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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자여, 그대 이름은 여배우 여배우들
jimmani 2009-12-04 오전 2:34:17 1713   [0]

 

우스갯소리로 사람이 하는 걱정 중 가장 쓸데없는 걱정 중에 하나로 '연예인 걱정'을 이야기한다. 때때로 연예인들이 방송을 통해 힘든 개인사나 고민들을 털어놓는 모습을 볼 때 '저들도 참 고생이 많구나'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래도 저들은 벌어놓은 게 저만큼 있으니까 저런 스트레스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얼마든지 날려버릴 수 있을 거 아냐'하고 그 걱정을 지워버리기 일쑤다. 그만큼 우리는 연예인이라는 존재들에 대해 일정 부분 환상을 갖고 있는 만큼, 일정 부분 가혹한 대우도 한다. 우리가 보기에 언제나 자신을 관리하고 가장 완벽한 상태로 대중 앞에 서는 그들이 보이는 인간적인 약점들은 때로 인간적 공감을 자아내기보다, 그래봤자 뭐가 힘들다고 저렇게 약점을 드러내나 하는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어쩔 수 있겠나. 연예인도 직업이고 그 일을 하는 그들도 우리같은 사람인데. 그 중에서도 '여배우'라는 포지션은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늘 유교적 사고관이 사라진지 오래라지만 여전히 남자를 여자보다 관대하게 대접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자'와 '배우(또는 연예인)'라는 불리한 두 위치를 동시에 점하고 있는 그들은 우리가 보기에 매우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만큼이나, 외롭고 고될지도 모른다. 영화 <여배우들>은 여섯 명의 쟁쟁한 여배우들을 불러모아 실명까지 써가면서 여배우의 일상과 행복과 굴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분명 이재용 감독이라는 극영화 감독이 만든 극영화이나, 실제 상황과 배우들의 실제 성격을 일정 부분 반영한 영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관객들이 여배우들의 사연에 점점 더 현실적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2008년 12월 24일, 패션지 '보그' 창간특집호 표지 촬영을 위해 6명의 정상급 한국 여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최연장자이지만 마음만은 연장자이고 싶지 않은 윤여정, 나이가 들어도 여자로서의 정체성은 잃고 싶지 않은 이미숙, 본인이 너무나 털털해서 오히려 내숭떠는 후배는 비호감인 고현정, 한류스타로서의 조심성이 몸에 배어버린 최지우, 모델 출신으로서 화보 촬영이 마냥 즐거운 김민희, 한참 후배인 막내 배우로서의 부담감과 소외감을 느끼는 김옥빈. 각자 개성이 너무나 뚜렷한 이 여배우들을 놓고 보그 스탭들은 최대한 원활한 진행을 하려 하지만, 상황이 점점 난감하게 흘러간다. 화보 촬영에 쓰여야 할 중요한 소품인 보석이 일본으로부터 공수해 오는 과정에서 도착이 늦어지는 바람에 배우들이 기약없이 기다리게 생겼고, 설상가상으로 서로 무언의 견제를 이어가던 배우들 사이에서 갈등의 불씨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언제 또 한 자리에 모일지 장담할 수 없는 이 기센 여배우들의 화보 촬영은 과연 무사히 끝을 맺을 수 있을까.

 

 

