넘기기에 또렷한 잔상을 남기곤 한다. <로마 위드 러브>에서도 삶, 특히 사랑에 대한 그의 재치 넘치는 화술과 정의들은 곰곰이 되씹어 볼만하다. 거기에 우디 앨런의 연기를 오랜만에 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영화의 최고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네 개의 이야기가 별다른 접점 없이 평면적으로 진행되고는 있지만, 시종일관 유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로마로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자기 위치를 아주 정확히 잘 알고 있는 영화인 것이다.
※ 우디 앨런은 돈을 댄다면 어느 도시라도 가서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05년에 <매치 포인트> 이후에도 그런 얘기를 한 거 같은 데, 부산이나 전주라면 충분히 시도해도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우디 앨런의 나이를 보면, 빨리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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