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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묵시록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novio21 2009-11-27 오전 11:55:51 1163   [0]
  영화 시작부터 느낄 수 있는 강한 흡입력과 불운한 매력이 영화 마지막까지 유지됐다. 공포와 기묘한 불운, 그리고 14년 전과 후로의 시간의 기이한 배치는 영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강한 매력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관객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괴이한 원인, 아니 가증스런 원인과 그 희생으로 인해 시작된 이 영화는 그 원인에 의한 비극적 관계와 그로부터 잉태된 탐욕, 그리고 이후의 공포스러우면서도 슬픈 사연들로 뒤엉켜 있었다. 빈곤, 성폭력, 파괴된 가정, 희생을 통해서라도 얻고 싶은 탐욕, 그리고 희생을 의미하는 ‘팜므 파탈’ 등 불운한 것으로 상징되어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또한 비밀이란 코드에 둘러싸여 영화 마지막까지 긴장을 양산시킨다. 또한 인간의 내면적 심리에 강한 영향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어쩌면 신비로움이란 코드 역시 쥐고 있는 지 모르겠다. 그러나 긍정이 아닌 비극의 신비로움이 이 영화의 비밀의 정체다.
  우아함을 지켜주는 검은 불행. 그래서 ‘하얀 어둠을 걷다’인가 보다. 영화는 야멸찬 진실을 하얗고 우아하게 형상화한다. 그러나 그런 우아함 속에 감추어진 거친 속내는 잔혹동화였다. 우리들의 현실을 날카로운 칼로 도려내는 듯, 영화에서 보여준 현실은 냉혹을 담고 있는 거짓말로 만든 사회다. 약자이기에 성적 노리개로 전락한 어느 미소녀의 하얗고 우울한 모습, 그리고 그것을 보고 괴로워하는 가해자의 가족, 그리고 딸을 노리개라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는 희생자의 엄마 등 영화의 거의 모든 캐릭터들은 현실에 대한 가혹함 앞에 무기력하게 서있을 뿐이다.
  괴기한 탐욕의 희생자가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은 하나였다. 그렇게 된 자기의 현실과 배경에 대한 증오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그것이었다. 이를 위해 육체적 헌납은 물론,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바꿨으며, 자신의 과거의 가족을 소멸시켰고, 또한 믿을 수 없는 미래를 담보로 자신을 사랑하는 상대를 악용하는 것이었다. 즉 팜므 파탈이다. ‘카르멘’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로 문학에서 자주 이용하는 이 팜므 파탈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아름다운 백조의 모습으로 관객의 시선을 이끌고, 우리들이 되고자 하거나 갖고자 하는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그러나 그 이면의 모습에서, 관객은 당혹감과 고민, 그리고 현실의 냉혹함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엄연한 현실임을 자각한다.
  우아함을 선사 받은 ‘미호’는 ‘지아’라는 과거의 어두운 비극을 지우고 아름다운 흰 옷 뒤편에 숨겨진 물질에 대한 탐욕을 얻기 위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인다. 이런 그녀를 위해 14년 전 사건의 모든 것을 만들었던, 그녀를 사랑하는 ‘요한’은 그녀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들을 파멸하면서 그녀를 위한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이름의 요한이란 이름을 가진 그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니면 자신의 어두운 현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현대인처럼 말이다. 이런 그들의 중간 어디쯤에 자식을 잃어버린 과거로 얽매인 형사 동수 역시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는 방황하는 어느 현대인이다. 다시 한 번 수사를 하면서도 그의 목적은 뚜렷하지 않았다. 억지스런 표현이라면 형사란 책임감과 아니면 죽은 아들에 대한 미련? 하지만 그는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범인을 잡아, 관련자들의 비극을 끊지도 못했고, 어둠 속에 헤매고 있는 성자의 이름을 지닌 요한도 구원하지 못했다. 그는 어설픈 집착만을 보였다. 어쩌면 그는 마지막까지 아무 것도 못하는 무기력한 현대인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또한 그 역시 순수한 마음을 지닌 지아를 버린 미호의 욕망의 희생자인지 모른다.