<여배우들>을 만든 이재용 감독은 여느 불륜드라마처럼 보였지만 실은 40대 여인의 뜨거운 정서를 치밀하게 담았던 <정사>에서부터 출발해 매 작품마다 색다른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다세포 소녀>는 너무 색달랐던 나머지 대다수 관객들에게 비호감 이미지가 되어버렸고, 나이 어린 관객들에게 이재용 감독은 <정사>, <스캔들>의 감독이 아닌 <다세포 소녀>의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말았다.) 그의 새로운 시도는 <여배우들>에서 한층 눈에 띄는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그것은 바로 배우들에게 별다른 역할의 가면을 씌우지 않는 것이다. 배우들은 자신의 이름을 영화 속에서 그대로 사용하며,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 또한 전혀 다른 캐릭터로 가장한 것이 아니라 본연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한 자연의 캐릭터다. 물론 영화 속 캐릭터가 100% 본인들의 캐릭터라 할 수는 없지만, 일정 부분 실제 캐릭터가 반영되었다고는 볼 수 있다. (이러한 적극적 반영 때문에 배우들은 크레딧에서 '공동각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배우들은 캐릭터를 연기한다기보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상당 부분 섞어서 그저 보여줄 뿐이고, 카메라는 이를 보기 좋게 꾸며내기보다 핸드헬드로 솔직하게 담아낸다. 이 여섯 배우들의 모습은 각각의 네임 밸류는 화려하나, 정작 우리가 근래 나온 한국영화에서 만난 가장 부담없는 모습인 셈이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각 배우들의 인터뷰를 짤막하게 담으면서 이 영화가 마치 다큐멘터리인 것인 양 한다. 배우들의 화보 촬영을 돕는 관계자들도 스타일리스트로 유명한 정윤기 등 실제 인물들이 등장해 현장감을 더한다. 이 뿐 아니라 실제로 영화 속에서 진행한 화보가 이미 대중에 공개되기도 했고, 2008년 12월이라는 영화 속 시점에 맞춰 각 배우들은 각자의 근황을 당시 실제 근황과 딱 들어맞는 싱크로율로 대사 속에서 드러낸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고현정, <스타의 연인>에 출연한 최지우, <뜨거운 것이 좋아> 이후 한참 쉬고 있는 김민희, <박쥐> 촬영을 끝낸 김옥빈 등)  이혼 등 그녀들을 스쳐간 굵직한 사건을 직접 언급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님을 알고 있다. 이 영화는 사건보다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영화고, 영화 전반을 채우는 여섯 여배우들의 캐릭터는 워낙에 뚜렷해서 이것이 100% 그녀들의 실제 성격이고 100% 실제 상황이라면 그렇지 않아도 유명인사인 그녀들이 감수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중간중간에 나오는 대사들은 이들이 본인의 캐릭터를 일정 부분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도 동시에 줘서(일례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백살까지 늙어도 여자로서 늙고 싶다'는 이미숙의 대사는 그녀가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했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관객들은 어느 순간 저게 배우들의 진짜 성격인지 아니면 가공된 것인지 애매한 입장에 서게 된다. 배우들이 출연하고 극영화 감독이 만든 극영화인데 보는 관객들은 이게 영화인지 실제 상황인지 별안간 헷갈리게 되는 것, 이것이 <여배우들>이 선사하는 독특한 체험이다.

 

이재용 감독이 불러모은 이 여섯 명의 배우들은 물론 그와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출연한 듯한 배우들도 적지 않지만(<정사>, <스캔들>의 이미숙, <순애보>의 김민희, <다세포 소녀>의 김옥빈 등) 각자 나름의 대표성을 띠고 있다. 윤여정은 젊었을 적에는 장희빈 역할도 했지만 어느 순간 누구의 엄마 역할로 밀려나버린 중견 여배우의 모습, 이미숙은 여전히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이제 나이 들어가는 두려움에 슬슬 휩싸이는 중견 여배우의 모습, 고현정은 본인 성격이 너무 털털해서 내숭떠는 후배들이 영 보기에 좋지 않은 솔직한 여배우의 모습, 최지우는 한류스타라는 중요한 위치에 선 입장으로서 주변으로부터 좋지 않은 시선을 받더라도 자기 관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스타 여배우의 모습, 김민희는 패션모델 출신으로서 화보 촬영이 마냥 즐겁고 기싸움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보헤미안 여배우의 모습, 김옥빈은 이제 갓 영화계에 발을 들여서 적응하기도 쉽지 않고 선배들의 이야기들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막내 배우의 모습을 대표한다. <여배우들>은 이들을 통해 폭넓은 연령대, 폭넓은 캐릭터를 지닌 여배우들이 만나고 부딪치고 동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백하고 유쾌하게 그린다. 배우들이 얽히는 순간순간을 담아내는 카메라는 결코 꾸밈이 없지만, 자신들의 사고방식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녀들의 태도 자체가 영화에 나름의 미적 감각을 부여한다.

 

 

