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부인과 뱃속에 있던 그의 아이.
자신의 일이 목숨을 담보로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직업이기에 아마 아내와 정말 어렵게 사랑을 시작했고 그 사
랑이 지금의 차태식이 있게 하는 원동력이자 그의 유일한 행복이었으랴.
쉴 곳이 있다는 것. 기댈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 그것도 내 목숨만큼..입에만 발린
허언이 아닌 진정 내 목숨보다 귀한 존재가 내 옆에 있다는 것. 경험해본 자만이 알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요 행복이라는 것을. 하지만 한 순간에 없어져버린 내 단하나의 행복.
그것을 잃은 자의 분노. 하지만 그 분노가 아무리 높다한들 이미 깨져버린 컵을 다시 복원시킬 수는 없는 법.
쏟아버린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법. 그 분노는 슬픔이 되고 그 슬픔은 고통이 되며 그 고통은 내게서 희망의
빛을 앗아가 버렸다. 나에게 남은 것은...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그 칠흙같은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내는 동안.. 자꾸 누군가 그 어둠의 틈새에 빛을 집어 넣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신경도 쓰지 않았으랴.. 하지만 빛을 집어 넣으려하는 꼬마가 자꾸 신경쓰인다.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도,, 엮이고 싶지 않다. 그냥 이렇게 혼자 과거의 그녀를 회상하며 잠간잠간 행복의 시간을 누리고 싶을 뿐이
다. 왜?..더이상 나에게 남은 것은 없기에.. 그 지나간 추억이 내 남은 전부이기에...
하지만 그 꼬마애는 자꾸 나에게 어제가 아닌 오늘을 강요한다. 아니..그럴 수 밖에 없으랴.. 그 애의 환경을 보니
그 애에게 내일은 없다. 지옥같은 하루가 존재할 뿐. 술과 마약에 쩌들어 살고 있는 그 애의 엄마. 그리고 주위에
아무 친구도 없는 이 아이. 그 아이에겐 내가 유일한 쉼터이고 피난처라는 것을.. 그리고 유일한 친구라는 것
을.. 알게 되었다. 그 애가 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허락하는 것임을...내가 잠간 과거를 회상하며 지옥같은
오늘에서 벗어나 희락의 터널을 통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아이는 나와 있는 그 시간이 지옥같은 오늘에서 벗
어나 희락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 어려서 그런가.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게 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아이는 밝다.
하루하루 나에게 세상의 빛을 보여준다. 단절되었던 사람관계의 빛, 스스로 금했던 대화의 빛, 이제 더이상 나에
게는 없을 줄 알았던 관심의 빛까지...
그 빛이 모이고 모여 내 어두운 터널을 조금씩 밝힌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꾸 그녀가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수요원으로 지내는 그 시간동안. 오로지 임무와 살인만이 반복되었던
그 시간동안, 서서히 지쳐갈 무렵 나에게 찾아온 한줄기 빛. 아...그녀가 다시 떠오른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
벅찬 환희와 감동. 그 때와 비슷하다. 회의가 들고 무기력해진 나에게 찾아온 따스한 빛. 그 환한 미소. 보고만 있
어도 내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는... 휴... 복잡하다. 그냥..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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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납치되었다. 또 다시 그 악몽이 떠오른다. 지켜주지 못했던 그 때의 그 순간.
또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더 이상 내 옆의 사람이 죽게 내버려두진 않는다.
내 최선을 다해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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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엄마가 죽었다. 살해방법이 너무 잔인하다. 소미가 위험하다. 그 아이도 이렇게 된다는 건가.
갑자기 그녀가 떠오른다. 그녀도 정말 고통스러웠을텐데... 그녀도 정말...고통스럽게 죽어갔을 텐데..
내 마음의 깊은 한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른다. 그녀를 잃었을때의 그 분노와 슬픔. 고통이 한 순간에 밀려든다.
또 나에게 이런 일이 반복된단 말인가. 이것이 내 운명이란 말인가.. 그것이 내 운명이라면.. 내가 깨부셔주겠다.
소미를 구하는 것은 과거 내 안일함으로 인해 잃은 그녀에 대한 내 마지막 절규다.
더이상 내 옆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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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죽었다. 그 아이가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결국...이렇게 되는 것인가. 내 남은 빛까지도 이렇게 꺼져가는 것인가..
더 이상...살고 싶은 최소한의 의지도 없다. 그래...이게 나의 운명이라면...겸허히 받아드리자.
'찰칵'
장전을 한 총을 관자놀이에 갖다댄다.
'또...지키지 못했어 미안해 다음 생애 다시 만난다면... 그 땐 꼭 지켜줄게..반드시'
서서히 손잡이를 잡아 당기는 순간..
'아저씨'
내가 환청을 들었나..
'아저씨'
분명... 그 아이의 목소리다. 소미의 목소리다. 눈동자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한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소미의 모습. 아아...신이시여..감사합니다
보이니? 내가 이겨냈어. 내가...내가....내가 ....구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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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만 안아보자'
'아저씨 울어?'
됐어 이제 됐어...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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