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빛나면 어둠은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면 태양도 자취를 감춥니다. 그리고 태양이 높이 뜨면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14년전에 발생한 살인사건의 용의자 딸과 피살자 아들의 사랑을 그린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백야행>에는 빛과 어둠의 이루어질 수 없는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와 그들의 사랑 뒤에 감춰진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형사의 사투가 적절히 섞인 작품입니다. 화려하고 밝은 빛의 공간은 아름다움을 나타내지만 그 뒤에 숨겨진 상처는 차라리 어둠이고 싶게 아파옵니다. 그 빛의 아픔을 감싸주며 스스로 어둠이기를 자처한 또 하나의 공간은 애절한 그리움의 공간입니다. 빛이 와주기를 바라며 빛에 따라 그림자를 만들어주지만 길고 긴 정처없는 기다림을 빛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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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은 이렇게 두가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공간을 대비시키는 설정은 1985년 작품 <레이디 호크>에서도 볼 수 있는 구도입니다. 밤이면 남자(룻거하우어)는 늑대로 변하고 낮이면 여자 (미셸파이퍼)가 매로 변해 절대 인간의 모습으로는 만날 수 법의 형벌을 받은 비운의 사랑을 그린 환타지 작품으로 <백야행>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공간을 이용하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설정을 추가합니다.
바로 이들의 사랑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살인사건'이지요.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하여 벌어진 우발적 14년전의 살인사건과 이를 파헤치는 형사를 등장시키고 그 형사에게도 그때의 사건은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만들며 이들과의 끊을 수 없는 악연은 결말까지 중요한 구도로 자리잡습니다. 상황만으로 뻔한 범행의 결과가 나오지만 형사의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자신의 인생까지도 어둠으로 몰아버린 또 한명의 비운의 인물인 한형사는 <백야행>의 빛과 어둠의 중간에서 서로의 영역을 깨트리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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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탄탄한 스토리가 마치 우리 배우들을 염두에 쓴 작품인 듯 캐스팅 또한 최적의 배우들이 열연하여 소설 못지않은 긴장감과 놀라운 충격을 담아 내는 밑바탕엔 손예진과 고수의 우수에찬 감정 연기를 든든히 받쳐 주는 또 다른 주연인 한석규와 올드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 준 차화연(김요한의 엄마)의 안정감 넘치는 연기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두분 모두 한시대를 풍미한 대 스타이지만 화려함 뒤 인생의 어려움을 맛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연기를 선보이며 이번 작품의 가치를 한층 더 높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언뜻 짐작한 내용과 전혀 다른 사건의 전말은 충격에 소름이 돋지만 이 사건의 핵심이 나오기까지 이야기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고 14년전과 현재를 오가는 시간 구성은 혼란스럽습니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뒤 마무리까지의 과정도 빠른 흐름을 갖지 못해 아쉬움을 갖게 하지요. 일부 배역들의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가 오히려 올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역시 원작에 힘입은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는 이런 단점을 충분히 만회시키며 관객의 시선을 유지시킵니다. 가령 고수가 연기하는 18금의 베드신은 자칫 외설로 흐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요한의 슬픔을 분출하는 중요한 장면으로 묘사되어 전혀 거부감없이 흐르는 듯 작품속에 녹아 들고 있습니다.
![](http://imgmovie.naver.com/mdi/mi/0518/51834_S40_163713.jpg)
공소시효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그 사랑을 지키려는 어둠의 사랑은 슬픈 여운을 남깁니다. 그 사랑을 믿고 지키려 14년을 기다렸고 그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태잉이 높이 뜨면 그림자는 사라진다'는 말을 하면서의 김요한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이런 아픔을 만든 짐승만도 못한 남자와 그녀의 아픔도 사랑으로 감싸 준 사랑하고 싶은 남자가 극한의 대조가 묘한 슬픈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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