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많이 웃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깨닫는다. 나는 다행히도 웃음이 많은 편이라 사소한 것에도 잘 웃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힘들 때에도 웃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살면서 기쁜 순간보다는 힘든 순간이 더 많이 다가오고, 설령 기쁜 순간이 많다 해도 많은 이들은 그것이 정말 기쁜 순간임을 깨닫지 못해 웃을 수 있는 순간을 놓칠 때가 많다. 하지만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 지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결국은 삶의 흐름이 우리의 태도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가 삶의 흐름을 좌우하게 되어 있다. 웃음 한 번에 벅찬 아픔이 벅찬 행복으로 탈바꿈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 전혀 웃음이 나올 수 없었을 것 같은 삶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름부터 쓴 절망보다 화사한 희망을 환기시키는 이 사람은 자신 앞에 닥쳐 온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똑바로 인식하되 슬픔으로 무너지지는 않았다. 영화 <밀크>는 이 사람이 어떻게 미국 사회에서 가장 힘들지만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는가를 따라간다.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상반되게 목소리는 영화 속 그 사람의 표정처럼 밝고, 그것은 곧 감독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밝은 표정 덕분에, 시대를 관통했던 아픔은 더 선연히 남아 있다.
1970년, 별 성과 없이 마흔을 앞두고 있던 하비 밀크(숀 펜)는 어느날 일생의 사랑인 젊은이 스콧(제임스 프랑코)을 만난다. 스콧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하비는 샌프란시스코의 카스트로란 도시에 정착해 장사를 시작하려 하지만 당시 동성애자들을 매우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지역 사회의 시선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다. 결국 하비는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만큼의 영향력을 갖기로 결심하고, 스콧과 함께 지역 사회에서 게이의 상업적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데 열중한다. 덕분에 하비는 '카스트로의 시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경찰은 게이가 거리를 다니기만 해도 잡아갈 만큼 시선이 얼어붙어 있고, 미국의 다른 일각에서는 동성애자들의 기본권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으려는 교회 출신 세력이 게이 보호법 폐지에 혈안이 된다. 더 이상 보고만 있어선 안된다는 것을 깨달은 하비는 자신들의 권리를 알리기 위해 미국 최초의 게이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수 차례 실패 끝에 마침내 샌프란시스코 시의회에 입성한 하비는 댄 화이트(조쉬 브롤린) 의원과 동료가 되는데, 처음엔 동지인 줄 알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법안에 대한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서 탐탁치 않은 관계가 된다. 바깥에선 게이들의 인권을 차단하고자 하는 외부 세력이 갈수록 확장되어 가고 있는 상황인데, 턱없이 벅차 보이는 하비의 행보는 어떤 결과를 맞을 것인가.
미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유명인사가 그만의 업적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전기 영화로 보일 수도 있지만, <밀크>는 그와는 살짝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밀크>는 비범한 인물의 전기라고 해서 그와 그를 둘러싼 배경을 굳이 영화적으로 비장하거나 위엄 있게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 최대한 당시 상황과 직접적으로 연관시킴으로써 인위적 감동보다 리얼리티에 무게를 두는 식이다. 시작부터 영화는 1960~70년대 억압받던 게이들의 모습이 차례로 비춰지고, 영화 중간중간에도 월터 크롱카이트 등의 당시 언론인들이 등장하는 실제 보도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매우 극적인 휴먼드라마의 형식을 띨 수 있었음에도 영화는 생각보다 다큐멘터리 형식에도 어느 정도 다리를 걸치고 있다. 물론 그의 평소 작품들에 비해서는 대중적인 편이지만 <굿 윌 헌팅>이나 <파인딩 포레스터>만큼은 아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그만큼 과장보다 자연스러움으로 흘러간다. 스크린을 압도한다 싶을 만큼 강렬하진 않아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는 어느새 관객의 가슴에 깊은 파문을 남긴다. 하비 밀크 역의 숀 펜이 보여주는 연기는 그 중에서도 당연히 으뜸이다. <아이 엠 샘>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에서 끓어오르는 남성미가 두드러졌던 그인데, <밀크>에서의 그의 모습은 전에 없이 발랄하고 부드럽다. 동성애자에게 남녀의 캐릭터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면 영화 속 하비 밀크는 여성에 가까운데, 떠날 줄 모르는 긍정적인 태도와 웃음으로 눈 앞에 닥친 시련을 모두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은 부드럽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때론 밖으로 발산되는 감정보다 안으로 수렴되는 감정이 더 깊은 자국을 남기기도 하는데, <밀크>에서 숀 펜이 보여주는 연기가 딱 그런 경우다. 그의 웃음과 선량한 눈빛 속에서도 현실로 인한 아픔과 현실에 대한 분노가 모두 담겨 있다.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영화가 끝난 뒤 생각할 수록 마음이 얼얼해질 그런 연기다.
