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다... ★★☆
영화는 원작 소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원작의 주인공 이름인 유키호를 유미호(손예진)로 살짝 변주한 것은 어쩌면 원작에 대한 존중의 의미이리라. 다만 14년 전 살인사건에 대한 한 형사(한석규)의 집착의 이유를 아들을 잃은 사고로 제시한 것 등은 소설엔 없는 것을 새롭게 창조한 부분이며, 반면 유키호의 악행을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과 달리 영화엔 유미호(손예진)와 요한(고수)의 14년 동안의 행적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 스릴러 멜로드라마인 <백야행>엔 반전이 없다. 처음부터 누가 범인인지 화끈하게(!) 공개하며 시작한다. 스릴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영화라고 한다. 최근 이동진 평론가의 글에 스릴러를 세 가지로 구분해 설명해 놓은 부분을 인용하면, Who - ‘누가’에 초점이 맞춰진 스릴러 영화는 ‘반전’이, How - ‘어떻게’에 초점이 맞춰진 스릴러 영화는 ‘구성’이, Why - ‘왜’에 초점이 맞춰진 스릴러 영화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니깐 영화 <백야행>은 ‘왜’에 초점이 맞춰진 스릴러 영화로서 ‘왜’ 유미호와 요한이 이토록 끔찍한 범죄들을 계속 저질러야 하는지 ‘감정’으로서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과연 <백야행>은 ‘감정’의 전달과 공감에 성공하고 있는가? 난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둘의 살아 온 경로가 전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원인과 결과로서만 제시될 뿐이다. 그저 둘은 어린나이부터 목숨을 걸 정도로 사랑했고, 둘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어둠을 참고 견뎌내며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이는 원작의 문제일 수도 있다. 예컨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맹목적으로 한 여인을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어 내는 주인공의 모습은 <백야행>과 겹친다) 유미호가 요한을 설득하는 논리는 ‘15년’이라는 공소시효를 넘겨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 영화 보는 내내 계속 꺼림칙했던 것은 ‘15년’이 유미호와 요한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살아온 길을 그리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유미호는 15년 전 자신의 손으로 저지른 살인사건 이후로는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깐 자신과 요한의 선만 연결되지 않는다면 공소시효로 인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반면, 실제 계속 살인을 저질러온 요한은 그러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요한은 이제 곧 15년이 지나고 그러면 둘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유미호의 설득에 계속 손에 피를 묻힌다. 도대체 왜? 사랑에 눈이 멀어서? 대단히 프로페셔널한 살인기술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요한이 영화 속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증거를 뿌리고 다니는 건 그냥 논외로 하자.
만약 요한이 그저 조용히 어둠 속에서 15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며 살아오다가 (영화를 보면 그다지 어두운 인생을 산 것 같지도 않다) 협박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저질렀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 요한에게 좌절이라든가 고뇌의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깐 영화에서 그려지지 않은 14년 동안 그는 무수히 많은 범죄와 살인을 저질렀다고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식으로 해석한다 해도 공소시효와 요한은 전혀 어울리지 않으며, 그건 단지 유미호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유미호의 캐릭터에서 오는 부조화의 문제다. 솔직히 유미호가 어떤 존재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선뜻 말하기 곤란하다. 그녀는 진정 악녀인가? 아니면 사랑을 갈구하는 애틋한 존재인가?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모습이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해도 영화에서의 유미호는 단지 편의적으로 상황에 맞춰 캐릭터가 변주되는 느낌이다. 한 형사가 찾아온 뒤 요한의 거처에 찾아가 문을 사이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얘기를 하는 유미호와 결혼의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어린 소녀의 강간을 지시하는 그녀 사이엔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영화의 장르를 스릴러로 할 것인지, 아니면 멜로드라마로 할 것인지의 고민에서 어중간한 절충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릴러라면 좀 더 냉혹하고 잔인한 캐릭터가 맞는다고 보이며, 멜로드라마라면 좀 더 인간적인 캐릭터가 맞는다고 보인다.
한 형사도 애매하다. 사고 조사 때문에 아들이 죽었고, 나중에 요한이 유력한 용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는 요한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폐인처럼 지내다 뒤늦게 집착에 가깝게 수사를 벌인다. 그가 이시영(이민정)에게 한 말을 돌이켜보면, 사고 현장에서 발견한 테이프에 요한과 관련한 내용이 녹음되어 있음을 2년(정확한지는 애매하지만) 후에 알게 되었지만 너무 늦었다며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이 죽었는데 고작 몇 년이 지났다고 포기할 수 있을까? 아들과 비슷한 또래가 범인이라서? 아들을 잃은 부정으로서 모정이 이해가 돼서?
마지막으로 감독의 연출도 좀 미흡하다고 느껴지지만,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 이하다. 이제 한석규의 연기는 안 보고서도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형사역이라면 영화에 상관없이 대동소이하다. 손예진이나 고수는 염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한 수준이라고는 보인다. 이민정은 TV 드라마에선 그럭저럭 한다고 봤는데 캐릭터가 맞지 않아서인지 정말 수준 이하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연기가 미흡하다고 느낀 건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유미호와 요한의 아역 연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역들의 연기 미흡은 주인공들의 감정이나 정서에 공감하기 어렵게 하는 장애물로서 기능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구석에 처박아 둘 정도로 허접한 것만은 아니다. 영화 초반부 유미호의 정사 장면과 요한의 살인 장면을 교차 편집한 화면이라든가 유미호를 하얀색으로 요한을 검은색으로 색채 대비시키는 장면 등은 대단히 감각적이고 매혹적이다. 14년 동안의 경과를 모조리 빼먹긴 했지만 시간이라는 영화의 한계를 고려해볼 때 각색이 형편없게 되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물론 좀 더 스피디하게 편집해 시간을 줄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고수에게 일종의 가능성을 보게 된 것도 행운이랄 수 있다.(대사가 극도로 자제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고수와 감정의 끈이 연결됐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영화에서 내가 유일하게 극중 인물이 불쌍해 보였던 것은 요한이 다음과 같은 대사를 칠 때였다. “태양이 가장 높이 뜨면 그림자는 사라지지”
※ 사실 영화 <백야행>을 그다지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왜냐면 손예진과 고수 때문이었다. 어떤 자리에선가 ‘난 개인적으로 손예진이 별로’라고 했더니 다들 이유를 궁금해 한다. 손예진을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 있냐며, 일부는 거의 항의 수준으로 물어본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선가 손예진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미소가 가식적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지, 예쁘지 않다거나(설마) 연기력이 심하게 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물론, 일부 드라마와 영화에서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손예진의 연기력은 기복이 심해 안정적이지 않다) 고수는 근본적으로 연기력에 대한 불신이 있다. 아무튼 내가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원작 소설을 구매할 때 자동적으로 응모된 이벤트에 당첨이 돼서 공짜표 2매를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후 둘의 이미지에 변화가 생겼을까? 앞서 말했듯이 고수에 대해선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손예진의 경우는 여전하지만, 평소 손예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그나마 영화를 좀 더 재밌게 관람할 수 있었다. 나로선 손예진의 가식적 내지는 이중적이라는 이미지와 영화 속 유미호의 이미지가 잘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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