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정말이지 많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나왔다. 스파이더 맨, 배트맨, 아이언 맨, 슈퍼맨, 맨이라는 딱지가 붙지 않은 다른 히어로 영화들까지... 이들 영화들 중에는 정말 훌륭한 걸작들이 있는 반면에 정말 한숨을 짓게 하는 영화들까지 있다. 이렇게 많은 영화들이 나오면서 어느새 슈퍼히어로 영화에는 공식이 생겼다. 즉, 최첨단 장비를 지녔거나, 완벽한 초능력 - 거미줄 쏘고 날아다니는 등등... - 을 지닌 슈퍼히어로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고, 남한테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서 악과 정의롭게 맞서 싸우고 결국은 선이 승리한다는 그런 식의 공식 말이다. 최근에 몇몇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그 공식을 깨부수려고 하긴 했지만(그래봐야 <아이언 맨>이나 <다크 나이트>, <왓치맨> 정도 밖에는 없다.), 여전히 이러한 공식은 유효하고 비록 엄청난 인기를 불러 모으는 장르 영화라고는 해도 새로움 없는 그 익숙함 때문에 볼거리를 제외하고는 이제는 진부하게까지 느껴지게 한다. 이런 익숙한 공식들이 판치고 있는 영화의 홍수 속에, 기존에 나온 적 없는 이 예상치 못한 새롭고 대담한 히어로 영화는, DC 코믹스와 마블 코믹스의 영토에서 벗어나서, 지금까지 쌓아왔던 장르 영화의 이러한 공식들을 철저히 피해가면서, 슈퍼히어로 영화로서 도달할 수 있는 일종의 정점에 거의 근접한다.
예고편에서 보여줬던 첫 장면부터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왜 아무도 슈퍼히어로에 열광하면서 아무도 그들을 흉내 내지 않을까? 라는 대사와 함께, 건물 위에 슈퍼맨이 되고 팠을 법한(?) 한 사람이 복장 다 갖춰 입고 뛰어내린다. 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했겠다만, 결국 내려와 택시 위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건 물론 내가 아니야. 아마도 무슨 정신병자겠지.
이 영화의 중심에는 정말 평범하고, 어떠한 특수 능력이나 특수 장비가 없는 데이브와 그의 주변의 그 평범한 세계가 있다. 데이브는 거미줄 쏘는 능력을 지니기 전의 피터 파커와 똑같다(다만 성인용이기 때문에 설정이 더 어른스러워졌을 뿐이다.) 인상적이었던 초반 장면에서, 영화는 데이브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주위에는 좀 덜 떨어진 친구들과 열라 예쁜 여자애가 있고 수업 시간 중에 선생님을 보며 엄청난 성적인 욕망을 느끼고, 엄청난 만화 광으로 왜 우리 세계에는 평범한 슈퍼히어로가 없을까라고 생각한다. 만날 당하기나 하면서 살던 그는 슈퍼히어로가 뭐 별건가 하면서 자기가 직접 슈퍼히어로가 되어 악에 맞서 싸우겠다는 정말 비장한 결심(?)을 한다. 초록색 쫄쫄이 옷을 입고 곤봉을 들고 다니면서, 그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점 그럴싸해 보이게 됨으로서 그야말로 인터넷 스타가 돼버린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훈련 받지 못한, 특별한 거 어느 하나 없는 히어로인 척 하면서도 히어로답지 않은, 평범하고 어리버리하고 띨빵해 보이는 고등학생, 딱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그의 앞에, 진짜 슈퍼히어로가 등장한다. 힛 걸하고 빅 대디가 바로 그들이다. 부녀지간인 그들은(힛 걸 실제 극중 나이가 11세고 그걸 연기했던 배우의 나이가 13살이다. 그야말로 ㄷㄷ) 복수를 위해 히어로가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총도 잘 쏘고, 무기도 근사한 게 많고(그들이 살고 있는 집을 보라. 그야말로 무기 천국이다.) 싸움도 엄청 잘하고, 또 신출귀몰하고... 암튼 뭔가 갖추어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의 주인공은 일종의 열등 의식을 가지게 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보면 아니라고 하겠지만, 이 영화는 상당히 어둡다. 밝게 진행되는 거 같으면서도 결국은 어두운 범죄 세계에서의 뒷일을 보여준다.(이 영화는 실제로 범죄 서사시적인 요소들도 있다.) 주인공의 평범한 고등학생으로서의 생활과 어설픈 슈퍼히어로로서의 모습 만큼이나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또 다른 세계는 프랭크 드미코가 있는 어두운 범죄의 세계이다. 드미코의 조직은 두려울 것이 없는 그야말로 거침없는 조직이지만, 킥 애스를 시작으로 해서 등장하는 히어로들 때문에 자신의 사업에 위험을 받게 된다. 그들을 잡아서 죽이기 위해, 자신의 아들이 스스로 또 다른 히어로인 레드 미스트가 되어 그들을 유인한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이어지는 중반부는, 생각지도 못했던 암울함과 어두움을 보여준다.(그러면서 만화적인 장면들로 마무리하는 후반부의 대담함이란...)
