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적부터 가면 무도회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화려한 가면을 쓴 채 상대방이 누구인 지도 모른채 어울리는 파티.
가면이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 시킬 뿐 아니라
나. 그리고 상대방의 표정도 감춰준다.
싫은 것인지, 좋은 것인지, 지루한 것인지, 즐거운 것인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알지 못한채 돌고 도는 파티.
그것이 바로 내 유년 시절의 가면 무도회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백야행은 마치 그런 가면 무도회 같다.
화려한 손짓, 나풀거리는 치맛자락, 펄럭이는 부채.
보여주는 것은 많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보여 주지 않는다.
감정.
소설 백야행 속의 주인공들은 감정이 숨겨져 있다.
그들은 마치 하얀 가면을 쓴 것처럼
그들의 내면을 보이지 않은 채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그들의 행동만 보여 줄 뿐이다.
그리고 독자는 그런 그들의 행동을 보고 그들의 내면상태를 추측 할 뿐이다.
여러 각색자들은 이러한 가면에 집중했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하얀 가면.
그리고 드라마 백야행은 그 속에 사랑이라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행동이 사랑이라는 원인에 의해서라고 규정지어 놓았다.
사랑.
과연 그것이 정답이었을까?
글쎄... 정답이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사랑이라는 원인은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했고,
드라마 백야행은 어느정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또다른 각색자(박신우 감독) 붓을 들었다.
그 가면은 영화 백야행으로 탄생했다.
사실 내 예상과 다르게 백야행은 꽤 혹평을 듣고 있는 것으로 안다.
도대체 왜?
손예진과 고수의 연기는 정말 다른 누구를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아마 우리나라의 다른 어느 누가 했어도 이 둘보다 잘하지 못했으리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연기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래. 사실 답은 나와있다.
2시간의 런닝타임.
세권이나 되는 소설책을 2시간으로 줄인다는 것은 모든 소설원작의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결점' 이었다.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은 영화화 하기엔 타고난 결점이 또 한가지 더 있었다.
바로 하얀 가면.
게이고의 소설에선 주인공들의 내면 심리가 드러나 있지 않아 각색을 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이었지만
기본 스토리에 충실하면서 가면에 색을 칠하기엔 2시간이란 런닝타임은 턱 없이 부족했다.
하는 수 없이 영화는 과감한 생략을 시도한다.
일본의 급격한 경제성장이라는 시대적 이유를 삭제하고
미호화 요한의 중간의 십여년을 삭제하고
요한의 완벽주의를 파괴했다.
짧은 시간안에 모든 것을 다 담으려 했던 욕심으로 인해 소설 백야행을 깨뜨려 버렸다.
결국 영화에 남은 것은 사랑과 팜므파탈의 중간색으로 칠해진 미호의 가면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을 뿐이다.
백야행 자체가 못 만든 영화는 아니다.
전체적인 흐름 자체가 좋은 영화였고,
배우들 연기나 호흡자체도 훌륭한 영화였다.
다만 보여주려는 욕심이 과해
소설 백야행도,
영화 백야행도
둘 중 어느것도 완벽히 갖지 못한 채 어중간하게 만들어 졌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럴 바엔 소설 백야행을 버리는 편이
원작 팬들에겐 욕을 먹는다 해도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고수는 발전이 아니라 발견이다.
그는 빛나던 원석이였는데 항상 사람들이 그를 보지 못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고수가 빛을 보아서 개인적으로는 참 좋다.
정말 고수앓이용 영화란 말이 정확한듯.
+손예진이란 배우 참 무섭다.
그녀의 한계가 도대체 어디까지 인 지 모르겠다.
팜므파탈적 캐릭터를 완성시킨 작품.
이제 손예진이란 배우에게 캐릭터의 한계는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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