숀 펜과 함께 호흡을 맞춘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훌륭하다. 어쩌면 하비의 삶이 바뀌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도 할 수 있는 스콧 역의 제임스 프랑코는 굳은 신념을 지닌 하비와 상반되게 끊임없이 겉돌며 방황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꽤 깔끔하게 소화했다. 종종 코미디 영화에서 끝을 모르고 망가지기도 하는 그이지만, 이렇게 믿음직한 연기도 보여줄 줄 아니 미래가 더 기대된다. 하비와 대립 관계에 놓이게 되는 댄 화이트 역의 조쉬 브롤린은 자칫 단순한 악역으로 보일 수 있는 캐릭터를 절제된 연기로 더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독특한 위치 덕분에 주목받는 하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끼는 인물로서 갖게 되는 부담과 불안을 잘 담아냈다. 하비의 정치 활동을 돕는 운동가 클레브 역의 에밀 허쉬, 하비의 철없는 연인 잭 역의 디에고 루나가 보여주는 연기 또한 혈기왕성하면서도 안정적이다.
해외 영화 감독 중에 동성애자로 알려진 이들이 꽤 있지만(스티븐 달드리, 구스 반 산트, 페드로 알모도바르, 브라이언 싱어 등) 구스 반 산트는 그 중에서도 자신의 그러한 성격을 작품에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데뷔작인 <말라 노체>부터 시작해서 <아이다호>, <카우걸 블루스> 등이 그렇다. <밀크> 역시 그 부분에 있어서 감독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감독은 자신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마냥 진중하게만 전달하지는 않았다. 일반 관객들이 으레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조심스러운 접근이나 무거운 분위기 또는 자극적인 묘사가 이 영화엔 존재하지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가 애초에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에 대해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고, 15세 관람가에 걸맞게 이들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 또한 자극적이지 않고 가볍게 지나가는 수준으로 보여줄 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무겁지 않은 분위기다.
분명 하비 밀크가 걸었던 길은 쉽지 않은 길이었다. 지지 세력이 10%라면 반대 세력이 90%인 상황이었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협박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여론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가시밭길을 인상 쓰고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마치 축제 기간이라도 되는 듯 흥겨운 분위기를 적잖이 유지한다. 처음 하비가 스콧과 함께 카스트로 내에서 영향력을 얻어가던 과정도 삼삼오오 모인 게이들의 밝은 표정을 담으며 발랄하게 묘사하고, 선거에 뛰어든 뒤 선거 전략에 여념이 없는 본부(?)의 모습도 긴장감보다는 친근한 유대감이 더 앞서 느껴진다. 이렇게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상반되게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은 아마도 주인공의 성격이 끼치는 영향 때문일 것이다. 하비 밀크 자신이 긍정으로 가득한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이러한 하비 밀크의 시선을 주저없이 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영한다.
물론 영화는 그들이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아픈 상황을 애써 지우려 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하비 밀크가 1978년에 피살됐음을 알려주는 만큼, 이 영화는 일정 부분 비극을 예정하고 있다. 이야기가 어떻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저 주인공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어느 정도의 우울함을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또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등장하는, 하비 앞을 수시로 가로막는 뼈아픈 현실은 하비의 긍정적인 태도에 동화되어 가다가도 '아, 이건 녹록지 않은 현실이었지'하며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런 현실의 아픔도 마침내 뛰어넘는 희망의 힘을 드러내고야 만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20세기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로부터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세상이 짐승 취급하고 존엄성을 뺏으려 하는 현실에서, 하비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들이 지나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시궁창같은지 되새김질하고 아픔을 실감하는 대신, 그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한다. 점점 독재 정치가가 되어 가는 것 같다는 시장의 따끔한 지적에 오히려 영광스럽다고 얘기할 만큼 소외감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아팠기에, 하비는 자신들의 인격에 소수자라는 꼬리표를 붙여 동정표를 사려 하기보다 더 밝은 곳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려 한다. 어두운 곳보다 밝은 곳으로 시선이 향하기에 결국 그들의 목소리는 동성애자들을 물론 여성, 노인, 빈민층 등 소수자들 전체를 향해서도 호소력을 갖기 시작한다. 그들을 무릎 꿇게 하려는 가혹한 상황들이 쉼없이 닥치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자 하비가 짓는 웃음은 그것들보다 더 강하다. 육체적, 정신적 폭력으로 물든 외부의 시선보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하비의 미소가 더 강하다. 그렇게 쓰디쓴 현실을 삼키고 짓는 하비의 웃음이 있기에, 그들의 좌절은 더 아프고 일어섬은 더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찰리 채플린이 남긴 유명한 말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있다. <밀크>가 보여주는 하비의 삶은 정말 그랬을 것 같다. 그 누구보다도 울고 싶을 순간이 많았을 테지만, 포스터 전면에 자리잡고 있는 숀 펜의 함박웃음처럼 그의 삶은 결국 희망의 햇살로 그 결실을 보여주었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까지도 그를 지지한 이들에게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물론 <밀크>를 통해 그 자유분방하게만 보이는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소수자들의 아픈 과거사를 이야기하려고도 했겠지만, 영화가 주는 깨달음은 비단 소수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결국, 아픔을 가장 또렷이 바라보게 하고 마침내 그 아픔마저도 힘으로 탈바꿈시키는 희망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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