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은 범죄는 언제나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가정 아래서 전개된다. 여기서 사람이란 일말의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어떤 감정이라도 갖게 마련인 일반적인 인격체를 의미한다. 늘 감정에 휩쓸리는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는 겉으로 보이는 참혹함을 넘어서는 내부의 깊은 사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언제나 그러한 범죄의 내부를 파고든다. 이러한 그의 추리소설 전개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추리라는 외적 요소에 몰입하게 한 뒤, 서서히 범죄로 인해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들의 나약하고 뒤틀린 심리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것은 냉정한 두뇌 플레이를 가장 우선시하는 서구의 스릴러와는 또 다른 맛이 있는,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동양적 스릴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그의 소설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고, 아직도 그의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다.
올 봄에 우리는 일본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을 자국인 일본에서 만든 <용의자 X의 헌신>을 만나보았고, 이번에 우리는 일본 작가의 시선이 한국 영화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는지를 <백야행 : 어둠 속을 걷다>(이하 <백야행>)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이야기를 소설로 읽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은 의외로 상당히 다르고, 더구나 다른 나라의 소설을 우리 나라의 영화로 만나는 것 역시 어느 정도 다름을 각오해야 한다. 여러모로 <백야행>은 관객들이 팔짱 끼고 두고봐야 할 것 같은 구석이 있었다. 일본의 매우 유명한 원작을 한국 영화로 옮긴다는 것, 드라마 분량이 나올 정도로 긴 원작의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로 옮긴다는 것, 일본적 감성이 충만한 원작을 한국적 이야기로 옮긴다는 것 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백야행>은 썩 나쁘진 않으나 얼마든지 더 잘 만들 수 있었던 영화다.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재두라는 남자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수사팀은 이 사건이 14년 전에 일어났던 어느 살인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발견한다. 수사팀은 14년 전 이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했던 한동수 형사(한석규)를 찾아간다. 사건의 내막은 대략 이렇다. 14년 전 인천의 어느 폐선박에서 전당포 주인 김시후가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유력한 용의자로 그의 내연녀였던 양미숙이 지목된다. 그러나 얼마 후 양미숙이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강재두가 당시 김시후의 집안과 연관되어 있었던 점, 김시후의 아들인 김요한(고수)이 양미숙의 딸과 절친했던 점 등으로 미루어 김요한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더불어 양미숙의 딸을 찾아나선다. 한편, 재벌총수 승조(박성웅)와의 결혼을 앞둔 미모의 여인 유미호(손예진)을 둘러싸고 승조의 비서실장인 시영(이민정)은 조심스럽게 뒷조사를 나선다. 시영은 미호가 겉으론 완벽해 보이나 속에 숨겨둔 비밀이 있음을 직감한다. 그러던 중 요한을 추적하던 동수와 미호를 추적하던 시영이 우연히 마주치고, 둘은 서로가 쫓고 있던 사건이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살인과 실종, 14년 전에 벌어졌던 살인, 그리고 그들이 뒤쫓고 있는 요한과 미호. 그 뒤에 감춰진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이 영화에서 배우들은 단순히 연기자라기보다 고유의 분위기를 지닌 각각의 상징으로서 더욱 두드러진다. 한석규가 맡은 한동수 형사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안고 이제는 노쇠한 독기와 애처로움만이 남은 남자의 모습을, 손예진이 맡은 유미호는 겉오른 한없이 투명하고 우아해보이지만 그 뒤엔 치명적인 비밀을 숨기고 있는 이중적 팜므파탈의 모습을, 고수는 사랑을 위해 도덕적 가치마저도 희생해 버린 나머지 어둠과 한 몸이 되어 버린 듯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 배우의 연기는 특별히 누구 하나가 눈에 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각자가 지닌 상징적인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구현해낸다. 미호가 지닌 백색의 이미지, 요한이 지닌 흑색의 이미지, 그리고 동수가 지닌 회색 내지는 갈색의 이미지는 영화 내내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영화의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이는 배우들의 절제되어 있는 듯 결단력 있는 연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은근히 일탈적인 캐릭터를 자주 추구하던 손예진은 이번 영화에서 오랜만에 이미지만으로도 빛나는 캐릭터를 만나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비주얼로 남성 관객들의 마음을 자비심 없이 마구 훔친다. 캐릭터가 아무래도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최대한 숨겨야 하는 터라 그런데, 하지만 중간중간에 참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감정을 표현할 때(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우는 장면 등)에는 그런 와중에도 두드러지는 연기를 펼친다. 