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조각으로 토막 난 젊은 여성의 시체가 금강 하구 둑에서 발견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검전문의인 강민호(설경구) 는 미국에서 귀국하는 딸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의뢰를 맡게 되고 자신이 가르쳤던 민서영(한혜진) 형사와 함께 사건을 추리한 끝에 사건 지역 출신의 환경운동가인 이성호(류승범) 를 용의자로 지목하게 된다. 그러나 용의자로 체포된 이성호는 민서영 형사 앞에서 자신이 범인이라고 너무나도 쉽게 자백한다. 그리고 이 순간 자신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민호는 이 납치사건이 이성호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 앞에 나타난 강민호에게 이성호는 딸을 구하고 싶으면 자신을 3일안에 풀어달라는 거래를 제안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몇 가지 영화들이 떠올랐다. 토막살인 사건은 <텔미썸딩>, 제한된 시간 안에 범인을 풀어주지 못하면 인질로 잡힌 자신의 가족이 죽는다는 점에서는 <세븐 데이즈> 와 역시 같은 작가의 감독 데뷔작인 <시크릿> 으로부터는 주인공이 범인이 제시한 단서들을 따라 추리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그리고 결말에 와서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통해 주인공을 계도시키려는 참회와 회고의 순간들은 <올드 보이> 가, 마지막으로 범인과 주인공의 내면을 추적하면서 1:1 대결구도로 각축전을 벌이는 이야기는 <추격자> 가 떠오른다. 이처럼 김형준 감독의 <용서는 없다> 는 지금까지 만들어졌던 한국형 스릴러 영화들의 흥행요소들을 한데 모아 만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잔혹함 역시 오프닝에 등장하는 토막 난 시체와 함께 여성 희생자들의 참혹한 모습들을 노골적으로 나타낸 부분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검 장면등은 기존의 영화들에서 보여준 것 이상의 잔혹함을 보여주고 있어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특히 스릴러=반전 이라는 트렌드에 부합이라도 하듯, 마지막 반전을 통해 전혀 다른 전후 상황들로 관객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영화자체의 개성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용서는 없다> 는 기존의 한국형 스릴러 영화들이 보여줬던 공식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며 이야기 역시 개성 없는 전개와 구조로 이전 영화들과의 비교를 피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용서는 없다> 의 이야기는 이성호가 민서영 앞에서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건의 범인이 초반부터 밝혀지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범인의 범행동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여기에 얽혀있는 숨은 사연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강민호와 이성호라는 두 남자를 묶고 있는 거대한 운명의 끈을 발견하게 된다. 관객은 조금씩 드러나는 사건의 면모를 통해 강한 긴장감을 느껴야 하는데, 영화는 이러한 관객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사건의 주범이자 오랫동안 자신의 숙원이기도 한 복수를 위해 사건을 계획한 이성호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이야기의 개연성은 너무나도 엉성하고 작위적이며, 강민호 역시 이성호의 계략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단순히 그의 수행자로서의 역할로만 머무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감정이입을 하기엔 지나치게 평면적인 이야기에 그치고 있다. <용서는 없다> 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장르적인 장치와 이야기들을 후반부 영화의 클라이막스이기도 한 반전을 위해 할애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사건의 단서들과 추리과정은 마지막 반전을 위한 포석들로써 영화의 의도가 지나치게 쉽게 눈에 띄는 단점으로 나타난다. 반전까지 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단선적으로 그려져 너무나도 아귀가 딱 들어맞는 반전은 그 충격적인 결말에 비해 단순히 낱말 맞추기식의 재미에 지나지 않는다.
<용서는 없다> 에서 등장하는 사건의 추리과정 역시 스릴러 영화 치곤 그 과정이 너무나도 엉성하며 기존의 스릴러 영화에서 보여줬던 방식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영화 초반 맥거핀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4대강 사업에 따른 새 만금 간척사업이 잠시나마 등장하는데 이 부분을 제외하곤) 독창성은 사라지고 영화의 기본적인 얼개마저 조잡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이야기의 전개가 산만하고 진부하다. <용서는 없다> 에서 등장하는 여성 희생자들의 설정 또한 불편하다. 이성호가 범행을 저지르게 한 결정적인 주범들은 제쳐두고 그 주변인들만 살해하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 이성호가 내세우는 복수의 동기부여가 불확실하게 그려지는 모순과 함께 설득력마저 잃게 하는 논리적 맹점을 드러내고 만다. 차라리 <세븐 데이즈> 와 <오로라 공주> 처럼 복수의 표적을 주변인은 물론 중심인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했으면 좀 더 극적인 전개와 결말을 낳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특히 모든 진실이 밝혀지면서 강민호가 이성호의 계략에 넘어가 증거조작을 하는 장면과 오열하는 강민호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시퀀스는 영화가 희생자들의 목숨을 볼모로 관객들로부터 이성호의 범행에 동정과 연민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여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영화의 구심점이기도 한 설경구, 류승범 두 배우는 초반까지만 해도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호흡이 제대로 맞지 않으면서 어색한 모습을 연출했다. 특히 설경구는 그 동안 자신이 맡아온 캐릭터 속에서 초지일관하는 모습을 이번 영화에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기존의 캐릭터들과 중첩되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민서영 역을 맡은 한혜진은 강민호, 이성호라는 두 남자의 틈새에서 사건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한 채 주변만 서성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성지루나 남경읍과 같은 다른 조연들과 마찬가지로 때때로 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되었다.
<용서는 없다> 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했던 신인 감독의 과시욕과 함께 엉성하고 조악한 이야기가 영화 속 반전이 주는 효과에 못 미치면서 실망스런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결국 전체적으로 마지막 반전을 위한 무리한 설정과 부족한 개연성이 자충수를 두는 꼴이 되면서 스릴러 영화는 반전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용서는 없다> 을 통해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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