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언제나 소중한 것이며 절대적인 것이다. 가족보다 더 가치 있는 동료도 없으며 가족보다 우릴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없다. 우린 이렇게 배웠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앞서의 사실을 부정할 만한 주장이나 근거도 없다. 가족은 유일무이하게 가장 비판 없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 가족에게 피해가 발생한다면? 슬프기에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영화는 단순하다. 역사적으로 가장 원시적인 대처법을 사용하고 있다. 복수가 그것이다. 복수가 옳으냐 틀리냐의 논쟁은 사실 무익하다. 그럼 다른 대안은? 법정에서의 판단이 상처받은 가족에게 얼마나 좋은 치료법이 될 수 있을까? 그곳에서의 판단이 울분이나 상처를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을까? 이런 이유 때문에 가족에 대한 복수는 영화에서 장황하리만치 재생산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방법과 스토리가 다양하고 독특할 뿐이다. 뻔한 소재이자 주제이지만 그래도 재생산은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임은 분명하다. 가족과 관련된 복수만 사실 영화나 문학에서 다루지는 않는다. 자신들과 관계된 친한 존재들에 대해 큰 봉변을 일으키는 것들에 대해 분노는 당연하고 그에 대한 행동이 바로 복수이다. 많은 작품들에선 그런 공분과 복수를 정당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 역시 어쩌면 법적인 테두리를 벗어난 복수라도 옳다고 여길 것이며 아마도 실천할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옳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해도. 그래서 복수 시리즈였던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그리고 ‘영자씨’ 등이 재생산됐고 그 영화에 열광했는지 모른다. 사회에서의 법적 처벌 역시 응징이나 보복이란 개념이 포함된 것 역시 사실이다. 좀 더 공개적이고 보편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법적인 방식을 통한 처벌은 우리 모두가 합법적이라고 여긴 타당한 처리 방식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가족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위험으로 인해 법적인 타당성을 통해 보복을 가하는지 모른다. 특히 가족의 슬픔이 그릇된 인간들의 행동에 기인한다면 개인적 복수 역시 암묵적으로 인정받는다. 그런 처벌엔 가족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이 바로 우리의 깊은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를 위한 복수의 정당성이 있어도 상처는 치유되기 힘들다. 그것을 자행한 자보다 당한 자들의 아픔은 아마도 평생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행자의 가족이 그런 범행에 치를 떠는 것인가 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인간적인 정서와 감정에 그 중심을 둘 때 슬픈 사연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요트 타고 나가는 장면은 모든 것을 잊고 살려는 인간의 몸부림일 것이다. 영화는 보다 인간적인 것에 다가섰고 불법이든 합법이든 인간의 그런 가족애를 방해하는 것들에 대한 도전으로 보인다. 그 속에서 난 우리 가족의 가치를 다시금 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와 가족과의 행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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