고수는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 경력에서 가장 뚜렷한 개성을 지닌 역할을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항상 조용하고 준수하지만 어딘가 어둠을 품고 있는 듯한, 그래서 어느 한 쪽으로 확실히 치고 나가지 못하는 다소 밋밋한 캐릭터를 보여줬던(그의 연기가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의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서 항상 상대적으로 밋밋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어둠의 극한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의문투성이의 남자 역할을 만족스럽게 소화했다.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중생활을 반복하면서 그의 마음은 셀 수 없는 번민으로 가득 차 있다. 고수의 연기는 터질 곳에서 확실히 터지는 연기는 아니지만, 요한이 가진 캐릭터와 놀랄 만큼의 싱크로율을 절제된 연기로 보여주고 있다. 한석규의 연기 역시 충분히 만족스럽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엔 어딘가 광기가 서린 형사의 모습을 보여줄 줄 알았으나, 막상 그가 보여준 형사의 모습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더 독해지기보다는 현실에 휩쓸려 지쳐버린, 뒷모습이 안쓰러운 인간의 모습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사건에 매달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로 한숨 짓는 캐릭터가 겹쳐지면서 요한과 미호와 더불어 설득력 있는 관계를 형성하였다.
범죄자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들의 범죄와 속사정을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으려면 확실한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일말의 여지를 가질 만한 공감대 말이다. 확실한 공감을 얻지 못하면 그 캐릭터는 순식간에 민폐 캐릭터로 전락한다. 이러한 공감대 형성을 위해 <백야행>이 들고 나선 키워드는 '목숨을 바친 14년의 사랑'이다. 그리고 영화는 '살인사건'과 '14년의 사랑'이라는 상반된 분위기의 두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잇고자, 아이러니를 통해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어린 시절 만난 사랑과 어느날 그들의 운명을 결정 지은 결정적 사건, 그리고 그로 인해 이어져야 했던 14년 간의 아슬아슬한 행적을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펼쳐 보인다. 그런데 하나의 사랑으로 연결된 두 사람인데, 한 명은 찬란한 빛 아래서 화려한 삶을 살아가고, 한 명은 어둠을 벗어나지 못한 채 비밀스러운 삶을 이어간다.
한 명이 다른 사람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어딘가에서 살인을 하고 있고, 한 명이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의도적으로 그가 꾸민 사고의 주인공이 된다. 영화는 시작부터 두 사람의 처지를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이들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뿐만 아니라 활동 반경이나 성격에 있어서도 여러 방식으로 대조를 이루게 한다. 재벌총수를 약혼자로 둔 상황에서 금전적으로 남부럽지 않은 환경 속에서 언제나 밝고 화사한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는 미호와 자신의 감정을 한번도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건조한 표정으로 일관한 채 어두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요한이 대비된다. 이들은 의상 또한 하얀 빛깔의 고급스러운 의상과 검은 빛깔의 거친 느낌의 의상으로 대립을 이루면서 여러 부분에서 분명히 다른 처지에 있고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는 이렇게 정반대의 남녀가 사랑으로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함과 동시에 14년 전 두 사람의 삶을 뒤흔들었던 살인사건까지 배경삼아서 여기서 어떻게 두 사람의 사랑이 형성될 수 있는가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호기심을 유발했으면 그 다음은 공감의 단계다. 잔혹하게 이어지고 있는 살인사건의 범인과 그 반대편에서 전혀 상관없는 모습으로 우아한 자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인. 이들의 사랑이 이러한 아이러니를 충분히 끌어안으려면 그만큼 강력한 사연이 필요한데, 그 사연은 이제 추리영화적 분위기가 한풀 꺾이고 난 중후반 지점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천인공노할 살인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이 공개되면서, 영화는 아이러니로 점철된 스릴러에서 두 남녀가 빠진 비극적 운명의 소용돌이에 대한 멜로드라마로 방향을 바꾼다. 어린 시절 그들을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길로 내몬 사건은 사실 누가 봐도 끔찍한 것이었고, 그들을 가해자가 아닌 희생자로 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 14년간의 행적이다. 14년동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지만 여전히 둘의 사랑은 깊게 뿌리내리고 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여전히 어떤 것이라도 감수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을 공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공감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다. 