  폭력에 의해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타인의 희생을 발판으로 그것을 이루려는 미호와 사랑과 과거의 슬픈 인연으로 인해 불편한 탐욕을 이루기 위한 말 잘 듣는 살인기계가 되어 버린 요한, 그리고 잡지도, 잡을 수도 없었던 무기력한 형사 동수의 모습은 가혹한 현실 앞에 철저하게 파괴된 현대인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졌다.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것들은 어쩌면 그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도 있었던 긍정적 원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들 것 얻지 못했다. 의도하지 않은 상실을 경험하고 그들은 가슴 어느 곳에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갈 불행한 자들이었다.
  무섭다. 영화의 내용 하나하나는 비밀스런 포장지로 감춰진 욕망과 그 앞에 무기력하게 파괴되는 현대인이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선 결국 타인의 희생을 요구해야만 하는 지금의 이데올로기가 다시금 여기에서 재현되고 있어 보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팜므 파탈의 욕망이 영화 후반기로 부각되고, 그 욕망을 위해 타인을 희생하는 자의 여린 마음과 언뜻 드러나는 인간적 양심,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그의 비관적 인생관들을 관객들은 불편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시체 위에 피는 꽃들은 결국 시들게 된 것을 관객은 결국 목격했다는 점이다.
  부자이자 딸이 있는, 과거가 있는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물질적 탐욕을 상징한다. 팜므 파탈에게는 사랑은 부차적인 욕심일 뿐이다. 특히 파멸되고 희생된 경험을 가진 자에겐 말이다. 희생되고 파멸을 경험한 자에게 인간적 매력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 것이다. 어쩌면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늘어나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조건에 좌우되는 것이라고 팜므 파탈은 냉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욕망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아름다운 백조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과거의 내면적 Trauma를 지닌 미호는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과 판단은 지독한 역설이면서도 너무도 타당한 진실임을 지금까지 살아오고 앞으로도 살아갈 관객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관객들은 그런 냉혹한 진실을 긍정할 만큼 사회는 슬픈 서사를 계속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력한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요한은 어쩌면 현대인이 생각하는 로망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는 파괴된다. 살인하면서도 잔인하지 못한 그의 우울한 모습에서 살인해야만 하는 당위성보단 그런 그에게 밀어닥친 불운한 운명이 너무 야속해 보이기만 하다. 그래서 불운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가 범인으로 잡혀야 하는 역설적 당위가 이 영화에서 존재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악용되고 희생됐고 잡히지 못한다. 그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그의 불행은 그러나 누구를 사랑해서 탄생했다기보다 물질주의 앞에 무력하게 무너진 인간의 아름다운 정서로만 느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름다운 사랑을 담은 로맨틱 서사이겠지만 현실은 누군가의 물질적 탐욕을 위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영화가 던져주는 이야기는 너무 아프다. 잔혹동화의 결말이 언제나 불행이듯, 영화 마지막에 보이는 피의 색은 그래서 너무 짙고 붉었다. 그가 본 여인의 모습은 미호가 아닌 지아였던 것은 갈망했지만 얻을 수 없는 인간의 순수한 내면일 것이다. 이미 미호에겐 그런 매력적인 지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질 앞에 인간미가 얼마나 허약한지 너무 서글프게 구체화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멋진 서사에만 있지 않다. 고수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의 주변엔 한석규와 손예진이란 뛰어난 배우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고수에 매력이 이 영화의 핵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상처 입은 어느 남자이자 잔인한 살인을 하기엔 너무 연약해 보이는 심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랑이란 덫에 잡혀 있는 불행한 남자의 복합적인 캐릭터를 뛰어나게 연기했다. 그는 영화에서 웃지 않았고 언제나 누군가를 처다 봤다. 그러나 영화 어느 곳에서도 그의 사랑에 대한 답변으로 방긋 웃는 어느 여자의 미소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같이 찍힌 사진에서조차도.

(총 1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1-16 15:23
sarang258
잘 읽었습니당   
2009-12-05 00:53
nada356
잘읽었어요`   
2009-11-29 15:08
hooper
잘봣어요   
2009-11-27 17:05
kooshu
오호   
2009-11-27 14:23
1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
제작사 : (주)시네마 서비스, 폴룩스 픽쳐스 / 배급사 : (주)시네마 서비스, CJ 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whitenight200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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