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실력을 유감 없이 보여 주는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의 최신작 <2012>는 지난 작품들을 능가하는 스케일과 위용을 뽐내며 우리나라 영화계에 재앙을 안긴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으로 인해 우리 영화가 교차 상영을 해야 한다는 슬픈 현실을 접한 뒤라 꼬투리만 잡혀 보라는 다짐을 하고 보았지만 정말 감탄을 연발하는 화면의 스케일과 연출력은 할 말을 잃게 할 뿐이었습니다.
얼마 전 개봉한 <해운대>와는 CG로 표현되는 재난 영상부터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사실적인 부분까지 아직 많은 격차가 있음을 실감하게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2012>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영화라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보려고 한 관객들의 욕구를 채워주기엔 충분했다고 봅니다.
<2012>는 단순히 충격적인 재난 영상만 난무하는 영화가 아닌 그런 극한 상황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 주며 따듯한 인간미까지 전해줍니다. 실제로 9.11 테러 당시 비행기가 빌딩을 향해 곤두박질을 앞둔 상황에서도 마지막 통화를 통해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던 감동을 그대로 살려 낸 듯한 장면들이 곳곳에서 보이네요. 그러가 하면 마지막 순간을 앞 둔 인간의 동물적인 비양심적인 행동이나 소수 중요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대다수 평범한 사람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모순적인 결정도 과연 옳은 것인가를 우리에게 묻기도 합니다.
이렇게 <2012>는 전 인류가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극단적인 양면적인 행동과 생명의 고귀함을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는 사회에서 인간은 정말 평등한가를 지금껏 상상할 수도 없었던 재난의 영상과 함께 어우러져 감동과 재미로 보답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왜 이 영화를 보려고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예고편에서 본 거대한 재난 장면을 극장에서 실감나게 보고 싶은 단순한 그 이유만이었을까? 만약 2012년에 정말 종말을 한다는 예언이 맞는다면 굳이 영화에서까지 그런 장면을 미리 보면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다큐도 아닌 영화를 통해 2012년 정말 인류가 멸망하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한 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예고편에서 본 장면들을 바탕으로 인류 멸망의 순간 살아남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해가는지를 보고 싶었는지가 궁금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2012>에서 인류가 최후의 생존 카드로 준비한 것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빠삐용>에서의 생존 방법과는 다른 성경에 근거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헌데 그 방법은 인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이론 중 하나인 행성간 충돌이면 어쩌려고 한건지가 궁금해집니다. 또 블럭버스터 영화도 위기에 순간에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면 꼭 죽을 사람의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는 아쉬움과 중국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졌나하는 위기의식도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왜 내가 쓰는 'made in china' 제품들은 그렇게 고장도 잘 나는데... 아무리 영화라도 저건 좀 지나치다 싶은 대목이기도 하죠.
어쨌거나 2012년이면 이제 3년 정도가 남은 셈이네요. 영화처럼 그런 상황이 되면 저도 가족이 모여 마지막으로 서로 간에 사랑을 확인하며 생을 마무리하렵니다. 유로화로 10억이나 되는 돈도 없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일 뿐이니 굳이 살려고 바동댈 필요 없을 것이고 스피노자의 말처럼 하기에도 사과나무를 심을 땅 조차 없으니, 그저 남은 시간 가족들과의 시간을 소중이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어쩌면 바로 제가 이 영화를 보고 확인하고자 했던 관람의 이유는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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