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지만 유치해 보인다. 아니면 너무 진부한 주제의식이 담겨 있는 것도 같다. 개인이 아닌 조국과 집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현대에선 받아들이기 힘들어졌다. 개인적인 것들을 희생한다 하더라도 국가 내의 특정 세력을 지원하고 있는, 그래서 사적 이익집단으로만 변한 정부를 생각한다면 왜 희생하느냐를 되물어 볼 상황이 현재의 한국의 모습이다. 한국을 위해 국가대표를 뛰었던 올림픽 영웅이 국적을 바꿔 한국팀과의 승부를 벼르고 있다. 이렇게 한국은 변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 한국은 과거와 달라졌다. 한국인에게 사회를 위해 희생할 것인지 묻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는 없어졌다. 그래서일까? 이 중국 영화는 Old해 보였지만 그래도 뭔가 있어 보였고, 좀 부러웠다. 이 영화, 중국의 정치적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중국인의 의식 역시 개인주의로 변하고 있는 시점이다. 여기에 중국 공산당 정권에 대한 비판도 국내외로 고조되고 있다. 영화를 영화 외적인 요소로 꼭 고려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대중을 상대로 많이들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매우 작위적인 주제의식도 솔직히 눈에 띈다. 의도된 공산당 정부의 계획에 의해 지원된 영화 정도로도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국인들이 알아서 고민할 문제이지 제 3국민들이 그런 것들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중국은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에 대한 선택은 그들이 선택할 문제다. 중국이 많이 변하긴 변했나 보다. 공산주의 국가라면 종교에 대해선 관용을 하지 않을 것으로 알았는데 영화의 제목엔 ‘소림’이란 단어가 나온다. 영화의 공간은 바로 소림사이고 시대는 반식민지화된 중국의 군벌시대였다.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중국국민들을 가혹하게 다뤘던 시대였다. 그런 시기, 혼란은 당연했고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배신이 다반사였던 시대였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시작부터 의형제로 맺어졌음에도 서로를 믿지 못하고 배신을 모의하고 서로를 죽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빚어진 오해와 가족의 불행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화려한 액션과 함께 전개됐다. 언제나 느끼지만 무술영화는 과연 중국이다. 내용이나 구성이 어떻든 무술장면은 가히 핵폭탄 수준이었다. 그런 속에서 진행되는 한 인간의 반성과 성찰이 돋보였다. 한 군벌의 수장으로서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장군 ‘호우지에(유덕화)’의 가정사의 불행과 그의 몰락은 한 인간의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보는 듯 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긍정적이지 않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가 왜 머리를 깎을 수밖에 없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 봤을 때의 그의 심정은 참혹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모든 과거를 포기하고 새로운 생을 살고 싶었고 사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과거는 그의 새 출발을 결코 좌시하지 않았다. 몸은 경험의 축적이란 방장 스님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그것은 결코 과거와 단절할 수 없다는 인생의 철칙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과거의 호우지에로 돌아가야 했다. 비록 그는 군벌의 수장도 아니고, 총을 든 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예전의 그런 모습을 지니지도 않았다. 편안함도 포근함도 없어진, 세상의 날 것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위태로운 그런 모습만은 갖고 있었다. 그런 가족을 상대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그리 편안할 리가 없었다. 그는 하지만 과거와 달리 누군가를 위한 희생을 위해 현실과 부딪쳤다.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전기를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사죄하고 싶었고, 바꾸고 싶었으리라. 복수가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하는지를 직접 느꼈기에 그는 어떻든 나름의 노력으로 최악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마냥 행복한 끝을 이끌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런 전환의 몸부림 속에서 새로운 출발은 좀 더 긍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얻었을 것 같다. 이 영화, 정치, 사회적 관계를 고려해서 본다면 그 나름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영화 구성상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인간의 비극과 성찰을 중심으로 본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 인간이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면서 얻게 된 의미 있는 바람은 한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가치일 것이다. 어떻든 누군가를 희생시킨다면 그 상처는 함께 살고 있는 누군가의 슬픔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 슬픔은 결국 모든 이들의 아픔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용서도 필요하고 성찰도 요구되는 것이다. 유덕화의 한층 물오른 연기력을 감상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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