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전>의 가장 큰 장점은 탁월한 유머감각에 있다. 유머의 은 조연들에게서 나오는데 전작에도 비중 있게 등장했던 오달수는 능청스런 연기로 사소한 몸짓들도 폭소로 승키는데 흡사 그는 마르지 않는 웃음의 샘을 가진 듯하다. 리듬감 좋게 지는 재치 넘치는 대사와 코믹한 설정은 높은 성공률을 보이며 솜씨 좋게 펼쳐진다. 고기 굽는 설정만으로 파생되는 익살스런 순간들을 보건대 감독의 유머감각은 대단한 것이다.
방자와 몽룡, 춘향이 셋이서 주고받고 견제하는 신경전이 코미디의 주요 도구가 된다. 연애의 달인인 식객 마노인(오달수)이 어수룩한 방자에게 춘향의 마음을 얻기 위한 비법을 전수하는 부분은 단연 일품이다. 정숙하고 도도한 척하며 들을 애태우는 동시에 노골적인 시선을 날리며 유혹하는 춘향의 뒤에는 역시 만만치 않은 월매가 버티고 있다. 겉으로야 허풍을 떨어보지만 코치를 해주는 사람이 없는 몽룡 도련님은 삽질을 멈출 수 없다. 이 셋의 대조가 뚜렷하면서도 조화롭게 어울리니 가볍고 단순한 마음으로 조롱과 풍자를 즐길 수 있다.
<음란서생>에서도 그랬듯 영상미는 빼어나고 구도는 보기에 참으로 좋다. 고풍스런 한옥과 풍광 좋은 계곡, 너른 바위 위에서 펼쳐지는 영상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수려하다. 간혹 전작에서 보았던 익숙한 장면이나 대사가 눈에 띄기도 하는데 <방자전>에 와서야 비로소 제 짝을 만난 느낌이다.
중반 , 범상치 않은 목로 등장하는 변학도(송새벽)는 치 못했던 막판 웃음의 펀치를 의외로 강하게 날린다. 그의 출현으로 꺼져가던 농담의 불씨와 늘어지던 영화의 분위기는 일순 되살아나고 우리는 그에게 빠져들게 된다. 하이톤의 보이스에 곁들어진 어정쩡한 전라도 사투리는 불안과 조바심에 어쩔 줄 모르는 혐오스런 사이코와 단순무식한 바보의 경계에 걸쳐진 새로운 개념의 변학도를 탄생시키며 좀처럼 잊히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상대적으로 이 약한 춘향이 캐릭터이다. 요부와 정숙한 처자 둘 사이를 바삐 오가며 두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강렬한 캐릭터에 미치지 못한다. 타이틀이 방자전인 만큼 춘향의 비중과 매력은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 당연할 수 있지만, 춘향에게 좀더 관능적이고 적극적인 욕망의 화신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했다면 더욱 흥미로웠을 것이다.
순결한 사랑을 하는 미담인 「춘향전」을 엉킨 채 들끓는 욕망과 양반의 비열함, 그리고 지조 따위 없는 춘향이로 비틀며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결국 마무리는 희생과 헌신이 판치는 숭고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신파 멜로에서 자주 들려오던 음악과 함께 끝나는 영화는 감동의 여운 보다는 전반부의 익살스러웠던 농담과 유쾌했던 전복의 미덕이 더욱 그리워지게 한다. 고고한 선비와 사랑의 신화를 무참히 깨버리는 발칙함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오랜만에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라는 점은 너무나 기특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