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의 첫 영화 나들이? 아마 그럴 것이다. 요즘 아이돌 가수 치고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외도를 안 하는 것이 인기 없다는 반증일 상황이니 인기 있는 윤하라면 당연히 영화든 드라마든 나와야 하는 것 아닐까? 혹시 드라마에 나왔는데 챙겨보지 못한 내가 아닐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영화에서 연기하는 윤하는 처음이다. 그런데 주인공도 아니고 하니 윤하의 연기력을 따지거나 비중을 따질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영화는 노래 부르는 가수 중심이 아닌 위기에 빠진 한국 서민들의 현실과 암담한 현실로부터 벗어난다는 환타지물이니까.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보는 관객들에겐 다행인 마지막이다. 사실 보기도 전에 영화 포스터나 기타 등등의 사전제작물들을 본다면 대충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가 하도 많아서, 그렇게 끝나는 것이 당연한 공식처럼 되고 말았으니까. 그래서인지 최근 영화 감상법에서 마지막까지 가는 과정 자체가 좋은 그림이 되야 하고, 좋은 서사가 되어야 하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 수 있는 배경도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세상과 해피엔딩으로 가는 과정은 너무 슬펐다. 남의 일이라고 하기엔 등장인물들이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 같았고, 그들의 사연 역시 시대가 그래서인지 있을 법한 사건들이었다. 영화가 대중성을 확보하려면 이런 비극적인 사건들을 극적으로 해피엔딩해야 하기에 결국 모두가 행복하도록 끝을 맺었다. 영화 속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사연이 현실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힘들었던 그들이 성공하는 장면들은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냥 성공 다음의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왜 이리 건너 뛰었을까? 어쩌면 극작가나 감독도 어떻게 해야 그들이 극적으로 성공할지 방법을 모를 것이다. 신이 아니라면 1년 만에 금나와라 뚝딱 하는 마법을 어떻게 해야 부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리라.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보기는 좋았다. 비극이 비극으로 끝날 때의 아픔을 이미 관객들은 알고 있었고, 그런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 역시 관객들 중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현실에서의 희생양이 된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유야 어떻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서로 보기 좋을 뿐이다. 감정이입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 성공이 왠지 모르게 반갑고 즐거운 이유가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성공이 뒷받침된 배경은 사실 암담한 것들이다. 영화는 잔인한 자본주의 관계를 기반으로 성립된다. 보험이란 것은 좋게 말하면 위기일 때, 고통의 양을 줄이거나 삭제해주는 서비스를 해주는 대행업인데, 문제는 이들이 돈 버는 방식이다. 자신의 고유업무라면 누군가의 고통을 누구보다 먼저 챙겨줘야 하지만 민간업자들이 맡고 있는 이런 대행사인 보험사들은 돈 준 피보험자들이 사고 안 나길 바라고 있다.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면서도 그들이 사고 안 나길 빌면서 그 차익으로 생활하고 돈 버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고객들이 사고 안 나길 빌고, 그러기에 사고 나지 않을 사람들, 즉 잘 사는 사람들이나 무병장수하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생각을 한다. 그러니 오늘 내일 하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맞을 생각도 없고, 자살할지 모른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맞을 리도 없다. 잔인한 자본주의의 생태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이 바로 보험사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바보 같은 보험영업인이 언제 죽을지, 아니 조만간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을 고객으로 유치하고 만다. 이유는 뻔했다. 실적위주의 세상이다 보니 그런 무리수를 둔 것이다. 실적이 있어야 회사에서 해고당하지 않고 좋은 성적도 거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영화는 현실과 비현실이 뒤엉킨 세상으로 진입한다. 보험사 영업이란 것은 자본주의의 속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직업이다. 결코 천사일 리가 없는 어느 보험 영업사원이 자신의 위험을 모면하기 위해 천사로 변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선의, 이런 역설로 인해, 생활고로 인해 위기에 빠진 이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어리석은 탐욕이 천사로서의 역할을 한 이 아이러니를 담은 영화, 정말 신선한 신데렐라 이야기다. 그것도 무려 네 명이나 말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결코 자본주의의 선의를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다. 아니 도리어 비판한다. 그들을 살린 것은 결코 자본주의의 혜택이 아닌, 그나마 어쩔 수 없는 선의라고 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뛴 보험사 영업 사원 덕분이다. 그 영업 사원 역시 자본주의 앞에서 허덕이며 사는 어느 빈곤층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어떻든 천사는 될 수 없는 이념일 뿐이다. 힘든 사람들끼리의 연대? 그럴지 모르겠다. 의도하지 않은 선물?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들고, 외롭고, 비참해도, 죽어야 돈 버는 보험사기 앞에서도 살아가야 할 이유는 많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가족이 있고, 관계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을 만들어서 행복해할 사람은 사실 없지 않을까? 산다면 어떤 기회가 있을지 누가 알까?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있을 확률도 있지 않을까? 포기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면 포기하지 않을 때 작은 것이라도 있을 수 있다. 포기하지 않을 때 기댈 수 있는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살아갈 이유는 있을 것이다. 죽으면 그마저도 포기해야 하니까. 윤하의 연기력은 좋은 것 같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니 영화에서의 노래 부르는 모습도 좋았다. 어쩌면 뛰어난 연기자 윤하는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류승범의 연기력은 분명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 최고의 양아치 연기자로서 자리매김했고 코믹연기에서도 나름 입지를 구축한 그가 이번 주인공 역에서 역시나 발군의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코믹과 우수를 동시에 겸비한 몇 안 되는 한국 연기자이다. 역설적인 두 개의 불협화음이 공존하는 그런 캐릭터 말이다. 그러기에 이번 영화가 그 덕분에 더욱 잘 빛이 난 것 같다. 사악한 자본주의 전도사란 악당이 어쩔 수 없이 착해야 하는 천사가 되는 과정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과연 그란 생각이 든다. ‘주먹이 운다’에서의 강렬한 인상이 코믹과 함께 승화한 그런 연기력이었다. 앞으로 그의 발전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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