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모도바르는 남자임에도 여자, 사랑, 욕망에 관해 가장 잘 표현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특유의 눈이 저릴 정도로 뚜렷한 색감과 선 굵은 외모의 스페인 배우들이 보여주는 영상은 언제나 굵은 붓으로 그린 그림처럼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형식 속에서 알모도바르가 펼치는 이야기 또한 불같이 타오르는 남녀의 열정과 욕망, 그로 인해 빚어지는 충돌과 파국 등 매우 대담하고 망설임이 없다. 이렇게 내외적으로 자극적인 형식을 추구하다보니 한편으론 악동 취급을 받기도 하던 그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나쁜 교육>, <귀향> 등을 통해 자극성을 뛰어넘는 인간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내비치면서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사실 이전의 알모도바르 영화를 생각한다면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귀향>의 경우처럼 그의 영화를 보고 가슴이 뭉클해지리라곤 쉽게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의 작품들을 통해 깊은 여운의 드라마를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듯 보였던 알모도바르 감독이 이번에 내놓은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왠지 다시 그 전의 영화세계로 살짝 발을 내딛은 느낌을 준다. 불타오르는 남녀의 사랑을 근간으로, 그로부터 도덕적으로 쉽사리 판단하기 힘든 갖은 욕망과 감정들이 가지처럼 뻗어나간다. 어찌 보면 멜로드라마 같기도 한데, 다르게 보면 베일에 싸인 사건을 추적하는 추리영화같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영화와 감각에 대한 예술가적 시선이 깃든 드라마같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이들 모두에 해당된다고 할 만하다.
2008년의 마드리드. 한때 영화감독이었던 마테오 블랑코(루이스 호마르)는 사고로 실명한 뒤 '해리 케인'이라는 필명으로 작가 일을 한다. 소모적인 이성관계 속에서 방황하던 그는 어느 날 금융 부호 어네스토 마르텔(호세 루이스 고메즈)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14년 전 그에게 있었던 바람같은 사건을 떠올린다. 1994년의 마드리드. 영화감독이던 마테오에게 레나(페넬로페 크루즈)라는 젊은 여인이 찾아온다. 배우가 되고 싶다며 오디션을 보러 온 그녀는 어네스토의 정부이다. 마테오는 레나를 자신의 새 영화 <여인들과 가방>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한다. 어네스토로부터 금전적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그와의 관계는 허물 뿐이라 여겼던 레나는 마테오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한편 자신이 제작한다는 조건 아래 레나의 영화 출연을 허락한 어네스토는 영화촬영에 점점 더 신경쓰는 레나가 마음에 걸린 나머지, 아들인 어네스토(루벤 오칸디아노)로 하여금 촬영장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영화처럼 촬영하게 한다. 그렇게 레나를 색다른 방식으로 '감시'하던 어네스토는 결국 레나에게 다른 사랑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고 이내 질투에 사로잡힌다. 이렇게 엉켜가는 그들의 욕망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그들을 몰아간다.
일단 이 영화에서 절대 그냥 넘어 갈 수 없는 요소가 바로 페넬로페 크루즈다. 그녀는 스페인 영화계의 여신이었다가 할리우드로 갓 진출했을 때에는 이미지만 지나치게 소비된 나머지 실패하는 듯 싶었으나, 최근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할리우드에서까지 제대로 인정받으며(아카데미 수상) 이제는 정말 세계적인 여신으로 거듭났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육감적인 몸매, 순수함과 고혹적인 매력을 함께 지닌 그녀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에 어쩌면 가장 최적화된 캐릭터를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귀향> 등에서 이미 그것을 입증했고, <브로큰 임브레이스>를 통해 다시 한번 이들의 만남은 최상의 화학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의 주체라기보다는 두 남자의 욕망에 불을 지르는 하나의 아이콘적 존재가 되는 그녀는 예술가와 자본가가 서로 다른 열정을 불사르게 만들 수 밖에 없는 다면적 매력을 마음껏 펼쳐보인다. 지고지순함과 발랄함과 대담함을 겸비한 레나의 캐릭터는 페넬로페 크루즈의 거침없는 외모와 연기를 통해 확실하게 구체화된다. 물론 여기에 마테오 역의 루이스 호마르, 어네스토 역의 호세 루이스 고메즈, 마테오의 매니저인 주디트 역의 블랑카 포르틸로 등 중견배우들이 펼치는 절제된 듯 끓어오르는 연기가 깊이를 더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브로큰 임브레이스>의 이야기는 하나의 선 위에 놓기 힘들다. 보면 볼수록 여러 가지 층위에서 의미를 생각하게 되고, 영화도 그것을 원하는 듯 하다. 이 중에서 내가 굳이 꺼내고자 하는 이야기의 줄기는 애증과 욕망의 드라마다. 이 드라마가 매우 독창적인 방식을 통해 전개된다. 레나라는 젊은 여인을 두고 나이 지긋한 부호와 영화감독이 사랑에 빠진다. 어네스토가 자신이 지닌 금전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소유에 가까운 사랑이라면, 마테오는 외적 조건보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레나에게 달려드는 사랑이다. 이러한 삼각관계의 형성과 이것이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전개는 대단히 아침드라마스럽고 일일연속극다우며 주말드라마같다. 하지만 역시 알모도바르는 이렇게 대놓고 삼류드라마 같은 전개를 결코 여느 삼류드라마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촌스런 삼류드라마로 빠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는 방식의 독특함에 있다. 어설프게 미행을 붙인다거나,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짓는다거나, 돈으로 해결하는 것과 같은 뻔한 수법은 쓰지 않는다.
