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주말 저녁 강남 한복판에 우연히도 <빅이슈>를 팔고 있는
빅판(빅이슈 잡지 판매원, 노숙자)을 만나흔쾌히 잡지를 사 들었습니다.
내가 지불한 3천원에서 천6백원이 한 사람의 노숙자 재활을 위하여 사용된다고 하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겨나네요.
약속 시간을 기다리며 잡지를 훑던 중, 역시 때가 때인만큼 초콜릿에 대한 특집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 초콜릿의 종류, 역사, 맛, 발렌타인 데이와의 연관성 등의 뻔한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초콜릿의 원료가 되는 카카오를 생산하기 위해 동원되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어린이들에 대한 내용이 주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온갖 수제 초콜릿의 달콤함에 우리들이 매료되는 사이 지구의 다른 한 켠에서는 자기가 재배하고 있는
카카오가 원료가 되는 초콜릿이 무슨 맛일지 상상도 못하고 옷도 못 입은 채,
농약을 뿌리며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내용이었죠.
그리하여 올 해의 제 발렌타인 데이는 마냥 블링블링하지만은 않습니다.
사랑이 충만한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이런 무거운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낭만과 센스의 결핍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불편한 진실>과 직면하는 것 또한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일 테니까요.
그래서 무겁게 시작한 만큼 올 해 발렌타인 데이는 이 영화를 감히 추천해 봅니다.
바로 <이터널 선샤인,2004>입니다.
발렌타인 데이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면서도 절대 마냥 밝은 영화는 아니지요.
제가 물론 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기 마련이고
사랑 또한 항상 행복으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아프고 쓰리고 화나고 질투도 나는,
정말 많은 감정들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올 해 발렌타인 데이는 <이터널 선샤인> 함께 사랑의 참모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이터널 선샤인, 2004>
감독 : 미쉘 공드리
배우 :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엘리야 우드, 톰 윌킨슨, 일라이저 우드
사실 이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감독 미쉘 공드리를 단번에 스타덤에 올려 놓았고 짐 캐리의 믿기지 않는 연기 변신,
그리고 케이트 윈슬렛의 믿음직스런 연기 또한 많은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었죠.
게다가 몇 해 전까지 헐리웃의 핫 아이콘 역할을 했던 커스틴 던스트나 우리의 영원한 프로도,
일라이저 우드 같은 굵직한 조연도 영화적 완성도에 큰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감독의 상상력입니다.
무엇보다도 약간은 어두운 영화 분위기와 사랑이라는 주제를 택하고 있음에도
영화 전반에 걸 상상력 넘치는
디테일들(클레멘타인의 머리카락 색깔을 눈 여겨 보세요.)을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극대화 시키죠.
픽션에 가까운 과학을 사랑이라는 놈을 논하기 위해서 사용하다니! 보통 사람은 해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프랑스 태생인 미쉘 공드리는 사실 뮤직 비디오와 광고로 먼저 유명해졌습니다.
이름만 말하면 다 아는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찍었고, 세계 유수의 브랜드 광고를 많이 찍었었드랬죠
(영화 얘기니 자세한 언급은 그만! ㅋ). 정말 많은 상들도 수상했네요.
어쨌든, 그의 감감적이고 창의적인 영상과 독특한 소재가 만나 불후의 명작 <이터널 선샤인>을 만들어 냈습니다.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상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기억 속을 돌아다니는 영상 또한
이렇게 설득력 있게 묘사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
아, 이건 여담이지만 저는 이 영화를 군생활 시절(뭐, 의무소방이지만 그래도 1급 현역입니다.^^;)에 처음 봤습니다.
딱 중간 서열이었을 즈음에 이 영화를 내무반에서 상영하고나서 고참들로부터는
온갖 욕설과 구타를 사사받았고 후임들로부터는 저 따위 영화를 보려고
내 취침 시간을 두 시간 허비했나하는 따가운 눈총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긴 한숨을 내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사랑을 알았던
제 후임 한 놈이 떠오릅니다(진짜 여담이죠?ㅎㅎ).
이 둘은 이렇게 처음 만나게 되었고..
<이터널 선샤인>, 사실 내용을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바로 내러티브의 흐름이 시간 순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 개인적 취향이지만 저는
이 비선형적 구조를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타란티노의 영화들도 대부분 그렇지요.
조엘에 대한기억을 지운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후 기차에서 만난 둘. 이렇게 친해지며 사랑에 빠지죠.
오히려 이런 구조는 영화의 메시지와 클라이막스를 강조하기에 매우 효과적이며
여러 번 감상해도 별로 질리지 않게 해줍니다.