나는 원작을 읽진 않았지만, 익히 알려진 분량이나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시간적 범위를 고려했을 때, 14년동안 그들의 사랑이 살인마저 감내할 정도로 큰 설득력을 꾸준히 유지하려면 겉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속은 애가 끊어질 듯 절절한 사랑의 기운이 느껴져야 한다. 그런데 영화는 이상하게도 그 사랑의 절절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감정을 지나치게 절제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 많은 시간을 두고도 두 사람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정말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책 세 권 분량의 이야기를 두 시간 반 이하의 영화 안에 담으려면 <해리 포터> 시리즈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적지 않은 고충을 필요로 하는데, <백야행>은 특히 인물들의 감정선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더 신중해져야 한다. 사실 영화 <백야행>은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영화만으로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비교적 효과적으로 각색하긴 했다. 하지만 그 효과라는 것이 인물들의 감정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데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두 인물의 감정이 극도로 절제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14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어져 온 사랑을 적당한 간격을 두고 충실히 보여줘야 했으나 한 편의 영화라는 형식의 한계상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러서는 인물들의 비극에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긴 하되, 그것이 14년동안의 감정이 켜켜이 쌓여온 결과 감정이 폭발한다기보다, 14년 전 이후의 세월을 몽땅 건너뛰고 현재로 넘어왔을 때에 더 잘 이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관객의 감정을 보다 북받쳐오르게 할 수 있는 근거를 영화는 다소 빈약하게 제시한 것이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일본의 원작을 한국적으로 각색하는 데 있어서 약간의 이질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일본이 우리와 같은 아시아권이긴 하지만 문화나 감성 면에 있어서 사뭇 다른 구석이 많다. 물론 일본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한국 사람도 충분히 감동을 받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것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전제를 깔고 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일본만의 독특한 감성, 매우 추상적이고 시적이고 분위기 있는 대사들, 때로는 도덕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데도 어느 순간 감정을 이입하게 만드는 묘한 감성이 일본의 영화와 소설이 갖고 있는 특징이다. <백야행>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원작을 바탕으로 했지만, 각색하는 데 있어서 이를 보다 확실히 '한국화'하는 데에 신경을 썼어야 한다고 본다. 철저히 한국적이라기보다 일본 원작의 다중적 정서에 기댄 각색이 주는 감동은 내면에 착 달라붙지 못하는, '공중에 붕 뜬 감동'이다. 그렇지 않아도 충격적인 사건들이 펼쳐지는데 그 가운데 현실 지향적이라기보다 다소 도식적으로 형성되는 캐릭터들, 일본 원작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왔는지 때로는 손발이 약간 오그라들게 만드는 문어체적 대사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보다 직접적인 감정 이입을 살짝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이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 요소이기도 하다. 아무리 해외의 원작에 우리나라의 대중이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한국 영화로 옮겨올 때에는 철저한 한국화에 신경을 써야 했음을 제작진이 간과했던 것 같다. 그래도 관객들은 어디까지나 이 영화를 '한국영화'로 알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리는 범죄의 세계는 국경을 초월해 다양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충분한 감성적 요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범죄소설의 특성상 일본 사회를 적잖이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범죄에 사회와 인간이 섞여 들 때 그것은 머리로 추리만 해서 될 게 아닌, 머리와 가슴을 함께 써야 할 복합적인 이야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어쩔 수 없이 <백야행>은 한국영화가 지닌 본연의 감성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영화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완벽하지 않은 결과물임에도 결말에서 어느 정도 뭉클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만약 보다 세심하고 현실적인 각색이 이루어졌다면 이보다 훨씬 더 큰 감동의 쓰나미를 느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지금의 <백야행>도 매력은 있지만, 훨씬 매력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었기에 더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