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애타게 찾아헤매는 아내(님은 먼곳에)에서 명성황후 민비로 돌아온 수애.
동양화 날리던 타짜에서 푸줏간 검을 날리는 검객으로 돌아온 조승우.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이들이 펼치는 '민비 불륜 픽션'을 다룬 영화라 하겠다.
민비가 마지막에 검객에 기대어 피 흘리면 헐떡이는 모습은 마치 검객과의 못다한 정사를 나누는듯 했다.
이는 민비와 검객과의 불륜을 숭고하게 승화시킨 장면이라 보인다.
쉽게 말해서 불륜을 미화시킨 것다.
그런데, 왜 하필 민비의 불륜이었을까.
하고많은 불륜중에 왜 하필, 민비의 불륜을 꾸며낸 것일까.
나는 남녀간의 불륜 얘긴 감독이 씌운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그 단서는 민비의 불륜은 민비의 정치적 입장을 비유한 것이란 추정에 근거한다.
당시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반한 민비의 개국정책은 쇄국에 대한 외교적 불륜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감독은 민비의 정치적 태도를 검객과의 불륜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감독이 그녀의 불륜을 묘하게 미화시킨 것을 보면,
감독은 민비의 정치적 입장을 긍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 감독은 민비처럼 개국하자고 외치고 싶은 것일까?
아니다. 요즘 시대에 개국은 무신.. 이미 개국된지 오랜지다.
그러면 감독은 FTA를 지지하고자 하는 것일까.
FTA를 거론하기엔 한박자 느린 감있다.
그럼 감독 생각은 대체 뭐냐...
나는 이 영화의 내적 핵심은 민비의 직속 부하 '상궁'의 한마디에 녹아있다고 본다.
김상궁인지 이상궁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그 상궁은 민비를 죽이려 찾아온 일본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쥐색히얌'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는다. 황후를 모시는 상궁의 입에서 쥐색히라는 표현이 쉽게 나올 수
있었을까. 아무리 일본애들이 무례했다 할지라도 하고많은 욕중에 왜 쥐색히였을까.
그 상궁은 특히 목소리가 특이했다. 남자처럼 굵직해서 첨에 웃겼다.
처음엔 고종에게 외면당하는 민비를 달래주기 위해 남자 목소리 상궁을 되려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역시 감독의 훼이크란 생각이 든다. 감독은 이 상궁에게 더 큰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바로 쥐색히..란 한마디다. 이 쥐색히란 요즘 MB정부를 욕하는 좌파세력이 대통령을 조롱하는 표현이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서양세력이 조선에 침투할 때 기독교를 포교하며 침투했다는 멘트를 깔면서 시작하는데
이 역시 기독교인인 대통령을 겨냥한 장치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그렇다. 이 영화는 겉으로는 민비 불륜영화, 속으로는 반정부 반기독교 영화라고 해석된다.
이 영화에서 민비는 보수적 세력(대원군)에 반하는 진보세력의 상징인 것이다.
좀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감독은 민비 살해 사건을 통해
최근에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빗대고 싶었는지 모른다.
좌파측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정부측의 정치적 타살이라 해석하므로
이를 민비의 살해 사건으로 비유하는 것은 감독이 구상했던 그림의 정점이리라 본다.
그런데, 한가지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은 '검객'과의 불륜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이다.
감독은 이들의 불륜을 더이상 불륜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랑으로 미화시키는 것에서 불륜에 대한
현실적 해석은 넘어가겠다. 나는 지금 감독의 눈을 간파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니까.
민비가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을 상징한다면 그녀와 사랑한 검객은 무엇을까.
다시 민비를 노 대통령에 비한다면 검객은 노 대통령의 최측근. 유시민 정도의 인물일까.
아니면 노씨를 지지했던 노사모일까. 이 영화의 제목에 착안한다면 노씨의 추모행렬의 노란색 물결을
이뤘던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영화에서는 민비 앞의 나비가 날다가 검객의 어깨에 내려 앉는 씬이 있다.
검객은 곧 나비이며, 나비는 곧 노 전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적 세력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영화에서 나비의 색깔이 샛노랑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검객에 대한 해석은 좀 무리가 있다.
그래도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나비는 검객을 상징하고, 불꽃은 민비를 상징하는 것이리라 여겨진다.
불꽃처럼 살던 노 전대통령이 갔고, 나비처럼 국민들이 그와 함께 했다는 것이 제목이 뜻하는 바가 아닐까.
또 한가지, 검객의 가슴에 새겨진 십자가 문향은 검객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신념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순교한 어미에 대한 한을 상징하는 것이다. 검객은 전혀 기독교인처럼 살지 않았고, 돈 받고 살인하는 삶을 살았던 것을 보면 그러하다. 검객의 이름은 빛을 잃어 '무명'이라 했다. 기독교에서 빛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어쩌면 감독은 빛을 잃었다는 의미를 담은 무명이란 이름으로 이 시대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 대로 살지 않음 혹은 그런 교회를 인하여 상처받은 국민을 상징하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모든 얘기는 어디까지나 감독의 눈이다.
실제는 더욱 다양한 상황적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 있다.
당시 보수측인 대원군에게도 할 말이 있을 수 있듯이, 현 정부도 할 말이 있을 수 있고
언제나 그랬듯이 짠 맛을 잃은 교회가 있는가 하면, 짠 맛을 여전히 내고 있는 교회가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현 정부의 남은 임기에 대하여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끝으로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혹자는 민비는 나라를 위한 개국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다 외세로부터 이용당했으며 끌어들인 외세에게 죽임당한 것이라 맹렬한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나는 조선의 국모요'라는 멘트도 사실 없었던 것이고, 일본인에게 죽임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민비의 실제가 미화된 경향이 짙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뭐가 옳은 말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감독은 이러한 주장이 있음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을텐데, 민비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시나리오의 뼈대로 삼은 것을 보면, 감독은 자신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국민들의 일반적 인식과 불륜적 픽션을 적절하게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오늘날에 있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 목적이었을테니까.
나는 민비의 실제는 일반적 인식과 다를 수 있듯이, 노 통 역시 사람인지라 추앙받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실제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감독이 여기까지 계획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는 노통을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라 감독의 시각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자 하고, 역사는 그런 우리가 해석하기 나름의 역사이겠지만
역사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현재를 바르게 비출 수 있을 것이다.
tip;
조금 과장해서 미국영화는 친정적 영화일색인데 비하여
우리나라 영화는 거의 반정부에 반기독교 일색이다.
충무로는 뭔가 단합한 것일까.
영화 속에 숨어 있는 상징성을 찾아서
http://cyhome.cyworld.com/?home_id=a3588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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