<이터널 선샤인>도 오히려 두 번째 감상했을 때 오히려
더 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영화가 끝나자마자 첫 장면으로 돌아가 다시 본다면 받는 느낌이 훨씬 커질 거라 확신합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
한창 불꽃이 튀길 때 그들은 호수로 달려갑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면서 포스터이기도 하죠.
영화는 사랑을 토대로 하여 쌓인 기억과 추억, 그리고 그에 대한 망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사랑이라는 것 또한 기억과 추억의 조합이며
결국 망각이라는 지우개로 지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물론 당연한 사실이겠죠. 이별을 결심하면서도 서로 함께 나누었던 추억들에 의해
가슴이 깨질 듯이 아프고 고민이 되지만 일단 이별을 한 이후에는 이별의 아픔과 사랑의 시작에서 느꼈던
감정 또한 망각이라는 내 자유의지와 상관없는 지우개에 의해 지워지는 것과 같이 말이죠.
하지만 영화는 결국 정말 진정한 사랑은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사랑은 기억이 아니라 강렬한 무의식 혹은 마음이라고요. 두 톱니바퀴의 아귀가 잘 맞지 않더라도
결국 그 두 톱니바퀴밖에 없다면 삐그덕거리면서도 돌아가야 되는 것처럼 그 둘이라면,
그 둘일 수밖에 없다면 그 둘은 결국 함께 할 수밖에 없다고요……
일종의 운명론과도 일정 부분 닿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상상이죠?
우리가 흔히 미운정, 애증이라고 쉽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역시나 사랑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정확히 정의해낼 수 없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내 옆 현재의 사랑이 나의 소울메이트이고
내 옆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 한다면 어떠신가요?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니체
클레멘타인은 조엘의 기억 속에서 자신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독특한 소재로 이끌어내는 애절한 사랑에 관한 영화인 <이터널 선샤인>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미쉘 공드리의 감각과 배우들의 연기가 시너지를 일으키는
조엘의 기억 속 신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엘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하워드 박사가 시술하는 동안 조엘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클레멘타인과의 추억들과 계속 조우를 하게 됩니다.
쉴 새 없이 다투고 때로는 서로 경멸도 하지만 그래도 한 장 한 장의 추억들 모두가
그들의 사랑을 이루고 있는 구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지워져 가는 기억 속에서 처절하게 외치게 되는 과정이죠
사실 짐 캐리는 코미디보다 멜로가 더 잘 어울리는 배우일지도 모릅니다.
클레멘타인 : 좋은 추억이라도 나눈 듯 작별인사를 하고가.
특히 “이 기억만큼은 절대 지우지 말해주세요” 라고 기억 속에서 외칠 때의 짐 캐리의 표정은
정말 제 가슴이 아릴 만큼 애절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트루먼쇼>가 있기는 했었지만 <마스크>와 <덤앤더머>의 짐 캐리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연기 변신입니다.
기억 속에서 서로 체념하며 작별 인사를 할 때에는 저도 모르게 “안돼”를 외치게 되죠.
게다가 우리가 여러 가지 상상을 두서없이 머리 속에서 임의적으로 하는 것처럼 조엘의 기억 속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시간과 인과 관계 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영상화 시켜내는 감독의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특히 작은 디테일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엄청나게 쏠쏠하답니다.
직접 보지 않고 말로 설명하기는 조금 애매하네요.
뮤직 비디오계의 거장답게 미쉘 공드리의 감각적인 영상과 상상력은 조엘의 기억 속에서 빛을 발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며 정리하도록 하죠.
카카오의 생산과정의 이면을 안다면 초콜릿의 달콤함이 마냥 순수하게만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달콤함 뒤의 왠지 모를 이 쌉살함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초콜릿에 매료되게 하는 이유라고 한다면 비약이 심한 것일까요?
그리고 사랑은 이런 초콜릿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달콤함 이후에 존재하는 쌉쌀함이 닮아 있으며 또한 중독성이 있다는 것 또한 닮아 있지요.
끊으려 해도 다시금 손이 가고 마음이 갈 수밖에 없거든요.
미쉘 공드리 감독은 그래서 우리에게 <이터널 선샤인>을 통해 말해줍니다.
사랑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며 심지어 지워버려도
다시금 달려들 수밖에 없는 그런 미스테리한 존재라고요.
그리고 우리 또한 알고 있습니다. 사랑이 인위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면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영화 포스터의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해줍니다.
You can erase someone from your mind.
Getting them out of your heart is another story.
(당신은 마음 속의 누군가를 지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슴 속에서 그 사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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