어네스토가 쓰는 방법은, 영화적 특성을 절묘하게 활용한 감시 체계이다. 레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아 집에서 영상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리를 켜놓을 경우 주변의 잡음까지 들려 시끄러운 나머지, 그는 음소거된 상태에서 영상을 보며 옆에 입모양을 읽어내는 전문가를 앉혀 영상 속 사람들의 말을 '엿듣는다'. 이것은 질투에 휩싸여 엿보기는 엿보되 그 감정이 미묘하게 왜곡되는 듯한 효과를 불러온다. 화면 속 인물들은 감정에 사로잡혀 대화하고 있는데, 이들의 대화를 전달하는 통역사의 말투는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극적인 감정이 대화에도 당연히 실려야 될 텐데 그렇지 못하고 무심하게 전달되면서 어네스토가 실제 느끼는 질투와 배신감은 생각보다 더 이상한 형태로 뒤틀리는 듯하다.
그런데 이미지와 기계적 대사로만 그들의 사랑을 인식하던 어네스토에게 레나의 이별 통보는 사뭇 충격적이다. 레나는 매우 정확한 타이밍에 어네스토가 그들의 애정행각을 지켜보고 있는 방에 들어와 영상 속 레나와 정확히 일치하는 순간 똑같은 대사로 어네스토에게 이별통보를 한다. 과거의 시각과 현재의 청각이 완벽하게 만나는 이 장면은 여느 삼류드라마에서는 꿈도 못 꿀 만큼 절묘하고 멋진 장면이다. 늘 엿보기만 하던 어네스토가 그들의 사랑을 정면에서 맞닥뜨리는 거의 유일한 순간인데, 그 순간 어네스토는 그 어느 때보다 끓어오르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까지나 통역사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였기에 마음 한 구석에서는 조금이라도 아닐 거라고 부정하고 싶었던 사랑이 당사자를 통해 직접 전달되는 상황이기에.
어네스토의 욕망이 떠나려는 사랑을 어떻게든 붙잡고자 하는 것이라면, 마테오의 욕망은 더 이상 두려워하고 싶지 않은 열정에 대한 열망이다. 실명하기 전까지 생의 마지막으로 앞뒤 잴 것 없이 불타올랐던 사랑을, 그는 눈이 멀어버린 상황에서 마음 속에 안타깝게 그린다. 어네스토가 소리 없는 이미지만을 통해 그들의 사랑을 알게 되는 반면, 마테오가 과거의 기억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는 매개체는 이미지가 아닌 기계가 밋밋하게 읽어주는 신문기사라는 것 또한 재미있는 대조다. 영화 제작에 샅샅이 관여하고 있는 어네스토의 눈을 피해 밀월여행을 떠난 마테오와 레나는 여행지에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 관람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커플은 서로 끌어안은 채로 화석이 되어버린 고대의 남녀를 지켜보며 자신들 또한 저렇게 될까 두려워 한다. 서로를 지그시 끌어안는 마테오와 레나 또한 이러한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앞뒤 보지 않고 타올랐던 사랑이기에 그들에겐 그 열정을 위협할 만한 요소가 너무 많다. 그 때문에 그들은 영화 속의 '부서진 포옹'을 지켜보며 두려움을 느끼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가장 뜨거웠던 사랑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비록 끝이 좋진 않더라도, 결국 이 사랑은 마테오가 만든 영화 속에서 넘치는 생기와 재기발랄함으로 반영되어 완성된다. 어네스토와 마테오 모두 자신들의 욕망을 영상을 통해 표출하고 완성시킨다는 점은 이 영화를 '영화에 관한 영화'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자본가인 어네스토가 아들을 시켜 만든 기록영화를 통해 레나를 사유물처럼 소유하려는 욕망을 펼쳐보인다면, 마테오는 레나와의 뜨거운 사랑을 영화라는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그들 사이의 비극으로 인해 실명하게 되면서 영화 감독 대신 작가로 한발짝 물러서는 것 또한 사랑의 비참한 결말이 그에게서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한꺼풀 빼앗아 갔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어네스토와 마테오 양쪽 중 긍정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마테오 쪽이다. 마테오는 14년 간 한 걸음 물러나 영화의 뒤편에서 삶을 이어갔지만, 레나에 대한 기억을 다시 꺼내게 되고 '해리 케인'이라는 가명 아래 숨겨놨던 자신을 비로소 되찾게 되면서 다시 영화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14년 전 실패로 돌아갔던 레나 주연의 영화 <여인들과 가방>을 다시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그가 이제야 완성시킨 영화의 모습은, 지난날 마테오와 레나의 두려움 없던 열정 그 자체다. 온갖 질투와 배신감으로 먹칠이 되었던 영화 대신 그의 앞에 보이는 영화의 본모습은 뜨거운 에너지만이 가득찬 발랄함이다.
결국 여기에 이르러서, 영화는 남녀의 욕망이 불러운 파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욕망으로 더럽혀지기 전의 열정이 보여줄 수 있었을 인생의 뜨거운 한 단면을 보여준다. 어느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이 때로는 매우 찬란한 결과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파국으로 치닫는 듯하면서도 어느 순간 미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그 감정을 하나의 가닥으로 수렴시키기 상당히 힘든 영화이다. 한 명의 여인과 한 편의 영화를 놓고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갖고 충돌을 빚는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에, 그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때론 살짝 섬뜩하기도 하고 때론 꽤나 애틋하다. 하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사실은 이 영화를 통해 알모도바르는 여전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원하는 것에 미칠 수 있는 열정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사랑이든, 영화든, 기타 예술이든, 두려움 없이 빠져들 수 있는 용기. 설사 그 강력한 포옹이 외부의 압력에 의해 부서질지라도 겁먹지 않을 수 있는 용기.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그 용기를 바라보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