영화를 편의상 전후반으로 나눈다면, 전반은 여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점점 드러내면서 갈등을 빚는 과정을 그리는 코미디다. 자신도 한때는 젊은 미녀배우였는데 이제는 예전만큼 극진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게 못내 서러운 윤여정, 평소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수다를 즐겨하는 동네 아줌마 이미지와 얼추 맞아떨어지는 이미숙, 아무래도 모델 출신이라 패션 얘기가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김민희, 막내로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 열심히 해보려 하지만 맘처럼 되지 않는 김옥빈 등 선이 분명한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당황스럽고 유쾌한 순간들이 적잖은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관리에 별로 관심없는 고현정과 관리에 매우 관심많은 최지우의 충돌은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갈등으로서 한 자리에 모이면 주변 사람들이 더 불안함에 떨 정도로 만만치 않은 여배우들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 하다. 이처럼 여배우들의 뚜렷한 성격을 드러내는 데 치중하는 전반부의 코믹스러운 전개는 마치 우리가 갖고 있는 여배우들에 대한 이미지의 틀을 인정하는 듯 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거봐, 내가 생각한 대로네'하는 반응을 이끌어내려는 듯 하다. 이 부분에서 관객은 평소에 공공연히 상상해왔던 배우들의 이미지가 실제로 스크린에서 재현되고 그것들이 부딪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예측을 벗어나지 않고 적중해 들어가는 여배우들의 캐릭터 양상에 적잖은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고, 늦어지는 촬영에 조급해 하던 여배우들이 점점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의 낭만적인 분위기에 취해 여유로워지며 파티를 열기로 할 때 쯤이면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게 전환된다. 알코올이 들어가면서 여배우들은 적잖이 견제했던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처 털어놓지 못했던 속내를 드러낸다. 같은 처지에 있는 같은 여배우들이기에 가능한 고백을 말이다. 오히려 언론을 통해서는 이야기하기를 자제했던 개인적 고민들, 이혼 문제나 여배우로서 겪어야 했던 수모를 털어놓으면서 그녀들은 곧 나이를 초월하고 성격을 초월해 그녀들 모두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여배우로서의 아픔과 굴레를 발견한다.

 

이혼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마저도 '공인'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평생 가슴 한 구석에 남는 주홍글씨처럼 만들어버리는 세상의 무정함을 이야기한다. 남들은 무서운 결벽증이라면서 흘겨보지만 대중의 이상형의 위치에 선 이상 남의 시선을 결코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직업의 특성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익숙하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여배우에게로 스포트라이트가 넘어가면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질투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로 올 스포트라이트를 잃었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허전함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여배우들끼리 모여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갖고 싶어도 그것이 여의치 않음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하소연을 하면 고깝게 볼 대중의 시선이 두려워서 이렇게 힘든 고민이 있어도 그걸 털어놓지 못하고 결국은 안으로 삭혀야 하는 아픔을 이야기한다. 어디까지나 대중의 '이상형'이기에 그들의 이상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결국 외로워지고 마는 존재임을 이야기한다. 같은 여배우로서 서로의 고통을 충분히 알기에, 그녀들은 이러한 고백들을 주고받으면서 '똑같이 외로운 사람들'로서의 동질감을 느낀다.

 

 

여배우들의 이러한 고백들은 앞서 보여줬던 각 인물들의 독특한 성격과 충돌에 일말의 개연성을 부여한다. 그녀들의 그러한 성격이 참 희한하고 독특하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여배우라는 독보적이면서도 참 모진 지위가 만들어낸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동시에 보기에 마냥 우스꽝스러워만 보였던 그녀들의 캐릭터 뒤에 숨은 애환을, 이를 대면할 대중들의 태도까지 짐작할 만큼 설득력 있게 펼쳐내면서 여배우라는 직업이 보기만큼 이상적이고 만만한 직업이 결코 아님을 이야기한다. 여자로서의 욕망과 본능, 배우로서의 책임과 부담이 함께 작용해 만들어내는 '여배우'라는 포지션은 결국 '여자'만으로도, '배우'만으로도 만들어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성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누군가 매스컴을 타서 조금이라도 유명세를 얻으면 이에 질세라 그의 안티세력이 생기는 요즘 세상에서, 단순히 '우리도 사람입니다'라는 투로 호소하지 않고 '여배우'라는 자리만이 줄 수 있는 아픔과 굴레를 담담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여배우들>은 눈여겨 볼 만한 영화다. 앞서 얘기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 속에서는 관객의 마음을 은근히 짠하게 할 대사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또 하나의 대사로 '대중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는 만큼 돌을 던진다'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같은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양의 사랑을 팬들로부터 받겠지만, 그것에 비례하는 양만큼의 질시도 받는 사람들이 여배우들이다.(이미지 관리 면에서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는 점에서 여배우는 다른 연예인들보다 더 불리한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도 끄떡 없으려면, 그만큼 얼마나 많이 자신을 단련해야 할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아픔을 없었던 척 날려버려야 할지. 새삼 그런 능력을 키워야 하는 그녀들의 초상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실제 여배우들이 등장해 여배우들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여배우들>은, 어쩌면 우리가 직접 겪기 전까지는 죽었다깨도 모를 그들의 속내를 가장 가까이 다가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총 1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1-15 20:51
snc1228y
감사   
2009-12-07 16:06
sarang258
잘 읽었습니다.   
2009-12-05 00:33
hooper
기대되요   
2009-12-04 17:20
ekduds92
잘읽었어요~   
2009-12-04 16:00
podosodaz
잘읽었습니다   
2009-12-04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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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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