영화는 지루할 틈 없이 감각적이고 스타일리쉬하다. 영화 전체적으로 액션의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각각의 장면들은 그야말로 에너지가 넘친다. 창고에서 빅 대디가 보여주는 장면도, 예고편에서 보여주었던 힛 걸이 쌍권총을 화려하게 휘두르는 그 문제의 장면 역시 정말 끝내준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단연컨데 중반부에 나오는 장면이다. 드라마적인 힘도 있거니와, 마치 1인칭 FPS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스포일러가 될 지도 모르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락)
각색의 힘이 실로 대단하다. 주인공의 평범한 모습과 암흑가의 어두운 모습들, 각각의 인물들을 잘 살려낸 스토리는 정말이지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 여기에 정말 인상적인 것은 엄청난 유머적 감각이다.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재미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감독인 매튜 본과 각본을 쓴 제인 골드만의 공이 엄청 크다. 이 영화의 유머는 <무서운 영화> 시리즈 같은 저렴한 패러디나 유치뽕짝의 유머 장면들과는 다르게 시기적절하고 넣는 족족 빵빵 터진다.(사고 난 후에 철심 같은 걸 박아둔 자신의 액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이거 끝내주네. 울버린 같자나. 뭐 이런 식으로 계속...) 순간적으로 이게 히어로 영화가 아니라 성인용 코미디 영화인 걸로 착각할 정도다.(특히 초반부... 휴지 공장 나오면서...) 여기에 마카로니 웨스턴과 스콜세지의 걸작 <좋은 친구들>을 자동적으로 떠오르게 하는 사운드트랙 역시 완벽 그 자체이다.
그야말로 스타일리쉬한 연출에 배우들이 큰 힘을 입어준다. 히어로답지 않은 평범함 그 자체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아론 존슨도 좋았고 복장부터 배트맨을 연상시키는 빅 대디를 맡았던 니콜라스 케이지도 잔혹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도 딸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러한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많은 슈퍼히어로 영화에 출연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는데 결국 소원 성취 하신 듯...). 힛 걸로 나왔던 크로 모레츠에 대해선 이미 더 할 말 없이 그냥 끝내주고 굉장했다. <킬 빌>의 우마 서먼하고 <원티드>의 안젤리나 졸리를 잘 합쳐놓고 거기에 약간의 감정적인 모습까지 보여주고, 무엇보다도 정말 시원시원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크 스트롱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악역만 맡는 배우라는 이미지를 주는 인물인데, <셜록 홈즈>에서 정말 심심한 악당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여기에서는 지금까지의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근사한 비빔밥을 먹는 것과 같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왠지 <스파이더 맨>의 피터 파커의 <슈퍼배드> 버전인 것 같고, 어두운 범죄 세계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걸 보면 영락없이 <배트맨> 같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장르 영화를 자기 멋대로 가지고 노는 타란티노의 냄새가 나고, 액션은 완전한 <킬 빌> 스타일에 <원티드>와 <이퀼리브리엄>을 연상시키는 빠르고 신선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만화 같은 액션 장면에 공감 형성되는 캐릭터를 가져다가 평범한 세계와 컴컴한 범죄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여기에는 보통 수준을 넘어선 그야말로 넣는 족족 다 먹히는 미친 듯한 감각을 지닌 유머와 다크 코미디, 패러디 장면과 중간 중간에 예상치 못한 엄청난 어두움을 집어넣은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다. 정말 대단한 것은 이런 모든 요소가 그야말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비빔밥 만드는데 있어서 요리법이 정말 최고였단 거다.
