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보통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각자 나이를 먹을수록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진다. 속으론 서로를 향한 큰 애정을 갖고 있다 해도 그것을 밖으로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속으로 삭히는 편이라 겉으로 보기엔 되게 무뚝뚝한 사이로 비춰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머니와 딸 사이는 그 애정이 다른 형태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친구처럼 언제나 사이좋은 모녀관계도 가끔 보이지만 흔히 어머니와 딸은 별것도 아닌 것으로 투닥투닥 갈등을 빚기 일쑤다. 서로에게 향하는 사랑은 사실 그 누구보다 진할텐데도, 막상 겉으로 표현하게 되는 건 퉁명스런 말대꾸나 괜한 반항이 될 때가 많다. 가족이란 집단이 안으로나 바깥으로나 변함없는 애정으로 계속되면 좋으련만, 사실은 이렇게 각자의 애정을 원래보다 비뚤게, 또는 원래보다 작게 표현한다.
영화 <애자>는 이 중에서도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대해 조명하는 영화다. 주인공의 이름을 단순하리만치 떡 하니 내세운 제목으로 봐선 한 여자의 고단한 인생만을 그릴 것 같지만, 사실 이 애자라는 여자의 인생에서 어머니와의 관계는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어머니와 딸로서, 여자 대 여자로서 그들이 투닥거리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과정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새삼 재조명해보게 하면서도, 그 효과가 다시 한 여자에게 돌아와 한 뼘 더 성장하게끔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소 진부한 소재가 이끌어내는 최루성 효과가 없지 않지만, 이 영화가 결국 관심이 있는 건 눈물의 효과가 아닌 관계와 성장의 효과인 듯 했다.
부산 출신의 왈가닥 여인 애자(최강희)는 학창시절부터 엄마 영희(김영애)의 속깨나 썩였다. 글쓰기에 있어선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으나 출석일수 부족으로 대학교 가는 것 자체가 위태롭게 될 만큼 학업은 소홀히 하는 흔히 부모님들이 말하는 '능력은 되는데 노력은 안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용케도 그 글실력이 대학도 보내주어 10년이 지난 뒤 애자는 소설가로서의 등단 준비에 한창이다. 하지만 자신이 '소설가'라는 직업인이라 생각하는 애자와 달리 애자를 '무직'이라 생각하는 영희는 여전히 딸이 못마땅하다. 애자도 만사가 편한 건 아니다. 오랜 기간 사귀어 온 남자친구 철민(배수빈)은 아직 결혼 생각도 없는 자신에게 진도 좀 나가자고 떼를 쓰지, 자신보다 능력도 안되는 오빠 뒷바라지만 신경쓰는 엄마에게도 불만이다. 그러던 중 서울에 있던 애자에게 영희가 위독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급히 달려간 애자는 어머니가 안고 있던 암이 재발했음을 알게 된다. 순식간에 영희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하게 된 애자. 그때부터 마냥 사이가 좋지만은 않은 애자와 영희의 동거가 시작된다.
철없던 딸이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어머니와 함께 하면서 점점 철이 들어간다는 스토리라인은 막말로 구태의연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한 소재의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꽤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일등공신은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라 할 수 있겠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소재는 드라마와 영화를 막론하고 수없이 등장한 소재지만, 그것을 어떤 배우가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칭찬을 받기도 하고 혹평을 듣기도 하지 않던가. 다행히 <애자>는 후자보단 전자에 가깝다. 새초롬한 4차원 여성의 이미지가 강하던 최강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지금까지 연기 생활 중 가장 거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평소 보여지던 다소 중성적인 이미지와 잘 어우러져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온다. 당초 우려했던 사투리 연기는 일부 어색한 부분이 느껴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편이었다. 애자라는 캐릭터가 초반의 문제아 이미지에서 갈수록 변화되어가는 양상을 보이는데, 너무 전형적으로 '개과천선'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기보다 최강희는 애자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성격에서부터 비롯된 자연스런 변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워낙에 다혈질이고 퉁명스러운 기질이 강해서 반항도 많이 하긴 하지만, 자신이 새삼 느끼게 된 큰 사랑 앞에선 그러한 기질이 반작용을 일으키면서 더욱 절실하게 매달리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다혈질이라 자기 감정을 곧잘 표현하지만 오버스럽게는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최강희가 '발산'의 이미지를 보여준다면 어머니 영희 역의 김영애는 '수렴'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녀가 보여주는 어머니의 모습은 자신의 고통이나 감정을 섣불리 표현하지 않고 최대한 삭힌다. 자식에게 아픔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감추려는 모습은 김영애의 절제되지만 굵직한 연기에 힘입어 상당한 감정적 호소력을 지닌다. 그렇다고 영희가 자식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기만 하는 희생적 어머니상도 아닌, 사소한 것들로 자식과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는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인지라 정형화되지 않은 김영애의 연기는 영희라는 어머니의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데 한몫 한다. 이렇게 최강희와 김영애가 펼치는 '수렴'과 '발산'의 앙상블이 진부함의 늪으로 빠지기 쉬운 영화를 끝까지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어머니와 그녀를 돌보는 딸의 이야기라는 설정을 갖고 있긴 하지만 영화는 이를 예쁘게 포장하려 하지는 않는 듯 하다. 초반부터 애자의 천방지축 일상을 경쾌한 영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영화는 이후에도 이런 경쾌한 어조를 비교적 꾸준히 유지한다. 물론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화해하게 되는 애자와 영희의 모습이나 병세가 악화되어감에 따라 고통받는 영희의 모습 등에선 예의 '불치병 영화'에서 흔히 보아 온 최루 코드가 눈에 보이긴 하나, 그렇다고 영화가 전반부는 무조건 웃음, 후반부는 무조건 감동이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건 아니어서 부담감은 덜하다. 극전개상 영희의 병이 재발하고 난 이후에도 애자와 영애가 엮어나가는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적잖이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흐뭇한 웃음을 자아낸다. 이로 인해 이 영화가 어머니의 시한부 인생이라는 소재를 눈물을 이끌어내려는 자극적 설정이라기보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로 더 활용하는 듯 보였다.
