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달 세계의 큰 형님 이서방은 통속소설의 1인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 달라며 지난 날을 회고하기 시작합니다. 30이 넘도록 하인을 전전하다 이몽룡의 몸종 생활을 통해 춘향이를 만나면서 시작된 그들의 이야기를... 첫 눈에 그녀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몽룡의 뒤에만 있어야 했던 방자는 마영감의 연애 코치에 힘입어 꿈에 그리던 춘향의 마음을 얻고 사랑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무렵 장원 급제한 몽룡이 다시 돌아와 그들 사이에는 암울한 먹구름이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하지요.
<스캔들 - 조선 남여 상열지사>의 각본에서부터 남다른 에로틱 사극에 재능을 보여주던 김대우는 본인이 직접 연출을 맡은 <음란 서생>부터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허를 찌르는 소재와 독창성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김대우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보다 큰 스케일의 상상력을 이용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우리 고전 중에서도 대표적인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로 꼽히는 <춘향전>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재 해석한 독창성은 의외성과 반전의 묘미를 곁들여 전혀 다른 이야기를 창조해 냈습니다.
"파격"
<춘향전>을 새로운 배우를 통해 재 해석한 작품은 여럿 있었지만 가장 비중이 없는 인물을 주인공으로내세워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소재의 파격성이 놀랍습니다. 신분상으로 방자와 춘향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는 점을 최대한 살리며 당시의 신분 계급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선을 위험스레 넘나들며 인물간의 구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단지 몸종일 뿐이라 생각했던 방자는 몽룡과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건 사랑의 연적으로 등장하고 몽룡도 춘향만을 그리워하는 로맨티한 남자이기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주변인물을 이용하는 지략가로 표현되며 춘향은 사랑을 지키기 위한 지조 높은 여인이기보다는 신분 상승을 위해 사랑도 버릴 수 있는 여인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캐스팅에서도 드러나 류승범과 김주혁은 서로 뒤바뀐 캐스팅이 아닌가를 의심해 보게 해 또하나의 파격성을 보여 줍니다.
"조연의 힘"
파격적인 내용이나 베드신의 수위만큼이나 재미있는 점은 바로 조연의 위력입니다. 어쩌면 주연 배우들보다 강렬한 잔상을 남기고 있는 그분들은 이번 작품의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하지요. 가장 먼저 마영감 (오달수)은 방자가 절대 넘볼 수 없는 춘향을 맺어질 수 있게 하는 숨은 주역입니다. 평생 2만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하셨다는 장팔봉선생의 수제자이며 월매 자매의 사이를 원수지간으로 벌려 놓은 희대의 호색한으로 등장해 끝없은 웃음을 책임집니다. 그리고 변학도 송새벽)는 오로지 여자와의 잠자리만을 인생의 낙으로 생각하는 난봉꾼으로 등장해 길지 않은 분량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의 혀짧은 소리와 어눌한 행동은 새로운 웃음의 코드로 인기몰이가 기대되기도 합니다.
"반전의 묘미"
통념을 깬 각각의 인물이 주는 재미와 조연 배우들이 선사하는 폭소 그리고 후반부 결정적으로 관객들의 허를 찌르는 마지막 히든카드는 바로 반전입니다. 그 전까지 보았던 내용을 순간 되짚어 보게 하며 뭔가 이상했던 상황을 납득시키는 중요한 설정인 반전은 <방자전>의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해석의 포인트일 것입니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숨겨 놓아 복잡한 상황으로 얽혀 보이게 하지만 어찌보면 간단한 상황으로 정리되기는 이 설정은 색다른 묘미이기도 하지만 그 반전의 깊이가 얕고 모든 의문이 해소되지 않기도 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런 점은 영화 스토리도 초반부부터 흥미롭게 진행되던 계급과 야망을 위한 3명의 이야기가 결국은 신파로 마무리되는 아쉬움과도 일맥 상통하기도 합니다.
"애절한 사랑"
<춘향전>이 애절한 사랑의 행복한 결말이라면 <방자전>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을 담고 있습니다. 첫 만남부터 춘향만을 원했던 방자와는 달리 춘향은 방자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몽룡과의 끝없는 저울질로 방자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애초부터 몽룡은 춘향만을 생각하는 남자가 아닌 출세를 위한 '미담'을 위해 춘향을 이용한 인물이었고 춘향도 그걸 알았기에 방자의 사랑은 더 쓸쓸하고 안타까워 보입니다. 양반의 여자가 아닌 내 여자라는 말처럼 신분의 차이로 빼앗길 수 없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방자의 사랑은 그녀의 단점마저도 아름답게 포장시켜 세상에 <춘향전>이란 작품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기에 이릅니다. 의외성과 역발상이 해학이라는 조미료로 적절히 버무려져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로 나온 <방자전>... 그런데도 끌려간 변학도의 최후와 마영감은 그 뒤로 어떤 삶으로 인생을 마무리했는지가 더 궁금해 지는 것은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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