한 마디로 이런 오락 영화, 결코 흔하게 나오는 영화가 아님은 정말 확신한다. 그야말로 끝내주는 경험이다.
P.S
1. 그야말로 흥분 상태로 쓴 극찬형 글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은 영화이다.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피 튀기는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많이 있고, F나 S, C로 시작하는 4글자짜리 욕설들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게다가 11살짜리 여자애가 쌍권총과 칼을 휘두르며 정말 폼나게 사람을 죽이고, 생명체들을 파리 다루듯이 다루는 장면들도 몇몇 보인다. 영화니까 그럴 수 있지 이러면서 넘길 순 있겠지만, 그래도 이러한 장면들이 상당히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며, 단순히 재미있다는 이유로 무마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 그것 때문에 아무리 잘 만들어진 끝내주는 영화라고 해도 만점은 못 주겠는 거고...
이렇게 말은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내가 본 2010년도에 미국 개봉한 영화들 중 가장 최고였다.(2009년에 미국 개봉했지만 2010년에 국내 개봉한 영화들은 다 빼고...) 또 내가 지금까지 봤던 슈퍼히어로 영화의 순위를 매긴다고 해도, 이 영화는 <다크 나이트> 다음으로 올 영화다.(물론 <아이언 맨>, <스파이더 맨 2>, <배트맨 비긴즈>도 좋았지만 <다크 나이트>가 이 모든 걸 아이들 동화 수준으로 만들었다. 뭐 아무리 잘 만들어도 <다크 나이트>는 넘사벽...) 오죽하면 <아이언 맨 2>가 이 정도로 재미있진 않을 거라는 생각 마저... 굳이 볼 필요가 있을까 할 정도로...(확실히 올 해는 근사한 오락 영화가 여름산 블록버스터 시즌 이전에 다 나온다는 느낌이 든다.)
2. 홍보를 잘못 해도 정말 잘못 했다. 포스터부터 유치찬란한 초딩용 영화인 것처럼 하고, 영화를 블록버스터라고 홍보하는데, 어딜 봐서 이게 블록버스터란 말이냐. 포스터도 미국 거에 비해 정말 수준 떨어지는 느낌이다. 오죽하면 아동용 블록버스터 인 줄 알았는데 등급 때문에 완전 깝놀하시는 사람들까지 있겠는가. 게다가 부재로 꼭 영웅의 탄생이라는 말을 붙었어야만 했었던 걸까. 영화와 별로 어울리지는 않는 거 같은데...
3. 자막이 그야말로 끝내줬다. 최근에 봤던 발로 만든 듯한 홍주희의 자막 변역이 아니어서 그런 걸까. 최근에 일련의 홍주희가 변역한 영화를 보면서 인터넷에 올라오는 자막보다 더 질이 떨어지는군. 이 생각하면서 화가 났었는데, 이 영화의 자막은 그야말로 너무 좋았고,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어투로 말하고, 언어도 그야말로 거침없다.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까지...
4. 영화 다 보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후반부에 바주카를 들고 계셨던 덩치 큰 흑인 아저씨의 표정이었다. 어찌나 웃기던지... 보신 분들이라면 다 인정하실 듯.
5. 영화 특성상 국내에서의 대박급 흥행은 왠지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제작비도 적고, 왠지 미국 같은 곳에서는 예상치 못한 대박을 낼 지도 모르겠고.... 결국 이 영화 속편 나오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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