물론 애자가 안고 있는 고민은 어머니와의 갈등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영화는 종종 오랜 남자친구인 철민과의 갈등, 작가로서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비춤으로써 애자가 안고 있는 다양한 고민들을 보여준다. 남자친구는 그 이상의 진도를 나가길 원하나 아직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것이 더 중요한 애자에게는 그것이 부담으로 작용할 뿐이고, 그렇다고 작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찾으려 하니까 문학상을 주최하는 신문사 측에서는 그녀의 개성을 인정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글로 잘 옮겨달라는 위탁 요청에 더 관심을 둬 애자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과 현실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30대를 앞둔 독신 작가로서 애자가 겪는 애환이 곳곳에서 드러나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어머니와의 관계에 좀 더 비중을 두느라 이러한 세부적인 고민들은 뒷처리를 다소 전형적이고 성급하게 끝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앞서 얘기했듯 애자라는 한 여인이 혼자서 겪는 성장기라기보다 그녀가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성장해가는 이야기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영화 내내 애자와 영희가 서로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마냥 살갑지만은 못하다. 애자는 자신의 재능과는 별개로 늘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고 다녀 영희는 그런 딸이 못마땅해 매번 잔소리를 하게 마련이다. 애자 역시 재능 있는 자신은 몰라주고 별 능력도 없는 것 같은 오빠 뒷바라지만 애쓰는 영희가 야속해서 번번히 엇나간다. 사실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홀로 자식들을 키워 온 영희나, 별다른 가족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커가야 했던 애자나 서로에게 어머니와 딸을 떠나 여자 대 여자로서 동질감을 느낄 만도 하지만, 서로에게 불만도 많은 이들은 그런 애정을 겉으로 좀체 표현하지 못한다. 아무래도 그런 불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살갑게 다가가기에는 아직은 그녀들이 좀 수줍었던 탓일까, 대놓고 좋은 얘기는 서로에게 하기에 꺼려하는 그녀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퉁명스럽게라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꾸준히 보여준다. 부산 집에 기껏 내려와놓고 또 한바탕 말다툼 하고 돌아갈 거라며 짐싸는 딸에게 '나갈테면 나가라'면서도 '김치는 가져가 이년아!'하며 괴팍하게(?) 챙겨주는 영희의 모습이나, 영희의 병이 재발해서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에 짐을 떠안은 듯 귀찮아하면서도 엄마의 일거수 일투족에 일일이 신경이 쓰이는 애자의 모습이 그렇다. 서로에게 불만도 적지 않지만, 서로에게 미안한 마음도 적지 않은 탓이기에 이들은 서로에 대한 자신들의 애정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내던지듯이 표현한다.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이들 가족에게 있었던 과거의 사연들이 드러나면서, 이들이 사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복잡한 감정을 서로에게 갖고 있는 가족임이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렇게 애자와 영희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퉁명스런 애정은 그동안의 삶동안 서로에게 쌓인 야속함과 미안함이 만들어낸 애틋한 감정의 서툰 표현인 것이다. 각자 자존심이 있어서인지 아직은 서로에게 다가가긴 뭣하면서 각자의 위치에 멈춰서 툭툭 던져주는 그런 애정 말이다.
이랬던 이들의 관계가 영희의 병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돌봐줬던 사람이 돌봄을 받는 사람이 되고, 돌봄을 받던 사람이 돌봐주는 사람이 되면서. 자신을 양보하는 게 익숙했던 사람이 그 누구보다 자신의 삶을 붙잡게 되고, 수백번 삶의 회의를 느끼던 사람이 누군가의 삶을 붙잡아 줄 손길을 내밀게 되면서 말이다. 서로의 위치에서 종종 '그래도 넌 내 가족이니까'하는 마음으로 퉁명스럽게 사랑을 표현하던 이들이 이 순간을 맞이하면서 서로의 손을 붙잡는다는 것의 소중함을 알아간다. 애자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큰 것만 같았던 자신도 사실은 누군가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렇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아간다. 아들에게만 관심이 치우쳐 딸에게는 별로 애정도 없는 듯 했던 영희 역시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딸에게 자신의 애정을 뒤늦게 드러낸다. 애자와 영희가 메신저 채팅을 통해 서툴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대목이 점점 서로에게 접근해 가는 이들 관계의 발전을 잘 나타낸다. 이렇게 영화는 애자와 영희의 관계를 단순히 어머니와 딸의 수직적 사랑으로만 그리기보다 여자 대 여자,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에게 의지해야 할 수평적 유대 관계로 그려내 보다 담백하면서도 현실적인 감동을 얻어낸다.
이 영화의 결말은 어머니가 결국 세상을 떠나느냐 아니면 기적적으로 회복해 애자와 행복한 삶을 이어가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애자가 이 일을 계기로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느냐다. 소중한 가족와 이별해야 하는 순간은 단순히 남은 이를 힘들게만 하는 고통의 순간이 아니라, 내가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과 내가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에는 더욱 큰 힘을 주고 더 크게 자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영화 <애자>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별의 눈물이 당사자를 한없이 주저앉히기보다는 더 힘차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는 이 영화는, 슬프다기보다는 의외로 유쾌하고 뿌듯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